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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놀 지는 마을
유모토 카즈미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시간이 멈춰버린 저녁놀에 물든 마을... 그곳에 새겨진 짱구영감과 어머니 그리고 가즈시의 이야기...
일본 소설을 어느정도 읽어 보았지만 유모토 가즈미의 소설은 처음 접하는 것 같습니다. 유모토 가즈미는 많은 작품을 지은 작가가 아니라고 하니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의 분량도 150여 페이지 정도로 아주 짧지만 다 읽고 나니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편안함과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데뷔작이 아동문학인 여름이 준 선물이어서 인지 조금은 한편의 동화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사토 게이라는 화가의 작품을 보고 저녁놀 끝에 있는 도시의 냄새를 맡아 아버지가 살던 도시를 무대로 글을 쓴게 이 작품이라고 합니다. 짱구영감의 모델이 아버지의 큰할아버지이지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 등장 인물도 많지 않고 특별한 사건도 없어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10살 소년 가즈시의 눈에 비친 한 가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성인이 된 지금의 이야기도 함께 되어 있습니다. 소년의 부모는 이혼을 했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아들을 빼앗길 까 두려워 계속 서쪽으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아버지는 곧바로 재혼을 하면서 전혀 그러한 생각이 없었는데 말이죠... 어느 날 짱구영감이라 불리는 가즈시의 외할아버지가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쟁 등 혼란의 시기를 살아오고 한때는 말 거간꾼으로 일하고 한때는 사할린으로 나무를 베러 가고 한때는 조선인 노동자들과 함께 다리를 놓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미군의 시체를 처리하는 무서운 일도 한.... 어머니는 짱구 영감이 벽에 기대어 있으면 청소하면서 청소기로 고의로 치기도 하고 밤에 짱구 영감이 보는 데서 똑각똑각 소리를 크게 내면서 손톱을 깍기도 하면 짱구영감에게 미움의 표현을 합니다. 가즈시가 똑 같은 행동을 할려고 하면 한밤중에 손톱을 깍으면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해 라고 말하며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죠... 짱구영감이 입맛이 없어 밥을 잘 먹지 못하면 그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 놓기도 하고 벽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는 짱구영감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코끝이 빨개지기도 합니다.
어느 날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토요일 일요일 동안 몸져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짱구영감이 새벽녘에 갑자기 사라져 저녁이 되어서야 비를 맞으며 피조개가 가득 들어있는 양동이 2개를 들고 옵니다. 불조심이라는 문구가 적힌 양동이에... 이 부분을 읽을 때에는 정확히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읽고 나니 어머니가 가즈시에게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냐고 물어 본것과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말다툼으로 미루어 어머니가 임신을 했었는데 낙태 수술을 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쓰러지고 병원으로 실려가게 됩니다. 그때에 짱구영감이 밤에도 벽에 쭈구리고 앉아 잠을 잘수밖에 없던 이유를 알게 되죠... 어머니는 짱구영감을 극진히 간호 하지만 가즈시가 잠을 자다가 새벽에 기차 소리가 들려 깨어 병원으로 갔을때에 옆에 잠들어 있는 어머니의 머리에 손을 얹어 놓고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전화가 와서 자신을 만나로 와 달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끝까지 이후의 내용이 없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상처투성이인 사람들이 세 평짜리 방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상처가 커지는게 아니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의 긴장이 풀어지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엮인 사람들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