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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주인공 홀든은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다. 학교 규율에 매번 어긋나는 행동을 하기에 기숙학교를 매번 퇴학당하는 그런 자유분방한 아이다. 이야기는 홀든이 또다시 퇴학당하는 시점에서 시작되어 그의 2박 3일간의 방황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택시기사에게 추운 겨울이면 오리는 어디로 가는 것인지 질문한다. 택시기사들은 어린아이의 시덥잖은 질문을 매번 무시하거나 알아듣지 못하여 오히려 다른 대답을 하며 호통을 친다. 그러나 마냥 아이로 남고 싶은 홀든은 오리의 행방을 끊임없이 궁금해 한다. 조그만 오리는 항상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시간이 정지하고 아무도 늙지 않고 어디에도 가지 않으며 아이들은 어른이 되지 않아도 되는 평화로운 시간을 동경한다. 모든 것이 그대로 멈춰주기를 바라는 홀든의 속마음을 읽으며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과도기를 지나는 아이의 불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불안감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어른이 ‘되어버린’ 나 자신 조차도 가끔은 마냥 회피하고 싶은 상황이 닥칠 때면 유사한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는 것은 참 어렵다.
어린 시절 즐겨 찾은 평화롭고 멈춰진 시간이 펼쳐지는 자연사 박물관을 코앞에 두고 홀든은 훌쩍 마음을 바꿔 돌아선다. 의식적으로 어른이 되는 것은 거부하지만 어느새 자신도 어린아이로 멈춰있을 수는 없으며 향후 그저 그런 어른이 되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일까.
동네 친구인 샐리를 불러내어 주머니 두둑하게 돈을 챙겨 어디론가 떠나자고 한다. 그곳에서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당당하게 말하지만, 샐리는 현실적인 대답으로 맞받아친다. 떠나면 자유분방하게 어린아이인 채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홀든이 그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기만 하다. 어쩌면 그렇게 살아가는 게 홀든이 생각하는 가장 어른스러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술집에서 잔뜩 취해버린 후 오들오들 떨며 센트럴파크로 향한다. 겨울이 와도 항상 같은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오리들이 머무는 호수를 찾아 맴돌지만 그가 어린시절을 보낸 공원에서 호수를 찾는데 애를 먹는다. 어른이 되면 어릴 적 굉장히 애착가던 물건이나 장소를 까먹게 되는데, 홀든도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까.
결국 호수를 찾아내는 데 성공하지만 오리는 그곳에 없다는 걸 깨닫는다. 모든 것은 변하고 움직이며 그 새 늙기 때문이다.
항상 당당하고 자기만의 세계가 깨지지 않길 바라던 홀든도 돈이 떨어지자 결국 향하는 곳은 가족들이 자고 있는 뉴욕의 집이다. 과도기의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 온갖 센 척하며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하는 홀든도 집으로 돌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어린 동생을 만나러 간다는 핑계를 대며 합리화 한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귀엽고 순수하게 느껴진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영원히 지나고 싶지 않은 어른이 되는 과도기 시절의 이야기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사회가 만들어낸 규칙에 마냥 순응하며 모두가 좋아하는 것에 호감을 표해야하고 남들이 좋아하는 영화에서 함께 폭소하며 박수치고 고리타분한 규율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 기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일까. 지금 어른으로서의 내 모습은 어떠한가.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