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증거의 오류 - 데이터, 증거, 이론의 구조를 파헤친 사회학 거장의 탐구 보고서
하워드 S. 베커 지음, 서정아 옮김 / 책세상 / 2020년 2월
평점 :
사회 다방면에 대한 온갖 데이터가 넘치는 시대가 되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라는 멘트는 뉴스의 시작을 알리는 고정 멘트가 되었고 정치나 사회이슈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하루에도 수차례 쏟아져 나온다. 지금도 유행하는 소위 말하는 ‘말 잘하는 법’을 가르치는 자기계발 책에서는 어두에 “ㅇㅇ에 의하면~”이나 “인구의 ㅇㅇ%는~”과 같은 수식어를 붙여 대화 상대방의 신뢰를 얻으라고 조언한다. 이처럼 우리가 흔히 접하는 데이터는 우리의 일상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좀 배운’ 티 나는 허세를 부리기에 알맞은 도구로 유용하게 쓰인다.
하지만 이러한 데이터가 한 가지 사실에 대한 온전하고 유위한 증거로 작용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다. 또한 연구자들 역시 데이터 수집의 흔히 통용되는 방식을 하등의 의심 없이 채용하는 절차에서 범할 수 있는 오류가 결과로 받아들이기에 타당한지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함으로써 합리적인 조치를 묵과시키는 일도 배제하기 어렵다.
사회학 거장의 대가라고 불리는 이 책의 저자 Howard S. Becker는 사회 현상의 연구 과정에서 주장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방법으로 수집된 데이터들이 오히려 증거로서의 신뢰도를 위협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하여 다양한 연구 절차와 그 속에서 오류를 범하는 현장을 고찰한다. 이때 연구자는 설문 대상자, 설문 면담자 그리고 데이터 코딩 작업자까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데이터 수집의 전반적인(어쩌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부담시키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모든 참여자가 당연히 준수해야 할 절차와 태도를 소홀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소한 문제들을 집단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발생하게 되는 일탈의 정상화의 한 가지 예시로 저자는 나사의 아픈 역사인 챌린저호 참사를 설명한다. 이는 우리가 흔히 접해온 수많은 사건 사고들의 발생 과정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연구자 입장에서는 가벼운 실수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저자는 여러 챕터에 걸쳐 도리어 규칙을 어김으로써 임무를 완성하게 되는 조사 방법에 대한 회의감을 토로한다,
수많은 데이터를 하나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제시하기 까지는 여러 사람들의 수작업을 거쳐야만 한다. 타당성 있는 주장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막대한 시간과 자본의 투입이 뒷받침 되어야만 하는 실정에서, 모든 연구자들이 민속지학적현장연구처럼 현지인들과 생활을 일일이 관찰하며 그 과정을 기록하는 노고를 행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저자 또한 연구자들이 그런 방법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는다. 그는 데이터 수집 방법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오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그런 오류에서 오히려 사회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사실을 추출해 낼 수 있으며 새로운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시킨다. 데이터가 난무하는 현대야 말로 우리가 마구잡이로 받아들이는 수많은 숫자로 이루어진 데이터들을 회의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기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는 ‘제대로 된’ 데이터를 인용하고 있는 것인가. 한번이라도 이러한 의심을 품어본 사람들에게 이 책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