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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의 여름
루시 스티즈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8월
평점 :

이 여름의 끝자락을 머금은 듯 뜨겁고도 강렬한 열기와
이른 새벽의 서늘한 냉기를 동시에 품고
《에티의 여름》은 내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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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제목 《THE ARTIST》으로 보아
예술을 향한 사랑과 욕망일까 생각했지만
《에티의 여름》은
예술의 순수한 가치에 의문을 던지며
그 안에 사랑과 집착, 욕망과 지배 문제를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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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의 뜨거운 빛과 색채.
그 안에는 아지랑이 피어나는 황금빛 들판의 서정과
익어가는 복숭아 향기와 와인의 달큰함,
올리브와 라벤더가 뿜어내는 여름의 숨결이 담겨 있다.
이를 형태와 색으로 포착한 캔버스 위에는
쫀득하게 뭉개지는 유화 물감이
거친 붓질의 궤적을 따라 생생히 자리 잡는다.
작가의 문장을 따라 작품 가득 퍼지는
감각을 들이쉬다 보면
어느새 그 뜨겁고 찬란한 세계 깊숙이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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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배경은 전쟁의 상흔이 아직 남아 있는 유럽이다.
삶의 의미를 잃은 영국인 기자 조지프가
전설적인 은둔 화가 타르튀프를 취재하기 위해
프로방스의 한 농가를 찾아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곳에 살고 있는 위대한 화가 타르튀프와 조카 에티.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를 지켜보던 조지프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함을 감지한다.
이들은 대체 어떤 비밀을 품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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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예술 세계 안으로 숨어버린 예술가 타르튀프와
그가 만들어놓은 폐쇄적인 세계 안에 갇힌 채 살아가는 에티.
그리고 전쟁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했지만
정작 자신의 삶을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조지프.
세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예술과 삶, 욕망과 죄의식의 경계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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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한 사람의 예술을 위해
다른 한 사람의 삶이 소모되는 관계 속에
사랑과 집착이라는 인간의 복잡한 욕망을 담아내는 동시에
예술의 본질과 창조의 의미,
그리고 여성 예술가들이 역사 속에서 경험해온
억압과 소외라는 시대적 배경까지 정교하게 엮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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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중심에 있는 인물 에티는 사회적 약자로 대변되어
공간과 시간, 권위를 억압받으며 자신의 삶을 소모할 수 밖에 없다.
에티가 그려낸 욕망과 재능이 억압당한 여성이라는 상징성은
시대의 수많은 에티를 소환케 한다.
❝왜 여자는 피사체로만 존재해야 하고
관찰자는 될 수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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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조지프의 시선이다.
처음 그는 외부에서 에티를 바라보는 관찰자였다.
그러나 프로방스의 저택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그 역시 누군가에게 관찰되는 피사체가 되어간다.
관찰자와 피사체의 위치가 뒤바뀌는 순간,
조지프는 비로소 에티와 같은 자리에 선다.
이는 그동안 타인의 시선 속에서만 존재했던 에티를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당신이 날 봐주면 좋겠어요.❞
오랫동안 타인의 시선에 갇혀 있던 한 사람이
마침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리고 비로소 에티의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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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의 여름》은 끈적이고 땀에 젖은
한 여름의 꿈 같은 소설이었다.
뜨거운 햇빛과 화실 속의 먼지,
복숭아의 진득한 과즙과 여름의 농후함,
식탁 위 음식의 감각까지
손에 닿을 듯 선명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 눈부신 여름 아래에는
전쟁이 남긴 잿빛 상처와
예술이라는 이름의 억압이 놓여 있었다.
그 눈부심이 강할수록
그 아래 감춰진 어둠도 더욱 선명해질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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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의 여름》은
바로 그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예술에 대해, 자신의 삶에 대해 묻는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난 뒤,
나는 이 계절의 열기보다
에티가 남긴 여름이 더 선명하게 기억될 것 같다.
도서협찬 @gbb_mom @dasanchaek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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