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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도우 지음 / 수박설탕 / 2022년 7월
평점 :
_잘 자요. 좋은 꿈꾸고.
건의 메시지였다. 휴대폰을 제자리에 올려놓고 진솔은 스탠드 조명을 켰다. 형광등을 끈 뒤 침대로 들어가서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1분, 2분, 3분.... 감은 눈꺼풀 위로 스탠드 조명이 밝게 스며들어 그녀는 몸을 한 번 뒤척였다._p83
_말도 안 돼. 그녀에게 문득 쓴웃음이 스쳐 갔다. 그 남자가 언제 사랑한다고 했는데? 그 남자가 언제 입맞춤을 했고... 언제 내가 기대하도록 했는데? 그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분명히 그런데.... 왜 마치 잠든 사이 몰래 찾아와 입 맞추고 가기라도 한 것처럼, 내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까?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을 바라보다 진솔은 조용히 중얼 거렸다. “...우습네.”_p92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설... 소소한 일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읽다보니 드라마작가 진솔과 PD 건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였다. 주변인물들도 나오지만 주요 화자는 진솔이다.
직장동료인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 서서히 젖어드는 감정에 오락가락 하는 이들을 보며 “그렇구나...” 하며 바라보는 나를 발견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계속되는 대화들과 섬세한 표현들이 참 좋다 하면서도, 글이 아니라 잘 만들어진 드라마로 만났으면 더 좋겠다는 아쉬움이 개인적으로는 남는다.
모든 것이 복잡했었던 그 시절의 이들은 말 한 마디에 흔들린다... 뭐 지금의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이 추억만으로도 삶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안심하며 이들을 보낼 수 있었던 마무리여서 좋았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하기를” 진심으로 빌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뒤에 부록처럼 넣어져 있었던 ‘비 오는 날은 입구가 열린다’ 이 더 기억에 남는다.)
_보기 좋게 깎은 연필을 필통 속에 잘 넣어두고 다시 새것을 꺼내 깎기 시작했다. 일이 손에 안잡히거나, 왠지 마음이 들뜨고 심란할 때면 연필 몇 자루를 깎는 게 그녀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칼끝에서 밀려나가는 가느다란 나뭇결을 쳐다보는 게 좋았고, 검은 흑연을 사각사각 갈아내는 감촉도 좋았다. 세월이 흘러도 어린 시절 맡았던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연필 깎을 때 연하게 풍겨오는 나무 냄새도 마음에 들었다._p5
_건은 말문이 막힌 채 들끓는 복잡한 감정을 억누르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좋은 사랑 할 거에요. 사랑해서 슬프고, 사랑해서 아파 죽을 것 같은 거 말고.... 즐거운 사랑 할 거예요. 처음부터 애초에 나만을 봐주는 그런 사랑이요.”
침묵이 흘렀다._p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