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자신이 늙었다고 느꼈다. 노인이 그렇게 느끼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그는 마치 너무 늙어 더 이상 아무 일도겪지 않을 사람처럼, 어떤 새로운 일도, 어떤 좋은 일이나 나쁜 일도 겪지 않을 사람처럼 느꼈다. 그는 자기에게 일어날 일은 모두 일어났다고 느꼈다. 앞으로 일어날 수 있거나, 일어났어야 하는 일까지도. 마치 일시적으로 죽음을 경험한 사람처럼, 결정적으로 인생을 끝까지 산 사람처럼, 자신이 저지른 죄로 인하여 소박한 상을 받고, 자신이 베푼 덕행의 대가로는 오히려 심한 벌을 받았다고 느꼈다. 또한 오래전부터 계속해서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등장인물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이런 무미건조함은(누가 어디에서 또한 어떤 암시에 따라서이 무미건조함을 예상할 수 있겠는가.) 불필요한 등장인물에게서 나온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날이 감에 따라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식했다.(그리고 그것을 그리 불편하게 느끼지 않았다.) (마치 그러한 것을 느껴야만 하는 사람처럼.)(항상 모든 것을 고려한다면, 그러나 그는 전혀존재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았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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