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버빌가의 테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2
토머스 하디 지음, 유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모든 파장의 빛을 거부한 순결한 하얀 꽃, 5월의 흰꽃은 신록을 배경으로 피어나기 때문에 그 순결함이 더욱 도드라진다. 초록의 대지 위를 토끼풀꽃 화관에 순백의 드래스를 입은 처녀가 흰 꽃다발을 들고 초원을 건너 오는 계절이 5월이다. 그렇게 테스는 순결한 흰색 옷으로 갈아 입은 여자들과 춤추며 5월의 초원에 나타난다. 부녀자들이 초원에 모여 춤을 추는 전통의 행렬이 있던 5월 하순 어느 날 소설은 시작된다.

​5월의 행렬에 참가한 테스는 탄력 있고 균형 잡힌 성숙한 몸매였지만 뺨에는 열두 살의 모습이, 반짝이는 눈에는 아홉 살의 모습이, 뺨과 턱의 곡선 따라 다섯 살의 젖살이 아직 남아 있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시골 처녀... 그녀는 어린 아이의 티를 갓 벗어난 순백의 처녀로 블랙모어 골짜기에 살고 있었다.

​​자신의 가문이 몰락한 명문 귀족 더버빌가의 혈통을 이어 받았다는 어느 신부님의 말을 듣고 헛바람이 든 도붓장사꾼 아버지, 아이들보다 철이 들었다고 할 수 없지만 테스에게 아름다운 외모를 물려 준 어머니, 그리고 돌봐야 할 여섯 동생을 둔 가난한 집의 첫째 딸이다.

​우연히 알게 된 귀족 가문의 후손이라는 사실에 고무된 부모는 테스를 더버빌 이란 성씨를 도용하고 살아 가는 부자집 가정부로 보낸다. 그곳에서 하녀로 일하는 테스는 알렉 데버빌이라는 그 집 아들에게 겁간을 당하게 되고 그곳에서 돌아와 아이를 낳게 된다. 미혼모가 된 테스는 고통 속에서 아이를 기르지만 아이는 태어난지 얼마않되 죽고, 미혼모라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다른 지방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곳에서 소젖을 짜는 일자리를 얻어 살아가던 그녀는 운명의 남자 에인젤 클레어를 만난다. 그는 농장 경영을 배우기 위해 그곳에서 일하고 있던 젊은이다. 그를 보는 순간 몇년 전에 그 봄날의 행렬이 있었던 5월, 블랙모어 골짜기의 초원에서 스치듯 만난 사이라는 걸 그녀는 기억해 낸다. 이미 그 봄날 그녀의 가슴 한가운데에 그가 들어와 있었지만 잊고 지내다가 다시 만나는 순간 그녀는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온 마음으로 그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과거 때문에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절한다. 하지만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운명적인 끌림과 에인젤 클레어의 끈질긴 구애로 인해 마음이 열리고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게 된다.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하는 첫날 밤, 테스는 갈등 끝에 자신의 과거를 남편에게 고백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속이며 살수 없다는 생각, 그리고 남편이 용서해주리란 믿음 때문에 자신의 과거를 털어 놓는다. 하지만 에인젤은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집안과 어울리지 않는 소젖짜는 처녀와 결혼한 열린 남자였지만 과거가 있는 여자에 대한 생각은 사회적 관습의 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기독교 사회의 도덕적 편협함을 경멸해 온 그였지만 여자의 사소한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는 편협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강제로 당한 여자의 과거도 이해하지 못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경직된 윤리와 편협한 도덕 속에 테스는 버림을 받는다.

그는 테스를 남겨두고 기약없이 브라질로 떠난다. 농장 경영을 조사하기 위해 떠났지만 사회적인 시선을 피하기 위한 도피였다. 무책임하게 떠난 남편을 기다리며 가난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그녀는 고된 노동 속으로 자신을 던진다. 남편이 다시 자신을 찾아 오리란 한가닥의 희망을 가지고 노동의 고통을 견디며 그를 기다리지만 운명은 잔인하게 어린 그녀를 희롱한다.

​자신을 겁탈한 알렉 데버빌과 우연하게 마주친다. 알렉은 복음을 전하는 신앙인으로 변해 있었지만 그것은 진정한 변화가 아니었다. 테스를 다시 만난 알렉은 자신의 본성으로 돌아와 테스에게 음흉한 속내를 드러낸다. 그녀는 힘겨운 노동과 기다림에 지쳐 있었고, 길거리에 나앉을 처지로 몰린 친정 가족 부양해야 했던 그녀는 끈질기게 유혹하는 알랙을 받아들인다.

​한편 그녀의 남편 에인젤 클레어는 브라질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신의 편협함과 무책임을 깨닫는다. 그는 서둘러 귀국하고 테스를 수소문하여 찾지만 이미 알렉의 정부가 된 테스를 발견한다. 너무 늦었다는 회한에 찬 테스의 말을 듣고 그는 돌아서고, 테스는 운명의 냉혹한 놀림에 절망하며 울부짖는다. 에인젤 클레어을 다시 떠나 보내고, 그들의 사랑을 경멸하는 알렉과 말다툼을 하던 중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하고 만다. 자신을 비극 속에 몰아 넣은 장본인인 알렉을 죽인 테스는 아직도 자신의 우주이고 진리인 남편을 뒤따라 간다. 극단의 혼란 중에서도 그와 그녀는 결혼 후 한 번도 갖지 못한 꿈같은 며칠을 보낸다. 하지만 그들을 뒤쫓던 경찰에 결국 체포되고... 그녀는 에인젤 클레어에게 자신의 가족을 돌봐 줄 것과 자신의 여동생과 결혼해 줄 것을 부탁하고는 그해 7월 어느날 교수형에 처해진다.

​소설의 줄거리는 주말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특별할 것 없는 통속적인 사랑이야기다. 이런 통속성을 가진 소설이 고전으로 살아남아 우리에게 아직도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자에 따라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소설 테스의 힘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이 소설의 모든 힘은 토마스 하디의 눈부신 문장에서 나온다. 특히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문장들은 압권이다. 아름다운 계절 속에 그려진 비극은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두번째의 힘은 테스의 사랑에 있다. 그녀의 사랑은 어떤 계산이나 의도가 없는 순정한 그녀를 그대로 닮았다. 사회적인 통념에 사로잡힌 찌질한 에인젤의 사랑이나 육체에 탐닉하는 알렉의 사랑과는 다른, 순수하고 정직한 테스의 사랑은 읽는 사람에게 감동으로 다가 온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존을 지키고 자신에게 솔직한 테스의 지고한 사랑은 오래도록 가슴을 울린다.

​셋째는 독선적이고 경직된 종교와 편협한 도덕적 가치관이 한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성에 대한 비판이다. 격동하는 빅토리아시대의 한계와 그것을 넘어서려는 모습을 소설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소설이 영화로 나온 해가 1981년이니까 내가 영화를 본 때는 아마도 테스와 나이가 비슷한 20대 초반이었을 게다.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아름다운 나타샤 킨스키의 얼굴만 기억에 남아 있다. 소설을 읽으며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젊어서는 의지를 믿지만 나이가 들수록 운명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인생을 지배하는 것은 의지가 아닌 운명이라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진다. 기구한 테스의 운명, 그 속에서 몸부림치는 한 어린 처녀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은신처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자는 에인젤의 제안에 남편과의 행복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려보려는 마음과 가혹한 운명에 대한 체념이 뒤섞인 그녀의 대답이 가슴에 남는다. "이 모든 것이 달콤하고 즐거운데 왜 끝내려고 하나요...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말아요... 저 바깥은 모두 근심뿐이에요. 이 안은 행복인데..." 그리고 체포되며 그녀는 이렇게 에인젤에게 말한다.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에인젤, 난 기쁘기까지 한걸요. 그래요, 기뻐요! 이 행복이 지속될 수는 없어요... 너무 큰 행복이라.... 이걸로 충분해요. 이제 당신이 날 멸시할 때까지 살지 않아도 되겠네요... 준비 됐어요..."

​행복한 순간이 너무도 짧았던 가혹한 운명 속의 어린 처녀, 운명을 피해 가기엔 너무도 순정(純正)했던 테스... 자연의 운명 속에 살았다면 행복한 생을 보냈을 한 아름다운 여인이 인습의 운명 속에서 스러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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