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의 품격은 표지에서 시작되지만 그 깊이는 책장을 덮은 뒤에야 드러난다.
영국의 시인이자 번역가 조지 채프먼이 1616년에 펴낸 영문판의 표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가죽 양장 제본과 금박 후가공으로 고전의 물성을 구현했다.
오래된 문학을 소장한다는 기쁨을 넘어 고전이 하나의 오브제가 되는 경험을 선사하는 책이다.
그러나 《오디세이아》의 진정한 가치는 이 아름다운 외형 너머에 있다.
《일리아스》가 전쟁의 한복판에서 인간의 분노와 명예, 죽음의 문제를 파고든다면 《오디세이아》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끝나지 않는 인간의 고통을 응시한다.
트로이아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 오디세우스.
그러나 전쟁의 종결은 그의 삶을 되돌려 놓지 않는다.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10년.
기나긴 방랑을 이어가는 오디세우스의 모습은 위대한 영웅이라기보다 상실 앞에 놓인 한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의 여정에는 승리만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삶의 균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화에서 칼립소의 섬에 갇힌 채 공허한 시선을 보내던 맷 데이먼의 눈빛이 떠오른다.
오디세우스는 지혜와 용기를 갖춘 이상적인 영웅이지만 생존을 위한 지략과 영웅적 자의식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간이기도 하다.
폴리페모스의 동굴에서 살아남은 그가 명예를 과시하다 포세이돈의 분노를 불러오는 장면은 오디세우스를 완벽한 영웅이 아닌 욕망과 판단의 오류를 지닌 평범한 인간으로 돌려놓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디세우스는 영웅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인간의 모순을 드러내며 이상적인 영웅의 전형을 넘어선다.
수많은 유혹이 그의 발걸음을 붙잡지만 그럼에도 오디세우스는 유한한 인간으로서 고향에 돌아가기를 원한다.
오디세우스는 왜 그토록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가.
이타카는 자신이 속한 삶이자 존재론적 이유이기 때문이다.
'불멸'의 삶이 아닌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 그의 여정은 삶의 자리를 회복하려는 시도다.
이는 우리가 하는 여행의 원형이기도 하다.
여행하는 인간의 원형 Home Viator 오디세우스.
그의 귀향은 단순한 고향을 향한 여정이 아닌 수많은 상실과 유혹, 폭력과 좌절을 통과하며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는 기나긴 방랑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돌아갈 곳을 찾는다.
돌아간다는 것은 과거를 그대로 되찾는 일이 아닐테다.
떠나온 시간만큼 세계는 변하고 그 시간을 통과한 나 역시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달라진 자신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다.
고향을 향한 오디세우스의 긴 항해는 끝나지만 삶을 되찾기 위한 여정은 그 순간부터 다시 시작된다.
우리는 결국,
돌아가기 위해 길을 떠나고
달라지기 위해 여행하는 인간이므로.
도서제공 @mir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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