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닐 수가 있어?"
어린 시절 나는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 말 자체가 너무 거슬렸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닐수가 있어?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싶었다. 숫자 0처럼, 자연수도 아니고, 완전수도 아니며, 이성적이지도 실질적이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하지만 완전수 전체에 더해진 중립적인 요소? 안타깝게도 이조차 아닌 것 같다. 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될 때 필요한 존재가 되는 일에서 해방될 것이다. 만일 지금내가 필요한 존재라도 된다면 말이다. - P164

나는 아직도 그장면들을 마치 호퍼의 그림처럼 떠올릴 수 있다. 유년 시절그 집에 관한 모든 기억은 호퍼의 그림처럼 불가사의하고 질척한 외로움으로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어질러진 침대, 앙상한 의자 위에 널브러진 책들 사이에서 창밖을 내다보거나 말끔히 정리된 책상 옆에 앉아 벽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들과 마찬가지 모습을 한 내가 그 가운데에 있었다. 집에서는 모든 것이 속삭임으로 해결되었고, 가장 분명하게 들리는소음은 내가 바이올린으로 연음을 연습할 때를 제외하고는 어머니가 외출을 위해 굽 높은 구두를 신을 때였다. 그리고 호퍼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에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면 나는 글을 쓴다. 나는 그림을 볼 수 있지만 그릴 수는 없기때문이다. 나는 항상 호퍼처럼 광경을 본다. 완전히 닫히지 않은 창문 혹은 문을 통해서 말이다. 또한 몰랐던 것을 결국에는알게 된다. 알 수 없는 것은 이야기를 지어내고, 그럼 그것이진실이 된다. 당신은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리라고 믿어. - P219

다들 내 능력이놀랍다고 말했다. 저런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일들중 하나였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확실히 나는 언어를 쉽게 배우는 편이었다. 프랑스어는 식은 죽 먹기였고, 이탈리아어는 비록 억양이 틀리기는 해도 읽을 수 있고 제2의 모국어와 다름없이 구사했다. 카탈루냐어와 카스티야어는 물론 『갈리아 전기』수준의 라틴어도 막힘이 없었다. 러시아어나 아람어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내 방에 들어와 꿈도 꾸지말라고 말했다. 이미 아는 언어만으로도 충분해. 인생에서 다른 것들도 해야지 언제까지 앵무새처럼 언어만 배울 거니.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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