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 - 종교, 신화, 미신에 속지 말라! 현실을 직시하라!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데이브 매킨 그림 / 김영사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에 읽은 과학 콘서트가 '과학의 언어로 풀어낸 일상'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다면, 리처드 도킨스의 이 책은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 과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자가 사회와 예술의 영역 속 문제를 과학적인 사고로 접근했다면 후자는 전통적인 과학의 영역(그리고 이미 상당 부분 해답이 내려진 상당히 고전적인)에서 제기되었던 의문들과 그 해답의 논증 과정을 최대한 수식을 배제한 채로 일상적인 언어로 따라갈 수 있도록 배려했기 때문입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저는 후자를 더욱 충실한 과학 교양서로 부르고 싶네요. 전통적인 주제라는 점에 있어서 입문서로도 적절하고, 비교적 긴 호흡을 가지고 하나의 결론을 내기 위해 과학자들이 거쳐야 했던 논증과 전제 조건들을 최대한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주전공이라고 할 수 있는 진화론에 대한 설명부터 지구과학에 대한 설명, 분자와 원소 등에 대한 설명까지 제가 몰랐던 고등학교 수준의 지식부터 비교적 심오한 지식까지 아우르는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초보자에게 다소 어려울 수 있는 개념들을 쉽게 이해 가능하게 해주는 친절하고 세련된 삽화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책은 크게 두 가지 점에 있어서 특이한 형식을 취합니다. 하나는 앞에 말한 풍부하고 세련된 삽화이고, 또 하나는 과학적인 설명 이전에 꼭 그 질문과 관련되어 있는 신화들을 먼저 소개하는 식입니다. 이 신화라는 말에는 구약 또한 포함되는데요. 마법과 환상, 초자연적인 설명이 얼마나 지금 와서 어리석은 소리로 들리는지, 이런 식의 설명이 인간의 지식에 진보를 얼마나 가로막는 걸림돌인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런 것보다 과학을 통해서 밝혀지는 자연의 진실이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만드는 시적인 의미에서 얼마나 진정한 '마법'인지를 강조하는 반면교사로서 이용된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아무 거리낌없이 성경을 앞에 인용하는 저자의 태도가 얼마나 확신해 차 있는 과감한 행동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아주 대놓고 창조론 VS 진화론의 불을 붙이더군요. 이런 저자의 태도는 책 전반에 걸쳐서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것이 때로는 치밀한 증명이란 좋은 면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맨 마지막 장인 기적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는 다소 무리한 시도를 감행하게 하는 나쁜 면으로 드러나기도 하더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진화생물학자이자 과학으로 얻은 지식을 유일하게 가치 있는 지식으로 인식하는 저자의 태도는 꼭 의식하며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 유의해서 읽어나간다면 앞에 썼듯이 굉장히 유익한 책입니다. 과학은 우리가 오감으로 느껴서 아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되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들까지 관찰 대상에 포함하며, 이런 것들을 오감의 확장을 돕는 도구, 사례 분석으로 증명되는 모형들의 도움을 받아 점차 우리가 아는 현실로 편입시켜 나가는 데에 그 목적을 가진다는 것. 즉 우리의 직접적인 오감으로 느끼지 못하는 여러 가지 것들을 우리의 오감이 느낄 수 있는 세계로 드러내게 해주는 데에 과학의 목적이 있다는 것. 이렇게 해서 드러나는 세계는 시적인 의미에서 '마법'과 같다는 것. 우리는 자연선택과 갈라지기를 통해 수많은 동물들과 살게 됐지만 사실 그 조상을 하나라는 것.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원자와 그것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원소와 분자. 그리고 결정. 원자 안에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 양성자의 숫자로 정해지는 주기율표. 원자와 원자 사이는 텅 비어 있지만 그 사이의 힘 때문에 고체는 통과할 수 없으며 탄소의 유연한 결합은 그것이 생명을 구성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라는 것. 지구의 곡률과 똑같은 곡률로 휘어지기 때문에 떨어지는 중이지만 떨어지지 않는 대포 탄의 궤도 이야기. 이를 통해 설명되는 행성. 계절이 존재하는 이유는 지구의 기울어진 자전 축 때문이라는 것. 태양에너지로 만물이 움직일 수 있는 원리. 다양한 색깔이 합쳐진 빛이 각자 다른 각도로 굴절되는 각 색광의 성질을 이용한 프리즘으로 빨주노초파남보가 드러나는 이야기. 이것이 물방울을 통한 굴절을 통해서 어떻게 사람들에게 무지개로 보이는가 하는 이야기. 그 밖에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자외선과 X선, 감마선, 적외선, 마이크로파, 전파가 있고 이것들을 우리가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것에 착안해서 각 별이나 은하들에서 오는 원소 빛(나트륨 빛 등)의 스펙트럼 바코드를 이용해 도플러 효과를 대입해서 이것들의 파장이 멀어지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아내고, 이를 통해서 빅뱅이론을 증명하는 과정. 맨틀의 대류로 인해서 판이 이동하거나 섭입하면서 지진이 일어나고 땅이 솟아 산이 되는 과정 등이 아주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비록 전부 이해한 것도 아니고, 읽으면서 한 번에 읽힌 것도 아니지만(그나마 이해를 하면서 읽느라 굉장히 느리게 읽었습니다.) 이와 같은 기초적인 과학 지식을 그 결과의 단순 암기가 아니라 풍부한 과정까지 함께 익힐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모릅니다. 비록 저자가 왜 나쁜 일이 일어날까? 기적이란 무엇일까? 등 대놓고 미신을 믿는 우리들을 계몽시키겠다는 의도가 드러난 장들은 살짝 기분이 찜찜했지만, 이를 뺀 다른 장에서 관찰을 통해 얻은 지식, 이를 통한 검증, 그리고 이를 전제조건으로 깔고 한 단계 더 나아간 질문과 다시 이에 대한 검증 등 과학적 지식 도출 과정의 압축판을 보는 즐거움은 컸습니다. 전에 과학콘서트를 읽으며 느꼈던 아쉬움인 새로운 학문적 연구 방법에 대한 접근이란 목표를 조금이나마 이뤘다는 약간의 뿌듯함도 맛보았습니다. 평소에 저처럼 이공계열 지식에 흥미는 있으나 접근이 부담스러웠던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개정판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적이란 게 무엇일까요? 누구는 한을 얘기할지도 모르고, 누구는 흥을 얘기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 대해 아무도 시원한 결론을 내려주지 못하는 걸까요? 원래 미감이란 상대적인 개념이라서 그렇다는 게 큰 이유일 겁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죠. 우리는 왜, 한국적인 게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걸까요?

 

저는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이런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 분이 말하는 한국의 미라는 게 무엇인지를 떠나서, 그것을 계속해서 자문자답하는 모습에서 어떤 안간힘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가 볼 때 자기 것이 아닌 근대를 살아가는 한 지식인의 안간힘이었습니다. 이 글이 쓰였을 때는 6~70년대, 혹은 7~80년대입니다. 말하자면 산업화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 사회에 근대화라는 변화가 무섭게 몰아쳤던 때였죠. 문제는 이 근대가 우리의 전통을 바탕으로 딛고 일어선 결과가 아닌,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서 이뤄나갔던 근대였다는 겁니다. 어려운 말로 하면 이식된 근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서양의 경우 자기네 사회 내부의 발전논리에 따라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그에 걸맞은 조직과 사상을 알아서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들에게 근대는 태생부터 자기네 것이었고, 그 안에서 자신들의 전통을 살려나가는 나름의 노하우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겠죠. 서구적이란 게 무엇일까?를 물을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그 안에선 뭘 해도 서구적이라는 자신감이 있었을 테니까 말이죠. 반면 우리는 어땠나요? 일단 조선이 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과정이 근대화의 첫 출발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지독한 전쟁, 그리고 몇 번의 독재(를 통한 이식된 근대의 완성). 이 모두가 서구의 방식을 베껴오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던 거죠. 때문에 우리는 그 안에서 끊임없이 우리 것이 무엇인지를 되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생산양식 자체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뭐 하나라도 우리 것이 있는지를 찾을 수밖에 없고, 근대라는 이식된 체제에 먹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토착화시켜야 할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제3세계 지식인의 슬픈 현실. 그 현실의 한복판에 저자가 있었다고 봅니다. 어떤 공부를 하건 이와 같은 질문을 피해갈 수는 없었을 테고, 따라서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저자가 맞닥뜨린 건 하나의 거대한 예술적 고민이었을 테죠. 단절된 근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다시 이어받아야 할 한국적인 미감은 어떤 것일까? 이걸 어떻게 근대에 맞게 다시 녹여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 거기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풀어놓습니다.

  

고담, 야취, 고졸한 멋, 자연에 들어앉아 있으면서 자연을 더욱 살리는 건축 등, 저자가 풀어놓는 한국의 멋은 대충 이런 용어들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이 있습니다. 과연 한국미라는 게 저것밖에 없을까? 저자 자신도 저것만이 한국의 진정한 멋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닐 겁니다. 우리에게는 고려불화가 가진 도안의 세밀함과 화려함이 있었고, 청자의 귀족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신라의 금관문화 등 장식미란 것에도 한 가닥의 솜씨를 가진 조상들이 있었으니까요. 저자도 이걸 모르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유독 현대의 건축문화, 생활문화 등과 관련지어서 강조하는 건 위에 나열한 것과 같은 멋이죠. 따라서 이건 한국미의 본질이라기보단 저자가 고른 한국미의 선택적 본질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 질문은 이렇게 구체화됩니다. 왜 저자는 근대의 격변기 속에서 위와 같은 한국미를 '선택'했을까? 그 의도에는 저 미가 근대의 토착화에 어떤 시발점이 될 거라는 판단을 내렸던 것일까?

   

아마 살아계셨다면 물어보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자는 지금 이 세상 분이 아닙니다. 이유야 여러 가지로 다양하겠지만 저는 사실 저런 미들이 우리 근대의 '생활' 속에 정착할 수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특히 건축에 있어서 그랬습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조화를 이루는 건축미의 형태는 분명 대단한 것이지만 절이나 정자 등 생활과 유리된 여가시설 혹은 종교적 건물들에 국한된 형태입니다. 분명 심혈을 기울여서 제작했겠지만 생활과는 동떨어진 건축물들인데, 근대를 우리식대로(한국미로서) 품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생활에 밀착한 한국미여야 할 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기술이 아니라 우리의 미의식안에 그것이 자리잡고, 구체적인 생활+예술로 통합되어 표현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 그 전망이 썩 밝지만은 않았습니다. 단절된 근대를 겪은 채로 이미 3~4세대에 이른 우리들은 한국미가 문화적 유전자로 자연스레 이어진 게 아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선택해서 배우고 재창조해낼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따른 한계를 역설적으로 이 책이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유홍준 씨가 한 말이죠. "전통을 정말로 아는 사람은 전통을 바꿀 줄 아는 사람이다." 전통이 가진 정신의 요체를 알면 그 껍데기인 형식은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는 말인데, 그 정신을 물려받지 못한 우리는 예전 공예와 건축이 가진 형식을 얼마나 창조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걸까. 그걸 못해서 이상한 태극문양을 그려넣고 지하철 벽에 뜬금없이 학 그림과 거문고를 뜯는 한복 입은 여인을 그려넣으며 한국전통을 잇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마냥 낙담만 할 일은 아닙니다. 이 책은 분명 우리의 미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을 피력한 설득력 있는 책이며, 거기에 따른 독자적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습니다. 고전은 영원하다는 말이 있듯이. 이런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 한국적 미에 대한 수요가 다양한 곳에서 생겨난다면, 이런 데이터가 여러 분야의 창작자에게 한국적 미의 재창조를 자극하는 영감의 재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결국 한국적 미의 부흥이겠죠. 저자도 그와 같은 것을 기대하면서 이 책을 썼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한국적 미는 다층적이며, 저자가 선택한 한국적 미가 본질 그 자체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다양한 세대에겐 그 세대가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한국적 미가 있을 수 있음을 뜬금없지만 저자가 쓴 언어를 통해 보았습니다. 아까도 쓴 말이지만 고담, 야취, 전아 등등...요즘에는 쉽사리 알아들을 수 없는 한문 단어들입니다. 1910년대 생인 저자에게 이런 단어와 문장은 젠체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녹아든 한문세대의 소통 언어였을 것입니다. 저자는 이런 단어를 다른 미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썼지만, 저는 오히려 그 도구가 시간이 지나면서 가진 독특한 멋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요즘에 쓰이는 문장들에선 찾을 수 없는 새로운 종류의 멋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명제에 입각해서 본다면 문자를 엄숙하게 대했고 달리 말하면 문자를 유일한 정보전달의 수단으로 신봉하다시피 했던 문자세대가 발견한 한국적 미와, 다양한 정보전달 수단을 가지고 있고 엄숙한 문자보단 익살을 부리는 문자에 익숙한(페이스북의 댓글들이나 진중권 씨 등) 우리 세대가 발견할 수 있는 한국적 미는 분명 다르지 않을까요? 바로 그걸 시도하는 데에 저자가 바란 한국적 미의 부흥이 달려있다고 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 개정증보판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과학 콘서트는 기본적으로 대중교양서입니다. 여기서 대중교양서란 말은 "야, 과학이란 게 너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딴 세상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야"라는 말로 보통 사람이 과학을 친숙하고 필요한 것으로 느끼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책은 그래서 전통적으로 인문과학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화두들에 대담하게 도전한 과학계의 성과들을 기록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히트한 음악들에는 프랙탈 구조가 숨어있다는 사실로 예술의 영역에 새롭게 접근하며, 백화점의 동선 관리를 소개하며 마케팅에 뛰어든 과학적 접근방법을 소개합니다. 일상 속에서 새롭게 발견된 '의외로' 중요한 과학적 사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과학적 지식이 응용된 '새롭게 발견된' 일상들을 알려주는 게 이 책의 중요한 줄기 중 하나이죠. "일상 속에 우리가 가진 조그만 의문이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가져올 수도 있고, 전혀 몰랐던 과학적 음모(?)를 파헤쳐 줄 수도 있어, 그러니까 너도 한 번 생활 속에서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과학의 세계에 관심을 가져봐, 그럼 네 생각보단 훨씬 재밌게 살 수 있을걸?" 이렇게 저자가 속삭이는 것 같군요. 아니, 사실 그렇게 대놓고 말합니다. 자신이 바라는 건 이 책을 읽고 재밌었다고 말하며 끝내는 게 아니라 관련 자료를 파헤치도록 하는 게 최종 목적이며, 그러기 위해서 각 장마다 자신이 참조한 논문들을 몽땅 달아놓을 거라고(실제로 그렇게 합니다.) 머리말에 밝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이렇게 '일상 속의 과학'이 이 책의 큰 줄기라면, 또 하나의 커다란 줄기는 학문 간의 융합이 갖다 준 문제해결에 관한 새로운 영감, 그리고 그 융합의 중심에 과학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소개입니다. 교통 문제는 행정가들이 가진 오랜 숙제였죠. 주식 투자와 예측은 경제학자들의 오랜 골칫거리였고, 명곡과 명화를 어떻게 남길 것인가는 예술가들이 알고 싶어 하는 오랜 과제였습니다. 바로 이 문제들이 응용물리학과 네트워크 이론 등으로 꽤나 경쾌하게 설명됩니다. 입자 간 밀도와 이동의 공식이 교통문제에 대입되고, 카오스 이론의 대입으로 복잡계 경제학이 탄생되며, 잭슨 폴록의 그림은 프랙탈로 분석되어 우리에게 새로운 미학적 개념을 던져줍니다. 저자의 이와 같은 선정엔 과학이 생각보다 친숙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우리가 굳이 학문의 벽에 갇혀있을 필요가 없으며, 학문 중심보단 문제 중심으로 유연하고 창조적으로 사고할 때 인간의 지식은 더욱 발전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물론(저자가 과학자여서 그렇게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 중심엔 과학이 존재한다는 거죠. 하지만 방법이 무엇이든 저 주제들은 무엇보다 인문적이며, 우리의 상상을 요구하는 주제입니다. 다만 그 상상을 풀어가는 구조가 과학적 논증 방법과 지식을 따르고 있는 것이죠. 저는 오히려 여기서 무언가를 배우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가져야 할 자세를 생각했습니다. '창조적으로 상상하라, 하지만 그 다음엔 치밀하게 검증하라'. 어느 학문이나 마찬가지 태도를 요구하지 않을까요? 그 기본자세만 굳게 지킨다면 어느 것의 외피를 빌려오건 본질은 같다는 걸 보여준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말한 이야기들만을 놓고 보면 저자는 과학의 무조건적인 진보와, 복잡한 세상에 명쾌한 과학적 설명이 가능하다고 믿는(표지 부제이기도 합니다만)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와 같은 과학이야기를 쭉 풀어놓으면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개념이 있습니다. 카오스 이론입니다. 여기에 대해선 차민철 교수님이 친절히 설명해 주셨는데, '과학의 기본 원칙은 변하지 않으나 초기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너무 많아 원인 값이 가진 약간의 차이로도 너무 큰 결과 값의 차이가 만들어져서, 단기적인 예측은 가능하나 장기적인 예측은 인간의 인식으로 불가능한, 그래서 학문적으론 비선형적 공식과 확률적 기술 말고는 할 수 없는' 여러 법칙들을 말합니다. 흔히 해석하는 '혼돈'과는 다른 개념이죠. 비유를 들자면,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있습니다. 이 부모는 자신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2~3일 내로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할 것이며, 앞으로 어떤 변화된 행동을 취하는지를 예측할 수 있으며, 그럭저럭 들어맞습니다. 그러나 그 행동이 앞으로 10~20년 뒤 아이에게 어떤 영향으로 나타날지를 예측하려고 했을 때, 또 그걸 고려해서 말과 행동을 하려고 했을 때, 그 시도는 과연 정확하게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아마 신이 있다면 신을 빼고는 아무도 모를 겁니다. 바로 이 상태를 과학자들은 카오스라고 부릅니다(부모님을 사랑하고 존경합시다^^). 과학계에서는 이미 30년 정도 논의 중인 개념이라고 하니, 이 책이 첫 선을 보인 2001년에는 20년 정도 논의된 거였겠군요. 하지만 대중에겐 매우 신선하다고 할 수 있는 이 개념을 저자가 의식적으로 중점적인 소개를 한 데에는 자신의 전공 분야가 비선형 동역학적 관점, 네트워크 이론의 관점에서 뇌를 살펴보는 것이고, 따라서 자신에게 친숙한 이론이 응용된 여러 사례를 모으다 보니 그렇게 된 걸 수도 있겠지만, 그 자신도 과학의 효용성과 진보의 전망을 꾸준히 회의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보여주는 데에 있지 않았나 합니다. 아니 꼭 자기를 그런 존재로 만든다기보단 (저자 자신이 생각하기엔) 과학의 최전선에 선 자들의 성과와 고민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개념이 카오스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최종적으론 과학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가지며 끝나지만, 커튼콜에서 보여준 출간 후 10년 동안 과학계의 빛과 그림자에 대한 소개는(복잡계 네트워크 과학이 가진 엄청난 야심과 함께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소개하는 식이죠.) 엄청나 보이는 과학에도 성장하는 과정의 성장통이 있고, 모든 성장 중인 학문은 그렇다는 느낌을 던져줍니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을 가진 건 오직 심장병 환자뿐입니다. 혈액의 분포도와 산소 농도에 따라 우리의 심장은 최소한의 원칙만 둔 채로 그 때 그 때 불규칙적으로 바뀝니다. 우리가 가진 문제와 상황들에 적극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하려 노력하지 않고, 기존에 지키던 학문적 방법론만 고수하는 학계는, 안정적일지 모르나 병든 곳이요, 고민하고 방황하지만 새로운 상황에 맞춰 변화해 나가려는 학계는 불안할지 모르나 자라나는 곳이라는 것. 굳이 학계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인생에 있어서도 새겨둘만한 가르침이 아닌가 합니다.

 

개인적인 전공과 연결 지어서는 복잡계 과학이나 카오스 이론 같은 게 현재 배우는 빅데이터에서 보이는 사례, 예를 들어 아마존의 책 추천 시스템이 인과관계 분석을 하지 않고 상관관계 분석만 했더니 성공했더라 하는 낭패스러운 사례들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습니다. 과학책을 얻으면서 전공분야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도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그건 엄청난 고수가 될 수록 더 커지는 효과이겠지만 말이죠.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면, 제가 과학 도서를 읽으면서 기대하는 건 그 쪽 분야 전공의 단편적인 지식들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건 결과적인 지식이 아니라(그건 심하게 말하면 제가 응용할 수 없는 한 부스러기입니다.) 그 지식을 도출해낸 과정이며, 그 논리구조와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따라감으로써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것에 이런 식의 방법도 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체득 - 특히 저로서는 신선하게 느껴지는 자연과학의 연구 방법 - 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쉽고 재미있게 쓰였지만 호흡이 짧고, 결과적인 지식들만 나열해놓고 그 나머지 도출 과정은 참조 논문을 제공하는 식으로 미뤄버려서 책 한 권으로 제가 원하는 목적을 온전히 달성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찌 첫 술에 배부르겠습니까. 앞으로 길게 보고 나아갈 생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