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난학의 세계사 - 중학적 세계를 넘어 일본이 유럽과 열대에서 접속하다
이종찬 지음 / 알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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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이웃한 두나라 한국과 일본이 걸어온 길이 다르다는 사실에 궁금증을 품곤 한다.

상식적으로 공시적 동질성이 비슷한 두 나라간의 역사가 어떻게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었는가?


흔히 임진왜란이 끝나고 조선후기까지 통신사파견등으로 우리는 좀더 발달된 문화를 보유한 입장에서 일본에 문물을 전해주는 위치였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근세에 접어들어 순식간에 그 위치는 역전되어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일본은 유럽의 제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시아의 독보적 패자로 군림하게 된다.


단지 일본이 호전적이고 야만적이어서 그렇게 되었을까?

왜 우리는 유구한 문화적 우월성에도 이 역사적비극을 막지 못했을까?

왜 우리도 일본처럼 이 시기에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을까?


난학의 세계사라는 책에서 여러가지 의문점에 대한 해답을 약간이나마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의학사연구를 위해 미국에 유학했다가 열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동남아시아 열대를 매개로 한 유럽과 일본의 문화적접촉으로 인해 난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났고 이 난학의 발달이 근세 일본의 운명을 결정짓는 열쇠가 되었다고 본다.


난학은 네덜란드와의 무역이 활발했던 18세기 일본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의학,박물학,지리학등의 네덜란드학문을 수용하면서 생겨난 서양 학문이다.


16세기부터 시작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아시아 진출로 인해 동남아시아 여러곳에 무역거점들이 세워지고 이 무역거점중의 하나가 일본 나가사키에 세워지게 되면서 일본과 네덜란드간의 활발한 무역이 시작된다.


1600년에 처음으로 네덜란드의 상선과 대면한 도쿠가와 막부는 기독교의 포교는 엄격히 금지하고 무역도 나가사키의 한곳에 데지마라는 인공섬을 만들어 그곳에서만 무역을 하도록 관리하였다. 그곳에서 19세기 중반까지 활발한 무역활동이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활발한 학문의 교류로 인해 난학이 발달하게 된다.


이 책은 두개의 큰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부분은 스기타 겐파쿠라는 의학자가 쓴 난학사시의 번역본이고 뒷부분은 네델란드와의 교류를 시작으로 난학이 어떻게 일본의 근대적이념으로 이어질 수 있었는지를 설명한다.


스기타 겐파쿠는 난학사시에서 네덜란드어를 학습하려는 그 당시의 여러 지식인들의 모습들과

부족한 지식으로 네덜란드의 서적들을 일본어로 번역하려는 난학자들의 노력하는 모습들을 솔직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한 해부학시연을 보고 시작한 해체신서라는 해부학서적의 편찬이 난학이 시작된 시초이다.

이 해체신서는 중국과 조선을 거치지 않고 바로 서구의 서적을 본격적으로 번역한 첫 번역서여서 그 역사적 의의가 크다.


결론적으로 난학이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중국과 조선으로부터의 중화중심사상을 극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므로써 다른 아시아국가들이 유럽제국주의의 무차별적 침략에 정신을 못차리는 사이 일본은 여유있게 대응하면서 아시아와 태평양의 지배라는 제국주의적인 지리적 상상력까지 소유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조선은 어떻게 서양과 대면했는가?

동인도회사 선원이었던 하멜의 표류기는 유럽에 야만적이고 미개하다는 그릇된 조선의 이미지를 심어주게 되어서 이 이미지는 계속 이어지게 된다.

반면 일본은 일본지라는 영국의 박물학자가 쓴 책이 유럽에 널리 알려지게 되어 긍정적이고 정확한 이미지가 서구사회에 퍼지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책에서는 마지막에 조선의 실학과 난학을 서로 비교한다.

실학은 관념적이고 청각중심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반면 난학은 해체신서등의 해부학과 여러 박물학책을 통한 도상의 발달로 인해 기술적이고 시각중심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되어 근대적 학문발달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난학이라는 한 학문만으로 근대일본의 형성을 판단하는 것은 분명 무리이다.

하지만 일본을 형성해온 근대를 촉발시키는데 일조한 것은 분명하다고 본다.


난학사시는 근대일본의 선각자인 후쿠자와 유키치에게 큰 영향을 주어 메이지유신이후의 이념적인 토대가 되었다.


이 책의 약간 아쉬운 점은 문화적 수용의 매개체라는 측면에서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의 열대문화가 일본의 서구문화수용에 어떻게 기여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부족하고 한일간의 관계를 떠나서 무역과 교류를 통한 문화적 접변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타 문화권에 대해 영향을 주었는가의 부분도 좀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으로 보인다.


이런 주제에 대해 심도있게 파고들고 싶다.


비약이긴 하지만 결국 한일간의 차이가 발생한 원인에 대한 해답은 18세기 일본의 한 지식인이 각고의 노력으로 번역한 해부학서적에서 시작되었고 조선의 지식인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이 거대한 역사적차이를 만들어 내었다고 생각된다.

문화의 힘은 참으로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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