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미소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사강을 읽은 것은 -대부분의 이들이 그러하듯- 고등학교 적 『슬픔이여, 안녕』이었다. 해설에는 ‘안녕’이란 ‘goodbye'가 아닌 ’hello'에 가깝다는 것과 책이 아닌 그녀를 소비하려는 -일종의 신드롬이 되어버린- 현상에 그녀가 느끼는 거북함과 당혹스러움에 대해 적혀있었다. 굉장히 매력적인 여자인가 보다 싶은 심드렁한 마음과 hello라는 단어만이 기억에 남았다. 그렇게 ‘읽었다는 기억’만 남고 꽤 오랫동안 그녀를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사강의 책이 세 권 나란히 꽂혀있는 것을 도서관에서 발견했고 오랜만에 그녀와의 조우를 시도했다. 그리고 쓴 짧은 -다른 책의- 리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사강의 책은 재미있다. 문장은 짤막하고 단어는 적확하고 표현은 추상적이되 모호하지 않다. 쉽게 읽히지만 내용이 가볍진 않다. 어딘가 무뚝뚝하지만 야무지고 뼛속까지 세련된 그야말로 '프랑스 아가씨'의 느낌이 난다. 무엇보다 매력 있다. 엄청난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문장도 단어도 숨을 쉬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강에게는 미안하지만 나 역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향과 외모와 목소리와 인생을 살았는지가 궁금해졌다. '대체 이런 글을 어떻게 쓴 거야' 라기보단 '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글을 쓰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게 만드는 문체랄까.

 

그리고 이 리뷰의 일부에 여전히 사강의 글은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미소』는 국내 번역된 사강의 책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지만 내러티브면에서는 가장 약한 글이기도 하다. 도미니크라는 파리의 한 여대생이 사랑에 빠지고, 사랑의 절망과 단애에 대해서 배우고, 결국 유연하게 그것에서 빠져나오게 되는 이야기라고 해야할까.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연애 이야기, 혹은 불륜이 될 수도 있는 글이랄까. 그러나 사강은 자신이 가장 잘 하는 특기, 그리고 그녀만의 특징을 솜씨 좋게 녹여냄으로써 독특하게 만들어냈다. 말하자면 무연하고도 솔직한 감정, 회의적이지만 비관적이지 않은 사고, 다소 악마적이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의 배치, 풍부하면서도 적확한 표현은 이 책에서도 드러난다.

 

주인공인 도미니크는 사랑에 푹 빠져 있지만,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볼 수 있을 만큼은 거리를 두고 있다. 그녀는 애써 자신을 정당화시키려 하지도 않고, 자기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지도 않으며, 위선과 가식을 덮어쓰는 것을 -싫어하기보다도!- 귀찮아하는 여자다. 이렇게 도미니크는 여러모로 신기한 여자지만, 특히나 자신의 상황을 이해시키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수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감탄할만하다. 이런 구절들을 보자.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그것은 열일곱 살까지 내가 많이 하던 일종의 스포츠였지만, 지금은 그것에 대해 일종의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나는 뤽이 나를 사랑하는 경우에만, 뤽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경우에만 나 자신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생각은 바보 같았다.

 

나는 이 이야기에 다른 측면이, 내가 모르는 비참한, 아니, 비참하지조차 못한, 일상적이고, 슬픈 측면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이 이야기가 내 소관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 얼마나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가.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히고, 자신 안의 어두움과 허기짐에 맞닿게 되고, 자신을 바꿔서 사랑을 쟁취하려고 하는가. 그리고 상대의 감정과 생각의 사이, 생각과 행동의 간극 사이에서 얼마나 당황해했는가. 도미니크의 사랑 또한 연약하고 뻔뻔하고 죄책감의 달콤한 과실을 물고 행해진다, 대부분의 사랑이 실제로 그러하듯이. 그러나 그녀는 사랑의 열병이라는 고독과 침묵 속에서 벗어나게 된다. 어느 날 바로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나는 아주 주의하며 내 방으로 다시 올라갔다 음악은 끝나 있었고, 나는 음악의 끝부분을 놓친 것이 안타까웠다.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고는 놀랐다. 미소 짓는 내가 보였던 것이다. 미소 짓는 나 자신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혼자라는 것. 나는 나 자신에게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혼자, 혼자라고. 그러나 결국 그게 어떻단 말인가? 나는 한 남자를 사랑했던 여자이다. 그것은 단순한 이야기였다. 얼굴을 찌푸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흔히들 사람이 자신의 슬픔, 혹은 좌절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단계가 있다고 말하지 않은가. 도미니크는 부정과 체념 인정과 수용의 단계를 넘어서 자신의 사랑에 라벨을 붙여 역사 속에 묻어둔다. 지나온 사랑에 대해서 더 이상 얼굴을 찌푸릴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그녀를 나는 사랑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이런 모든 단계를 심어준 사강을 사랑한다. 나 역시 이별을 겪은 후에 도미니크처럼 수없이 중얼거렸으니까. 누군가를 사랑하고 지나간 일에 얼굴을 찌푸를 이유가 어디 있으랴. 이것이 이별에 대한 사강식 위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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