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데우는 기차를 좋아했어요. 기차는 그에게 삶의 상징이었어요. 난 같은 칸에 함께 타고 싶었지만, 그가 원치 않았어요. 아마데우는 내가 플랫폼에 있기를, 그래서 창문을 열면 내가 언제든지 자기가 묻는 말에 대답해주길 원했어요. 그리고 그는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플랫폼도 함께 떠나길 바랐어요. - P460
그레고리우스가 창세기를 읽었다. 문두스인 그가 폐허가 된 포르투갈의 한 중등학교에서 어제까지만 해도 알지 못하던, 그리고 헤브라이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여든 살짜리 노파 앞에서 창세기를 읽는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했던 일들 가운데 가장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순간을 즐겼다. 예전에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기쁨이었다. 곧 다가올 종말을 예감하고, 단 한 번만 거침없이 세차게 쳐부수기 위해 마음속으로 모든 사슬을 끊어버리는 성서 속의 사내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 P462
그 단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떠오르지 않았다. 그 단어가 있기는 한 건가? 예리하게 틈이 벌어진 것은 기억이아니라 이성이었나? 단 하나의 단어, 단 한 번 나오는 단어를 잊었다고 해서 어떻게 거의 이성을 잃을 수 있을까? 단어를 잊은 것이강의실에서 시험지 앞에 앉아 있는 상황이라면 고통스러울 수도있겠지만, 사납게 울부짖는 바다를 마주하고서도 저기 앞에서 밤하늘로 스며드는 검은 바다는 이런 불안을 완전히 무의미한 것으로, 쓸데없는 것으로, 균형 감각을 모두 잃어버린 사람이나 신경 쓰는 것으로 쓸어가야 마땅하지 않은가? 기 - P510
사람의 정체성은 언제 유지되는가. 늘 그래왔던 그 모습일 때? 스스로를 바라보았을 때처럼? 아니면 들끓는 생각과 감정의 용암이 온갖 거짓과 가면과 자기기만을 묻어버릴 때? 달라졌다고 불평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사실 이 말은, 어떤 사람이 이제 더이상 우리가 원하는 그 모습이 아니라는 뜻인가? 그러니까 타인의 안녕에 대한 걱정과 염려라는 가면을 썼을 뿐, 결국 익숙한 것이 흔들릴까봐 대항하는 투쟁문구의 일종인가? - P537
베른에 도착하고 싶지 않았다. 독시아데스가 수화기를 들고 병원에 예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않았다. 제네바까지는 아직 스물네 개의 역이 남아 있었다. 스스로내릴 수 있는 기회도 스물네 번이었다. - P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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