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 - 종교, 신화, 미신에 속지 말라! 현실을 직시하라!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데이브 매킨 그림 / 김영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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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읽은 과학 콘서트가 '과학의 언어로 풀어낸 일상'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다면, 리처드 도킨스의 이 책은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 과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자가 사회와 예술의 영역 속 문제를 과학적인 사고로 접근했다면 후자는 전통적인 과학의 영역(그리고 이미 상당 부분 해답이 내려진 상당히 고전적인)에서 제기되었던 의문들과 그 해답의 논증 과정을 최대한 수식을 배제한 채로 일상적인 언어로 따라갈 수 있도록 배려했기 때문입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저는 후자를 더욱 충실한 과학 교양서로 부르고 싶네요. 전통적인 주제라는 점에 있어서 입문서로도 적절하고, 비교적 긴 호흡을 가지고 하나의 결론을 내기 위해 과학자들이 거쳐야 했던 논증과 전제 조건들을 최대한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주전공이라고 할 수 있는 진화론에 대한 설명부터 지구과학에 대한 설명, 분자와 원소 등에 대한 설명까지 제가 몰랐던 고등학교 수준의 지식부터 비교적 심오한 지식까지 아우르는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초보자에게 다소 어려울 수 있는 개념들을 쉽게 이해 가능하게 해주는 친절하고 세련된 삽화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책은 크게 두 가지 점에 있어서 특이한 형식을 취합니다. 하나는 앞에 말한 풍부하고 세련된 삽화이고, 또 하나는 과학적인 설명 이전에 꼭 그 질문과 관련되어 있는 신화들을 먼저 소개하는 식입니다. 이 신화라는 말에는 구약 또한 포함되는데요. 마법과 환상, 초자연적인 설명이 얼마나 지금 와서 어리석은 소리로 들리는지, 이런 식의 설명이 인간의 지식에 진보를 얼마나 가로막는 걸림돌인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런 것보다 과학을 통해서 밝혀지는 자연의 진실이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만드는 시적인 의미에서 얼마나 진정한 '마법'인지를 강조하는 반면교사로서 이용된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아무 거리낌없이 성경을 앞에 인용하는 저자의 태도가 얼마나 확신해 차 있는 과감한 행동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아주 대놓고 창조론 VS 진화론의 불을 붙이더군요. 이런 저자의 태도는 책 전반에 걸쳐서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것이 때로는 치밀한 증명이란 좋은 면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맨 마지막 장인 기적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는 다소 무리한 시도를 감행하게 하는 나쁜 면으로 드러나기도 하더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진화생물학자이자 과학으로 얻은 지식을 유일하게 가치 있는 지식으로 인식하는 저자의 태도는 꼭 의식하며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 유의해서 읽어나간다면 앞에 썼듯이 굉장히 유익한 책입니다. 과학은 우리가 오감으로 느껴서 아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되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들까지 관찰 대상에 포함하며, 이런 것들을 오감의 확장을 돕는 도구, 사례 분석으로 증명되는 모형들의 도움을 받아 점차 우리가 아는 현실로 편입시켜 나가는 데에 그 목적을 가진다는 것. 즉 우리의 직접적인 오감으로 느끼지 못하는 여러 가지 것들을 우리의 오감이 느낄 수 있는 세계로 드러내게 해주는 데에 과학의 목적이 있다는 것. 이렇게 해서 드러나는 세계는 시적인 의미에서 '마법'과 같다는 것. 우리는 자연선택과 갈라지기를 통해 수많은 동물들과 살게 됐지만 사실 그 조상을 하나라는 것.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원자와 그것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원소와 분자. 그리고 결정. 원자 안에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 양성자의 숫자로 정해지는 주기율표. 원자와 원자 사이는 텅 비어 있지만 그 사이의 힘 때문에 고체는 통과할 수 없으며 탄소의 유연한 결합은 그것이 생명을 구성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라는 것. 지구의 곡률과 똑같은 곡률로 휘어지기 때문에 떨어지는 중이지만 떨어지지 않는 대포 탄의 궤도 이야기. 이를 통해 설명되는 행성. 계절이 존재하는 이유는 지구의 기울어진 자전 축 때문이라는 것. 태양에너지로 만물이 움직일 수 있는 원리. 다양한 색깔이 합쳐진 빛이 각자 다른 각도로 굴절되는 각 색광의 성질을 이용한 프리즘으로 빨주노초파남보가 드러나는 이야기. 이것이 물방울을 통한 굴절을 통해서 어떻게 사람들에게 무지개로 보이는가 하는 이야기. 그 밖에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자외선과 X선, 감마선, 적외선, 마이크로파, 전파가 있고 이것들을 우리가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것에 착안해서 각 별이나 은하들에서 오는 원소 빛(나트륨 빛 등)의 스펙트럼 바코드를 이용해 도플러 효과를 대입해서 이것들의 파장이 멀어지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아내고, 이를 통해서 빅뱅이론을 증명하는 과정. 맨틀의 대류로 인해서 판이 이동하거나 섭입하면서 지진이 일어나고 땅이 솟아 산이 되는 과정 등이 아주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비록 전부 이해한 것도 아니고, 읽으면서 한 번에 읽힌 것도 아니지만(그나마 이해를 하면서 읽느라 굉장히 느리게 읽었습니다.) 이와 같은 기초적인 과학 지식을 그 결과의 단순 암기가 아니라 풍부한 과정까지 함께 익힐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모릅니다. 비록 저자가 왜 나쁜 일이 일어날까? 기적이란 무엇일까? 등 대놓고 미신을 믿는 우리들을 계몽시키겠다는 의도가 드러난 장들은 살짝 기분이 찜찜했지만, 이를 뺀 다른 장에서 관찰을 통해 얻은 지식, 이를 통한 검증, 그리고 이를 전제조건으로 깔고 한 단계 더 나아간 질문과 다시 이에 대한 검증 등 과학적 지식 도출 과정의 압축판을 보는 즐거움은 컸습니다. 전에 과학콘서트를 읽으며 느꼈던 아쉬움인 새로운 학문적 연구 방법에 대한 접근이란 목표를 조금이나마 이뤘다는 약간의 뿌듯함도 맛보았습니다. 평소에 저처럼 이공계열 지식에 흥미는 있으나 접근이 부담스러웠던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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