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망각 일기 ㅣ 세라 망구소 에세이 2부작
세라 망구소 지음, 양미래 옮김 / 필로우 / 2022년 12월
평점 :
_지금까지 나는 전날과 비교해 달라진 점을 일기에 기록해왔다. 그런데 가끔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달라지지 않은 점만 기록하면 어떨까? 날씨는 여전히 좋음. 고양이는 여전히 사랑스러움. 똑같은 냄비에 똑같은 귀리 요리를 함. 같은 책을 계속 읽는 중. 같은 방식으로 이불을 정돈하고, 같은 청바지를 입고, 같은 순서로 식물에 물을 줌..... 이게 더 나은, 더 진실한 기록이려나?_p31
이 문단이 너무 좋다. 정말 그러네? 나도 이렇게 해볼까?
매일 하는 것이 뭐가 있더라?.....! 하는 생각들이 줄줄이 들었다.
일기와 기록에 진심인 저자 세라 망구소의 <망각 일기> 의 한 부분이다. 이렇게 되풀이 되는 잔잔한 루틴을 적어봐도 참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이렇듯 일상의 생각들부터 수업이야기, 남편과 시어머니 이야기, 아이를 낳으며 느낀 바 까지도 솔직히 적어놓아서 이 책은 꼭 고백서 같기도 하고 진술서 같기도 하였다.
일기지만 질척거리지 않는 깔끔하고 단정한 문체가 마치 요점만 쏙쏙 뽑아놓은 것 같았다.
때론 철학서 같기도 해서 자꾸 곱씹어 보게 되는 지점들도 많았다.
많은 설명은 필요 없고, 그저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휑한 가슴을 채워주는 쓰기가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될 지도 모른다. 내가 일기를 제대로 다시 쓴다면 이런 분위기였으면 좋겠다.
_일기를 써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쓰기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쓰지 않고는 시간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을 단 한 가지도 떠올릴 수 없었다._p8
_내가 경험한 수유는 기다림이었다. 엄마는 아이가 살아가는 배경이 되고, 시간이 된다._p58
_어쩌면 문제는 삶의 형태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한다는 사실, 그에 따라 우리가 다양한 층위의 충만감을 느낀다는 사실에 있는 듯하다. 그게 아니라면 삶의 충만감을 느낀다는 사실에 있는 듯하다.
그게 아니라면 삶의 충만감을 판단하는 우리의 능력이 형편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공허감과 충만감이라는 개념이 행복에 대한 형편없는 은유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진짜로 말하고 싶은 것이 행복이라면 말이다._p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