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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파리에서
레일라 지음 / 리플레이 / 2021년 3월
평점 :
_“파리는 아주 오래된 도시였고 우리는 너무 젊었으며 이 세상에 그 무엇도 단순한 것은 없었다. 가난도, 갑자기 생긴 돈도, 달빛도, 옳고 그름도, 달빛을 받으며 곁에 잠들어 있는 한 사람의 고른 숨소리마저도....”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 A Moveable Feast>_
낭만적인 이 제목의 책, <어젯밤, 파리에서>는, 다양한 장르를 연주하며 여러 나라를 기반으로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가수 겸 연주자, 레일라가 파리에서의 생활과 감상을 적은 글이다.
여행자가 아니라, 거주인으로 적어간 파리의 생활과 문화는 낯선 만큼 그 불편함도 읽는 이는 흥미롭다. 파리는 가 본 적이 없어서 거기 생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 느끼는 한국에 대한 생각은 나와도 비슷해서 공감이 많이 되었다. 아마도 어떤 문화, 어느 나라에 있든 다른 곳에 살다보면, 한국에 대해 한 발짝 멀리 떨어져서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_프랑스는 행정이 일관되지 못하기로 악명높은 나라다. 정해진 시스템에 사람이 맞춰야 하므로 적지 않은 기다림은 일상이 된다. 그러나 다채로운 풍경과 역사가 깃들어진 일상을 보장해주기에 여유롭고 다양한 문화적 혜택을 누리며 살 수 있다. 반대로 서울은 사람에 맞춘 현대적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몸은 편하지만, 정신적인(개인적인) 문제가 도드라지는 경향이 있다. 그 때문에 한국에서 지내다 보면 시간이 다른 나라의 시간보다 비교적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_p17
예술이 넘쳐나는 도시에 사는 기분은 어떨까? 오래전 로마에 갔을 때 여기 태어나고 사는 사람들은 그냥 예술가가 되겠구나 하고 느꼈었다. 발에 밟히는 것이 조각들이고 언제나 라이브공연이 길마다 가득했었다. 거기에 박물관들까지!! 내 기억이 맞다면 바티칸 박물관은 1달에 1회 무료입장이 가능했었다... 정말 좋아했던 장소라서 얼마나 부러웠던지....
아마도 이 저자도, 더구나 음악을 하는 저자는 이 도시에서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군데군데 나오는 생활의 불편함은 그 모든 것으로 보상받는 듯하다. 저자의 생각과 가치관도 잘 투영되어 있어서 글의 깊이를 더했다.
_길거리 벤치에 가만히 앉아서 건너편의 대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는 것 또한 내가 자주 행하는 일이다. 에세이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Du Bon Usage de la Lenteur>에서 작가 나보코프는 프랑스어는 귀에 아름다운 언어이고, 영어는 지적인 언어이며, 러시아어는 가슴에 호소하는 언어라고 말한다._p58
_위키피디아에서 한국어의 명사 “사랑”의 옛말은 “다솜”이며, 동사로 “사랑하다”의 옛말은 “괴다”라고 한다. “괴다”, “고이다”의 원뜻은 “생각하다”인데, 이는 사랑하나다는 것이란 곧 누군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웃음이 난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자주 말한다고 닳는 말도 아니고, 또 이를 가볍게 얘기하면 어떤가. 사랑한다는 말은 실로 큰 힘이 있다._p79
다 읽고나서, 저자 레일라의 멋에 푹 빠졌다. <어젯밤, 파리에서> 그녀와 같이 있었던 것 같다.
_내가 원하는 것, 또는 원하지 않는 것들을 나열해보면 결국 근원지인 ‘왜’를 찾을 힘이 길러진다.
나의 시선 속에 있는 것들을 고려하게 되며 비교적 주체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낯설게 질문하는 감각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_p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