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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의 마법 - 헤르만 헤세의 그림여행
헤르만 헤세 지음, 이은주 옮김 / 국민출판사 / 2025년 3월
평점 :
_저는 하얀 종이에 연필로 간단히 스케치를 하고 팔레트를 꺼내고 물을 부었습니다. 이제 붓을 물에 적시고 네이플스 옐로 물감을 살짝 묻혀 제 그림에서 가장 밝은 점을 찍습니다. 그건 저 뒤편의 잎이 무성하고 싱싱하게 물이 오른 무화과나무 위에서 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박공입니다. 이제 저는 조반니나 마리오 카바디니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저는 잔뜩 긴장하고 집중하여 녹색과 회색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하려 애쓰고 있습니다._p28
글로 만나는 헤세도 좋지만, 선명하고 투명한 색감으로 만나는 헤르만 헤세는 사랑스럽다. 나이 들어 시작한 그림에 대한 그의 생각은 더 늦게 그 세계를 알게 된 나에게도 많은 공감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냥 헤세의 그림 자체가 주는 느낌이 그렇기도 하기 때문이다.
맑은 수채물감의 조합을 고민하고 툴툴거리기도 하는 #헤르만헤세 그림에세이, #색채의마법 속의 대작가는 새로운 영감을 받는 순수함 그 자체였다. 담백한 문체와도 무척이나 닮아있는 그림들로 눈도 즐거웠다.
그림마다의 사연들과 안에 담긴 스케치와 색채를 내는 과정, 어려움 등이 섬세하게 담겨있었는데 특히 이런 그리기 과정을 묘사한 부분들이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 다운 삶에 대한 성찰까지....
#헤세 가 1차 세계대전 시기에 현실의 고통의 시간을 견뎌냈던 탈출구가 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였다고 하는데 이는 다만 헤세만의 사정으로 국한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이면 누구나 삶의 어두운 시기에 붙잡고 갈 뭔가가 필요하다. 어쩌면 그래서 가만히 나의 내면에 자유를 줄 수 있는 표현수단들이 필수적일지도 모르겠다.
_누구나 마음속에 무언가를 가지고 있고, 누구나 말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침묵하거나 더듬거리지 않고, 말로든, 색채로든, 음조로든 그것을 정말로 표현하기도 하는 것, 오로지 그것만이 중요합니다!_p38
오랜만에 헤르만 헤세와 함께하면서, 일상에 묻어있는 아름다움과 삶에 대한 희망과 기쁨을 찾는 법을 즐겁게 쫓아갈 수 있었던 시간이였다.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참 따듯한 시간이기도 했다.
_오늘 같은 날은 뭔가 다르고 특별했습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날이 아니라,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 날이었습니다. 이런 날에는 붉은색이나 황갈색 점 하나하나도 초록색에 대비되어 풍부한 울림이 있었고, 포도밭의 낡은 말뚝들도 각각 그림자를 드리운 채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아름답게 서 있었습니다._p21
_헤세는 여든 살이 되던 해에 리버풀의 한 독자에게 이렇게 썼다. “제게 있어서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 두 가지는 음악 연주와 그림 그리기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 모두 단지 아마추어 수준으로밖에는 할 수 없지만, 이것들은 삶을 지속시키는 어려운 과제를 해내는 데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_p103 '후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