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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44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김재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0월
평점 :
_나는 두려움을 이기려고 뭔가 했다. 밤새 앉아서 글을 썼다. 그래서 지금은 울스가르 들판을 가로질러 먼 길을 달려온 것처럼 피곤하다._p21
10대때 많이 좋아했었던 릴케의 시와 작품들, 어른이 되어 가끔 시만 종종 들춰보다가 #말테의수기 를 #을유문화사 의 #세계문학전집 으로 다시 읽게 되었다.
릴케가 주인공을 통해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알려진 이 책은, 온전한 시인으로,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고 싶은 청년 말테의 관점을 따라가고 있다.
청년 말테, 작가의 눈으로 따라가는 공간은 인물에 대한 관심보다는 사물들에 집중되어 있었다. 책갈피에서 장미 꽃잎이 떨어져 발에 밟히는 장면만이 사진처럼 박혀있고, 한낮의 시간과 질병들, 내뿜는 숨결, 여러 해 북은 연기.... 입에서 나는 단내...등의 냄새가 문장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작가를 꿈꾸며 온 파리지만, 사람들 속에서는 죽음과 무관심이 더 느껴졌다. 그래서 예민하게 사물들, 감각들에 집중하고, 스스로를 가두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생각들을 적어가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살기 위해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 글을 썼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시인으로, 예술가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에 대한 거대한 독백으로 느껴졌다. 예전에는 단순한 고백으로 다가 왔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화자와의 공감도 같이 느껴져서 나 스스로도 놀랐다. 나이가 들어서 인가, 요즘의 내 상태인가...
눈에 걸리는 모든 것은 주인공의 해석의 대상이 되고, 보이지 않는 것까지 묘사하기 위해 자신의 손이 움직이며 독립성을 부여한다. 이런 것이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던 말테의 -릴케의- 운명처럼 느껴졌다. 이 책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릴케의 작품들에 대한 성찰도 더해지는 듯 했다.
어떤 스토리보다는 의식의 흐름으로 읽는 글은 주인공의 평범하지 않는 고민들이 더 짙게 느껴졌고 시대를 초월해서 가지게 되는 창작자들의 감성과 모순들을 체험해볼 수 있었다. 긴 여운은 명작의 보너스!
#라이너마리아릴케 의 시들을 다시 열어봐야겠다.
_9월11일 툴리에가에서: 그래, 이곳으로 사람들은 살기 위해 오지만, 내 생각에는 오히려 여기서 죽어 가는 것 같다._p7
_잠깐 더 나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나의 손이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 내가 나의 손을 향해 쓰라고 명하면, 나의 손은 내가 생각지 않은 말들을 써 내릴 그런 날이 올 것이다. 다른 해석의 시기가 밝아 오리라._p59
_순간 아버지가 확실한 것을 원했음을 깨달았다.
...... “심장 찌르는 일 때문에 오셨군요. 부탁드립니다.”_p170
_내가 굳이 여기서 이들과 나를 구별하려는 것은 아니다. .... 나는 그들과 같은 삶을 살 용기가 없다. 나는 한쪽팔이 불편해지면 그걸 감추겠지._p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