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타노라는 사람에 대한 한다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표본상자 속 나비였다. 겉모습은 완벽하지만 그저 정물일 뿐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져버리는. 실제로도 곱게 자란 양갓집 도련님이 그대로 중년이 된 것같은 무심함, 지능지수만으로 이뤄진 듯한 무기질적 분위기, 상당히잡한 사고회로를 짐작게 하는 우울 등이 뒤섞인 외모는 다분히 차가워보였고, 묘하게 풍기는 공허함도 아들을 잃은 탓만은 아닌 듯했다. 눈동자의 움직임에서 심상치 않은 불안감도 조금 엿보였다. - P125
내일부터 계속 이런 식이려나.
주택가의 흐릿한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오랜 습관처럼 또 한 자락의 새로운 몽상이 한다의 가슴으로 미끄러져들어왔다. 어느 날 사직서라고 쓴 봉투를 상사의 책상에 내던진다는 유치한 몽상은 대단한 쾌감도 주지 못하고 금세 맥없이 사그라졌다. 지금의 한다는 사직서가 일대사건이 될 만한 조건을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 사직서를 집어든 상사가깜짝 놀라고, 온 서내가 들썩거리고, 본청이 경악해서 어떻게든 철회시키라며 낯이 새파래질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이 몸의 퇴직을 두려워하는 자, 아쉬워하는 자가 어디 있으랴. - P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