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지루함과 이상한 기다림, 나는 이 인상이 아우슈비츠의 진정한실체를 대략적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내 관점에서 말이다. - P131

어떤 관점에서는 내가그것을 정당하게 인정해야 했다. 실제로 나는 비틀거렸고 허리가 구부정하고 눈이 깜깜했지만 그것을 견뎌 냈다. 나는 포대를 하나도 떨어뜨리지 않고 오가며 짐을 날랐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결국 그가 옳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런데그날이 끝나갈 무렵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치료가 불가능할정도로 크게 손상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날부터 나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그날이 마지막 아침일 거라고 생각했고걸을 때마다 더 이상 걷지 못할 거라고, 움직일 때마다 더는움직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여전히걷고 움직이고 있었다. - P185

서 얘기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자유에 대해서만 언급할 뿐 아직까지 나오지 않는 수프에 대해서는 어떤 암시나말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 역시 자유의 몸이 된 것이 무척 기뻤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예를 들어 ‘이런 일이 어제 일어날 수는 없었던 것일까?‘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밖을 보니 4월의 밤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피에트하가 흥분으로 빨개진 얼굴로 다시 돌아와서는 알아들을 수도없는 말을 계속 쏟아 냈다. 그와 동시에 스피커에서 다시 총반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감자 껍질을 벗기는 사람들에게 부엌으로 좀 와 달라고 부탁했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매운 구야시 수프11)를 끓일 예정이니 밤이 늦더라도 자지 말고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제야 나는 마음이 놓여 베개에 기댔다. 내 속에서 뭔가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자유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 P253

그는 12 곱하기 365일을, 다시말해 12 곱하기 365 곱하기 24시간을, 또다시 말해 12 곱하기365 곱하기 24 곱하기 등등의 이 모든 기간을 초 단위로, 분단위로, 시간 단위로, 날짜 단위로 보내야 했다고 말했다.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들에게도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만약 이 모든 12 곱하기 365 곱하기 24 곱하기 60 곱하기 60의 시간이 그들 앞에 일시적으로동시에 들이닥쳤다면 그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견뎌 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 P270

나 역시 주어진 하나의 운명을 버텨 냈다. 그것은나의 운명이 아니었지만 나는 끝까지 살아 냈다. 그들이 왜 내가 지금 그것을 품고 출발해 어딘가로 끼어들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그것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착오이고 우연이고 일종의 탈선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 P281

람이 내게 수용소에서의 역경과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만 묻는다. 나에게는 이러한 경험들이 가장 기억할 만한 일들로 남아 있는데 말이다. 그래, 사람들이 나중에 묻는다면 그때는 강제 수용소의 행복에 대해 얘기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이 묻는다면, 그리고 내가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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