근대적 감정으로서의 권태는 단순히 지겨움이나 싫증이 아니다. 권태의 저 끝에는 무력감이 있다. 투이는 권태를 "과잉과 반복의 산물"로, "바로 앞을 짐작할 수 있고 단조로우며 벗어나기 힘든 상태에 있거나, 상황이 너무 오랫동안자리에 머물러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정의한다. 지루하고따분하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무력감은 동시에 사회에서 개인이 삶의 의미를 찾는 게어려워졌음을 뜻한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의 삶의 의미, 존재방식, 감수성 등을 하나하나 채워나가야 한다. 전통사회가부정되고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과거의 삶의 방식은 무의미해졌지만, 새로운 방식은 아직 정립되지 않았던 때다. 따라서 권태는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문제를 제기한 - P93
시민사회의 진부함에서 벗어난 예술가들은 보헤미안이 됐고, 좀 더 나아가 예술로 진부한 삶에 충격을 주는 아방가르드가된다. 마네 편에서 보았던 것처럼 예술가들은 판에 박힌 예술 형식을 반대하고, 무의미한 삶을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해 형식을새롭게 탐구하는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 겁 없는 예술가들 덕분에 관람자인 우리는 ‘권태‘로울 틈이 없어졌다. - P94
‘만성적권태의 대가‘인 보바리 부인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행과 섹스를 택했다. 소도시의 안정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소시민적인 삶이 지독하게 권태로웠던 그녀는 "죽어버리고 싶었고 동시에 파리에서 살고 싶었다." 레옹이 파리에 갔던 것도 너무 재미가 없어서 ‘예술가처럼‘ 살고 싶어서였다. 삶이 권태롭기 짝이없었던 둘은 예술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만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밀회를 즐기는 사랑의 모험에 나섰다. - P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