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산뜻한 에세이집을 만났다. 폭염과 무더위에 지치기 쉬운 이때에 창가의 꽃병에 꽃이 담겨져 있는 표지의 책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나는 노란색을 좋아한다. 따뜻한 마음을 지닌이들이 그렇다는데 이 책을 만나면서 나의 마음에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 피어났
으며 하는 소망을 가지게 된다.
"서른살의 유학 그건 회사생활 내내 이어진 겹겹의 허무를 거둬내는 나름의 과감한 결정이었다. 근사한 고층 빌딩에서 적당한 액수의 돈을 벌고
원하는 지위에 있어도 마음의 그림자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그럴때 마다 어느길로 가야 할까? 하고 스스로 물었지만 서른이 가까워지자
그 질문이 무의미 했다. 인생은 수학문제를 풀듯 딱딱 정해진 답이 있는 게 아니었다. 가고 싶은 길을 그려나가면 그게 정답이다라는 생각이
들자 머릿속에서 질문들이 흘러나왔다. " (p.126)
사직서를 낸 지 한달이 지나고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구름 사이로 아득하게 보이는 중국과 러시아,터키의 거대한 산맥을 넘어 대룩의
반대편을 향해 가는 여정은 생각보다 장엄하기까지 했다.수천 피트 상공의 암흑속에서 자그마한 불빛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가는 비행기처럼
삶이 아슬아슬하개 흘러 간다고 느꼈다.
사방이 어두었고 모든게 멈춘듯 고요했다.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 머리 옆에 둔 컴튜터를 켰는데, 한통의 메일이 수신함에 도착해 있었다.
김과장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해외 정착 지원금으로 용돈을 보냅니다. 그곳에소 건투를 빕니다.
두줄의 메일에 눈가가 촉촉해졌다. 반년간 계좌에 매달 100만원 이 입금됐다. 사장은 작정하고 떠나버린 직원의 꿈을 어려운 상황속에도
응원해줬다. 감사함에 마음이 벅차 올랐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고요한 밤하늘, 청량한 공기, 창밖의 드넓은 초원 이 평온한 밤은 당연하게
오는데 아니기에. (p.129~130)
국내에서의 다양한 회사를 거쳐서 경험을 쌓고 매너리즘과 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 여정을 떠나는 그녀의 도전에 응원을
하고 싶었다. 그런 도전에 옛직장 상사의 건투를 빈 응원의 메일과 격려금이 전달된 대목에서는 직장이 비즈니스 관계이고 공적이 사이이
지만 이 속에서도 사람사이의 情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언젠가 읽은 <사랑에 대하여> 라는 러시아 소설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생기는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 나온다. 아름다운 빼라기야가
난폭한 술꾼인 요리사 니까노르를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은 그저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사랑을 그 자체의
가치로 바라보려 했다. 행복이나 불행으로 이러쿵저러쿵 정의할 수 없는 고요한 가치로 나역시 그랬다. 이유를 찾으려 할 수록 사랑은 희미해져
갔다. 그저 감각으로 다가오는 게 사랑인듯 했다. 그가 입은 두툼한 끄개옷의 포그함, 하늘 끝에 매달린 붉은 노을의 애틋함,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있을면 느껴지는 낮은 목소리의 떨림 그런 감각의 자극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게 사랑인 것 같았다. (p.150)
사랑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거창한 무언가가 아닌 일상에서의 작은 소중한 것들에 사랑이 깃들어 있다는 단순한 진리
를 말해주고 있는 대목이어서 공감이 같다.
J에게 (죽음에 대한 단상)
J가 새벽에 하늘나라로 갔대
죽음이라는 글자가 바람에 실린 모래알 처럼 가볍게 다가왔다. 심장은 오랜기간 방치한 빵처럼 딱딱해고 안구가 건조한 탓인지 눈물이
직금 나오다 말았다. J가 왜 떠났는지, 왜 그래야 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는 4년 가까이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 채 분리된 삶을 살았으니까. 단절된 시간동안 J가 겪었던 일과 고통 같은 건 가위로 잘라내듯 삭제된 채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만
내 앞에 덩그러니 담겨졌다.
미안해
짧은 말조차 전할 수 없을 만큼 그녀는 이미 멀리 가버렸다. 버틸 수 없을 만큼 무거웠겠지. 얼마나 무거웠으면 이렇게 놓아버려야
했을까 보듬어주지 못한 상처가 마음에 남아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J미안해 그곳에선 아프지마
친한 친구를 떠나보내 작가의 애뜻하고 아쉬운 마음이 녹아든 장이었다. 어쩌면 삶과 죽음의 경계는 종이 한끗 차이라는 느낌이 들
었다. J와 보낸 추억을 회상하며 마지막 작별의 시간을 하러 가는 그녀의 단상이 내게는 와닿았다.
에필로그
기억에 마음을 더해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지만 글을 쓰면서 외롭지 않았다. 글 속에서 누군가와 연대하고
있었으니까 비정규직이었던 나와 옥탑아의 L과 먼저 떠난J와 그 흩어진 마음들을 글 속에서 만났고 다시 태어나는 것 같았다. 하나의 단단한
뿌리 속에서 각자의 새잎을 올리는 다육 식물처러므 나와 여정을 함께한 당신의 마음에도 꽃 한송이가 피었기를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속에서 꽃은 피어나고 있다. 그것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삶의 한순간은 그 나름대로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러 이웃들이 이 책을 통해서 자신만의 삶의 꽃들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들을 가졌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