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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의 폭력 - 고대 그리스부터 n번방까지 타락한 감각의 역사
유서연 지음 / 동녘 / 2021년 4월
평점 :
<시각의 폭력>, 처음 이 제목을 접했을 때는 시각, 욕망에 관련된 사건들 위주로 다룬 내용일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헌데 읽다보니, ‘고대 그리스부터 n번방까지 타락한 감각의 역사’ 가 왜 부제로 달렸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감각의 역사, 특히 시각에 대한 철학, 전통적인 관념, 관종심리에 담긴 역사들까지 고루 다루면서 우리의 이해를 돕고 있다. 최근의 n번방 사건, 동물학대영상 공유, 웰컴투비디오 손정우 미국송환거부판결, 연인(?)사이에 빈번한 협박물로 자리잡은 리벤지 포르노들.. 등과 같이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낯선형태 범죄들 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조차, 그리스 시대 플라톤부터 데카르트와 하이데거까지 이어져 오는 시각중심주의 철학에 깊이 뿌리내려져 있다는 것은 정말 충격 이였다.
이런 ‘오래된 폭력’에 대한 내용이다.
인류 역사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여성착취부터, 시각이 주는 의미까지 예상치 못한 예시들로 확장시켜주고 있어서 이런 내용을 담은 다른 도서들과 차별성을 갖는다.
_영화 <남영동 1985>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던 주인공은 어느날 갑자기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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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끌려온 사람들은 안쪽으로 움푹 파여 숨겨진 출입문을 통과하면 1층에서 한 번 구타당한다. 원형 계단을 기어 올라가면 방향감각을 상실해 이곳이 어디인지 탈출구는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데서 비롯된 공포감이 증대한다. 원형 계단은 5층 고문실과 연결되지만, 끌려온 사람들은 몇 층인지 가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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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영화 <남영동 1985>에서 볼 수 있듯이, 피해자는 늘 안대가 씌워진 채 물고문이나 전기고문을 당하는데, 이때 피해자를 전지전능하게 축이고 구워삶는 고문관은 피해자의 모든 것을 보는 자이다.
‘시각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이 공간에서 무기력하게 누인 피해자의 심신은 고문관에게 늘 끈임없이 감시당하고 파헤쳐진다._p83 84
익히 알고 있는 더러운 이야기들도 있었다.
_수백 년 전 여성의 누드화를 그린 화가가 지인에게 그 모델을 자신의 정부라고 자랑했던 것처럼, 30여년 전 남성들이 ‘재미’를 위해 여성의 나체 사진과 섹스 비디오를 돌려 보았듯이, 디지털 시대의 남성들은 스마트폰 단톡방에서 시간이 사라진 디지털 성착취물을 끝없이 돌려보며 서로의 유대를 확인한다.
이러한 형태는 지금은 폐쇄된 소라넷 육변기 게시판에서 오늘날 n번방의 성착취물 공유로 이어진다.
이들은 왜 이러한 행위에서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것인가?_p150
위 문단의 마지막 질문이 이 내용에서 주관적으로 돌출해 낸 주제이다. ‘재미의 공유’ 라는 이름으로, 공동으로 익명성을 기본으로 하는 행위에서는 수치심이라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필수요소를 무디게 한다고 한다. 전쟁 중에 저지른 집단 성폭행이 지금 와서 생각하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어느 평범한 엘리트 출신 남성의 고백에서 보여 지는 것처럼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는 문제이다.
이 질문을 넘어, 책 마무리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비판을 넘어, 새로운 시각으로 자리 잡은 철학의 가능성을 묻고 있다. 이 가능성을 남성중심사상에서 일찍이 묻혀버렸던 여성적인 것과 촉각적인 것의 복원에 대하여 제시하며, 존재론적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비대면 시대에 도래한 지금도 ‘긍정적 의미의 촉각은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한 감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_인간은 필연적으로 사람들과 구체적인 장 안에서 대면하고 접촉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다. 디지털 시대에서 이러한 경향은 변하지 않아서 이른바 ‘건강한’ 삶이란 주체와 타자 사이에 거리감이 있는 차가운 모니터 대신 실제적인 시공간 속 대면과 접촉을 필요로 한다._p219 220
이 책을 통해, 시각을 통해서 우리가 진정으로 봐야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관한 고찰을 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이러면 안돼가 아니라 본능에만 의지한 감각이 얼마나 얕은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직관’을 통해 보아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_.. 본능은 직관과 달리 이해관계가 있는 사물만을 포착한다.
이에 비해 직관은 “이해를 떠나서, 대상 그 자체를 의식하고, 그 대상에 대해 반성하고, 무한하게 넓어지게 된 본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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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은 우리와 다른 생명체 사이에 자리 잡은 공감하는 교류에 의해,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의식으로부터 획득하는 확장에 의해, 우리를 생명의 고유한 영역으로 인도할 것이다.”_p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