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순간 (10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 - 공부에 지친 청소년들을 위한 힐링 에세이
박성혁 지음 / 다산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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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학생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새로운 책을 발견하기 전까지 아마도 이 책을 권할 것 같습니다. 읽을까말까 고민하다가 읽은 책이지만, 책장을 덮을 때는 이 책을 읽게 된 것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8년을 준비해서 내 놓은 책이라고 합니다. 저자의 사명 선언문은 '다른 사람들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돕는다!'라고 합니다.

<독보적> , <내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일찍 읽힐 걸>, <인생 최고의 조언자>라는 독자들의 서평이 과장이 아니네요.

공부하는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공부하는 마음,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딸이 이 책을 곧 온 마음으로 읽기를 바랍니다. 꼭 공부하는 마음 가짐이 아니더라도, 삶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마음 가짐을 얻을 수 있습니다.

8년간 자신의 심혈을 기울여 완성했을 저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책을 내 주셔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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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되면 일어나라 사계절 1318 문고 127
정명섭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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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페허가 된 도시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추락한 여객기의 잔해가 보였다."

도시에는 이제 19살이 되기 전의 아이들만 일부 살아남아 있습니다. 다른 대부분의 어른이나 아이할 것 없이 좀비가 된 사람들에 의해 죽고, 도시는 10년째 페허가 된 채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좀비만 남아있는 살벌한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도시가 이렇게 된 이유는 아이들이 공부할 때 잠을 쫓기 위해서 먹은 각성제 코타놀 때문이었습니다. 맨처음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좀비로 변해, 같은 학교 학생을 살해했고 전국의 각 도시에도 곧이어 일어났으며, 전 세계에서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온 세계의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고 세상은 파괴된 것입니다.

 

천문대로 몸을 피해 살아남은 학생들은 19살이 되면 그들도 좀비로 변하게 됨을 알게 됩니다. 그러자 그들은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만의 규칙을 만드게 됩니다. 19살 생일날 새벽이 되면 일찍 일어나 좀비로부터 보호해 주는 천문대를 떠나기로 말입니다. 저는 이 대목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19살이 되면 좀비가 된다는 그 처연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모두의 삶을 정상적으로 영위하기 위해 다같이 노력합니다. 좀비들의 공격이 도사리고 있는 페허가 된 도시에 가서 먹을 것을 구하고, 필요한 물품을 가져옵니다.

 

좀비는 스스로 누구인지도 모른 채,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잊은 채 사람을 뜯어먹거나, 좀비를 뜯어 먹으며 살아가는 죽지도 살아있지도 않은 존재입니다. 내가 며칠 후면 곧 그런 존재가 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요?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아직 사람인 채로 생일 날 아침이 되면 좀비들이 득실 거리는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

 

이제 몇 달 후에 좀비로 변하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그건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이에요. 피할 수도 없고 비껴가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남은 삶을 열심히 살도록 해요.(p.135)”

 

하지만 소설 속 아이들은 그들이 정한 규칙대로 19살 생일 날 새벽이 되면 일어나서 그들의 보호처인 천문대를 떠나게 됩니다. 떠나는 자와 남는 자 모두 쓰린 고통이겠지요. 그 고통은 10년 째 이어져 오고 있고, 그것으로써 비록 해가 갈수록 남아있는 사람은 적어지지만, 생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들이 언젠가는 구조될 것이라는 희망때문입니다.

 

규칙이 있어야 구조대가 올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p.166)”

 

사건은 인구 증가로 인해 오염된 세상을 새롭게 건설하기 위한 소수 사람들의 음모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좀비가 되는 코타놀을 만들어 세상 사람들에게 팔았습니다.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고 자신들이 선택한 소수의 사람들만 벙커로 들어가게 합니다. 그들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절망 속에는 반드시 희망의 씨앗이 살아 있는 법. 지구 재건 목적이 잘못 되었음을 깨달은 한국의 과학자 2명은 벙커로부터 탈출하고, 좀비가 되는 것을 막는 백신을 개발하게 됩니다.

 

19살 생일을 며칠 남겨두지 않는 주인공은 페허 도시에 물품을 구하러 갔다가, 백신 개발에 성공했음을 알리는 과학자들이 보낸 메세지 쪽지를 발견합니다. 이에 주인공은 같은 19살인 친구와 함께 생존해 있는 '모두'를 위해서 백신이 있는 곳을 찾아 나서기로 합니다.

 

어차피 몇 달 있으면 나도 좀비로 변해. 자그마한 희망이라도 있으면 도전해 봐야지.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서 꼭 해야 할 일이야.(p.137)”

 

작가는 세상은 학생들이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가지는 대신 시키는 대로 하기만을 바란다고 했습니다. 좀비처럼 말입니다. 어른들은 청소년이나 아이들은 혼자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으니까 어른들이 정한 규칙과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소설 속 아이들은 망가져 버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좀비로 변한 세상 속에서 그들 스스로 규칙과 테두리를 만들어 살아가게 됩니다. 아이들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보호하고, 목적과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아이들을 감금하고, 좀비로 변해버린 어른들의 모습이 우리 세상의 어른의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자고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어 죽인 일부 어른들의 계획과 목적이 잘못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영어덜트 좀비 소설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소설은 어렵지 않게 복잡하지 않은 구조로 이야기를 엮어나갑니다. 큰 줄기에서는 짐작이 되는 이야기 결말이지만, 곳곳에 뻔하지 않는 요소들을 배치해 두고 있기 때문에 뒷이야기를 궁금해하며 읽었습니다. 좀비 소설을 좋아하는 청소년이라면 즐겁게 읽으면서, 힘든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희망의 씨앗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합니다.

 

삶은 선택이 아니니까요.(p.75)”

우린 열아홉 살 생일이 되면 왜 좀비로 변합니까?(p.74)”

 

자신의 삶을 선택하지 못하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선택지 속에서 공부에 이끌려 가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을 봅니다. 작가는 그런 우리 사회의 일면을 좀비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좀비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 친구를 구하고, 스스로 생존하는 규칙을 만들어내고 백신을 찾아나서는 십대들의 모습을 통해, 미래의 희망의 씨앗이 아이들에게 자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좀비라는 끔찍한 소재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작가의 10대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볼 수 있는 소설입니다.

"페허가 된 도시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추락한 여객기의 잔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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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3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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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페스트>는 1947년 초판본이 출간된지 한 달 만에 2만부가 팔릴만큼 엄청난 인기를 누린 베스트셀러이다. 카뮈는 43세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행운의 인물이기도 했지만. 47세에 교통사고로 단명한 비운의 주인공이도 하다. 그가 더 오래 살아있었다면 우리는 <이방인>과 <페스트>외에 또다른 고전을 만나고 있었겠지.

14세기에 유럽을 휩쓸며 유럽 전체 인구의 1/5의 목숨을 앗아갔던 전염병인 페스트는 1947년에 <페스트>라는 소설속에 다시 나타났다. 인류 역사 속의 무시무시한 사건의 한 축인 페스트를 다시 살아나게 하여 카뮈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실제 유럽은 페스트가 지난 후 사회상의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전염병이 인류에게 남긴 괘적처럼 카뮈도 세상에 어떤 변화를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1347년 유럽 전역을 휩쓴 페스트(흑사병)

1947년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2020년 전세계적 유행의 코로나19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해 세계는 혼돈 속이다. 마치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듯하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공격은 인간이 군집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승리의 미소를 보이곤 한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인간은 모더나,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라는 백신 무기를 개발했고, 바이러스에게 도전하기 시작했다.

<페스트> 읽으며 역설적이게도 1947년 카뮈의 <페스트> 속에서 2020년의 '코로나' 시대를 발견한다.

페스트가 대체 뭘 의미할까?

그것은 인생이야. 그뿐이지.(p.358)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오랑이라는 도시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나가는 쥐들로부터 페스트는 시작한다. 쥐들의 떼죽음 이후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하자 주인공인 베르나르 리외 의사는 페스트일 수 있음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죽음이 도시에 번지면서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된 시당국과 의사들은 결국 페스트임을 인정하고 도시 전체 봉쇄 명령을 내린다. 사람들은 평범했던 일상의 것들을 빼앗기고 이별에 놓이게 되고 유배지에 있는 듯한 생활을 하게 된다. 페스트에 전염되어 죽어가게 될 거라는 공포속에서 희망도 미래도 없이 말이다. '나'를 넘어서 '우리'라는 가치를 추구했던 의사 리외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보건대라는 조직을 만들어, 페스트와 맞서서 싸운다. 도시를 절망과 희망 없는 곳으로 지배했던 페스트는 그 힘을 잃어가고 점차 사그라든다. 바로 그 때 리외가 보건대에서 함께 동지애를 쌓았던 친구 타루는 페스트에 전염되어 죽게 된다. 도시는 봉쇄에서 풀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사람들은 기쁨의 환호를 지른다.

비록 페스트가 사그라들고 떠났던 쥐들이 다시 도시로 돌아오지만, 작가는 환희와 희망으로만 이야기를 끝맺지 않는다.

리외는 그러한 환희가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되지 않으며, 수십 년 동안 가구나 내복에 잠복해 있고, 방이나 지하실, 트렁크, 손수건, 낡은 서류 속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또한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페스트가 쥐들을 다시 깨우고, 그 쥐들을 어는 행복한 도시로 보내 죽게 할 날이 오리라는 사실도 그는 알고 있었다.

작가는 인간의 마음 속에 페스트균이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 세계 또한 페스트 보균자라는 것을 일깨운다. 언제고 우리가 방심한 틈을 타서 페스트는 우리의 행복을 앗아갈 수 있다는 경고를 한다. 하지만 페스트에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 또한 제시한다.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성실설은 내 직분을 완수하는 거예요.(p.194)

이 도시를 떠날 방법을 찾을 때까지 선생님과 함께 일해도 괜찮을까요?

좋아요. 랑베르, 고마워요.(p.195)

페스트와 같은 절망과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은 일상의 내 직분을 완수하는 성실성과, 공동의 문제를 함께 인식하고 연대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절망과 혼돈 속에 있는 우리 사회가 1년 동안 코로나에 완전히 잠식당하지 않고 그와 대결할 무기를 장착한 것도, 공동의 문제라 인식하고 함께 뜻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소설 속의 리외와 같은 선한 의지와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도 세계 각 처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페스트는 도시를 자신의 발아래에 굴복시키고 있었다.,(p.221)

습관이 되어버린 절망은 절망 자체보다 더 나쁜 것(p214)

무기력 상태로 다시 돌아가 페스트 속에 틀어박혔다.(p.215)

재앙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차츰 탈진 상태에 빠져들었는데, 탈진 상태가 초래하는 가장 큰 위험은 외부의 사건이나 타인의 정서에 대한 무심함이 아니라,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버려두는 어떤 태만함이었다.(p.226)

하지만 장기간의 코로나로 인해 경제적인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고, 정부는 거의 무한대의 양적완화 정책을 꾀하고 있다. 사람들은 예전의 일상이 주었던 자유로운 생활이 그립고, 악화되는 경제적 상황에 고통받고 있다. 소설 속의 도시민들 또한 현재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페스트에 의해 일상은 희망이 없는 절망으로 잠식당하고 있는 것이다. 1947년의 소설 속의 모습은 2020년의 우리 세계와 다를 바가 없다. 카뮈는 절망 속에서 절망이 습관이 되지 않게 하는 것, 될대로 되라지하며 무기력해 지지 않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지상에 재앙과 희생자들이 있으니 가능한 한 재앙 편에 서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는 거예요. .. 나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정확한 언어를 쓰지 않은 데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올바른 길을 걷기 위해 정확하게 말하고 행동하기로 결심했지요. ...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어떤 경우에라도 희생자들 편에 서야겠다고 결심한 거구요. 희생자들 속에 있으면 적어도 어떻게 하면 평화라고 하는 제삼의 범주에 도달할지 모색할 수 있겠죠.... 평화의 길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생각해 보았느냐고 물었다. "네, 공감의 길이지요."(p.296)

"혼자서만 행복한 것은 수치스러울 수 있어요. "

"만약 다른 사람의 불행을 함께 나눌 생각이라면 자신의 행복을 위한 시간은 더이상 얻지 못할 거예요. 선택해야 해야 하는 것이지요."

"나는 이 도시에서 이방인이니까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원하든 원치 않는 나도 이곳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 사건은 우리 모두와 관련되어 있으니까요."

(p.244)

소설 속에서 인물들은 개인적인 감정이나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페스트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나둘 연대하게 된다. 페스트를 물리치기 위해 종교적으로 침묵하는 신에게 구원의 손길을 기대하는 것보다 신을 믿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죽음과 싸우는 것이 맞다고 여긴다. 더 많은 사람들을 페스트로부터 살리기 위해서 말이다. 페스트로 인해 사람들이 오랫동안 불안에 떨다가 무감각해지고 사람들은 마치 신음 소리가 인간의 타고난 언어였던 것처럼 지나쳐버리거나 그 옆에서 살게 되었을 때, 페스트의 태양이 모든 색채를 앗아가고 모든 기쁨을 사라지게 만들어 버렸을 때. 모든 사람과 관련된 문제임을 인식하고 각자 자기 의무를 다하며 함께 공감하고 함께 연대하는 것. 그것이 페스트로 인한 무채색의 세계를 다시 원래대로 돌리고하 단다. 그리고 결국 병세가 수그러들고 사람들 마음속에는 커다란 희망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개인적인 욕망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공감과 연대의 결실이다.

그런데 카뮈는 페스트를 전염병으로만 국한하지 않고 그 의미를 확대한다. 나 자신의 것으로, 우리 모두의 것, 영원히 존재할 대상으로 말이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세상 그 누구도 페스트 앞에서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자칫 방심한 순간에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전염시키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외의 것들,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건강, 청렴결백함, 순결함 등은 의지의 소산이에요.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될 의지 말이에요. 정직한 사람, 거의 아무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을 하지 않는 사람을 뜻해요. 절대 방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한 법이죠! 그래요. 리외.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이에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피곤해 보이는 거예요. 오늘 날에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거든요.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몇몇 사람들이 페스트 환자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 죽음이 아니면 빠져나갈 수 없는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는 거고요.(p.295)

카뮈의 말대로 페스트는 전염병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전염병처럼 한 개인을 병들게 하는 그 어떤 것이거나, 이 사회를 파괴하는 그 무엇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전염병을 퍼뜨리는 존재가 될 수도 있으며, 내가 전염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가만히 내 안을 혹은 우리 사회를 들여다 보면 나를 좀먹어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 우리 사회를 조금씩 파괴해가는 유형무형의 것들이 존재한다. 카뮈는 그렇게 우리들의 삶에서 빛나는 태양을 무채색으로 만들어버리는 '페스트'는 늘 존재함을 이야기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조언하고 그것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절망과 고통의 씨앗을 품고 있는, 다시 말해 '페스트'를 품고 있는 인류에게 선한 정신과 선한 의지의 연대를 역설하는 소설 <페스트>.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문장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야금야금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sheinshe/222198359741)


이 연대기에서 다루고 있는 이상한 사건들은 194X년 오랑에서 일어났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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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 - 이정록 청춘 시집
이정록 지음, 최보윤 그림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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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너에게,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를 읽는다는 것은,

​세상에는 읽을거리가 많고, 읽을 종류도 참 많다. 그중에서 시를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저녁을 먹고 딸아이가 줄넘기하는 놀이터에 따라 나갔다. 롱패딩으로 몸을 감싸고 모자까지 눌러쓴 후라 바람이 닿는 곳은 이마밖에 없었다. 내 좁은 이마가 온몸으로 잘 벼린 칼날 같은 바람을 혼자 맞고 있었다. 얼음 같은 칼날에 이마를 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동동걸음으로 딸아이의 줄넘기가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문득 저녁을 먹고 침대 머리에 반쯤 몸을 누이고 읽은 시가 생각이 났다.
 
활짝」
 
센서등한테
꿈을 얻었다.
 
내 꿈은, 이제
'켜지는 사람'이다.
 
어둠 속에서,
 
어둠을 뚫고 가는 이에게,
 
나는, 활짝
켜지는 사람이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하나. 어두운 곳에 있었던 평범했던 대상을 향해 활짝 불이 켜지는 것을 발견하는 것일까? 현관문을 들어서고 나설 때마다 매뉴얼 대로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하는 센서등에서 꿈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청춘」
 
찬밥과 청춘의
공통점은?
 
그건,
물 말아 먹기 십상이라는 것.

 
 
시를 읽는다는 것은
둘, 지구 반대편쯤에 있는 너와 내가 만나서 사랑의 불꽃이 튀는 것처럼, 낯설은 대상과 대상이 만나서 불꽃을 일으키는 것이 아닐까? 전혀 만날 일 없는 찬밥과 청춘이 만나서 서로에게 위로가 되니 말이다.
 
「신호등」​
 
차도
사람도
여기에서는 고요해진다
초록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초록을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고개를 숙이고 걷던 사람도 멈춰 고개를 든다
초록 쪽으로 걸어가야 한다
초록 쪽으로 시동을 걸어야 한다
그동안 너무 붉어졌다
다짜고짜 뜨거워졌다
해가 뜨인 쪽인 줄 알았는데
서녘 낭떠러지였다
 
지금은 초록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나는 당신이 출발한 쪽으로
당신은 내가 떠나온 쪽으로
초록의 뿌리를 내뻗어야 한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셋, 객관적인 대상 속에서 나만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도로 위의 질주하는 차들과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신호등이 때론 삶의 '출발'을 혹은 '멈춤'을 혹은 '경고'를 보내는 신이 보낸 사자가 되기도 하니 말이다.
 
「단무지」
 
백반집
온갖 반찬 가운데
단무지 세 조작은
참 보잘것없고 초라하지만,
 
중국집
짜장면 한 그릇에
단무지 한 조각은
무지무지 독보적이다.
 
너처럼 황금빛이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넷, 어느 날 내가 한없이 작고 초라해져 보일 때, "아니야, 그렇지 않아. 너는 어디선가 어느 누구에겐가 꼭 필요한 빛나는 존재야."라는 소리없이 짦고 강렬한 외침일까? 짜장면 옆 종지 위에 놓인 단무지처럼 말이다.
 
「빵빵한 소」
 
과자보다 가벼운 소
과자가 좋아 과자 봉지에 사는 소
빵 냄새가 좋아 빵 봉지에 사는 소
늘 배가 불러서 과자와 빵은 건드리지 않는 소
유통 기한이 지나면 더 빵빵해지는 소
 
봉지를 뜯으면 어느새 날아가는 소
지는 게 이기는 거야 싸움 한 번 안 한 소
하지만 착하지 않은 소
언제나 얄미운 소
오라질, 질소

 
 
여행은 꼭 동여맨 매듭 사이로 조금씩 공기가 빠져나가 이제 흐물거리게 된 풍선같은 일상에 새 공기를 집어넣는 것이다. 무료하고 지친 몸에 링겔 한병을 맞고 병원을 나서는 발걸음 같은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을 여행에 빗대면 아마도, 지식서적은 유명한 문화유적지, 세계 100대 자연 경관 같은 곳을 여행하는 것, 소설은 룰러코스터와 같은 짜릿함이 있는 테마파크나 놀이공원을 여행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음, 음, 시를 읽는다는 것은 여행지 어딘가에서 문득 고개를 들었더니, 하늘을 붉게 물들이기 위해 제 몸을 녹이고 있는 서쪽 하늘의 해를 발견하는 것, 그런 것 아닐까? 그래서 오랫동안 몸속에 남았던 폐 속의 묵은 공기가 '아!'하면서 새어나는 것, 그런 것이 아닐까?
 
시를 읽으며 시를 생각한다. "그래, 내가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이유가 시 때문이었지." 그 생각이 났다.
 
「희망」
 
화장지
갑 티슈
 
그래
이렇게 비우는 거다
 
우는 거다
 
가슴을 키우는 거다
 
 
「네 시간」
 
스물네 시간 중에
네 시간은 너를 위해 써
스무 시간을 네 시간의 밑돌로 삼아
 
스무 시간은 밥과 버스비와 헌금을 위하여
나머지 네 시간은 고래와 새우의 사랑싸움과
별과 귀뚜라미의 연애를 위하여
 
네 시간이 네 풀잎이야
풀잎피리야
그 피리 소리에 춤을 춰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 선물해
 
스물네 시간 중에
네 시간은
오로지 네 시간이야

 
 
'아직 오지 않은 나'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아직 오지 않는 나'를 위해 필요한 것은 돈벌이가 되는 일을 하는 것이지.
그리고
'아직 오지 않는 나'를 위해 필요한 것은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고래와 새우의 사랑이나
하등 쓸모없을 것 같은 별과 귀뚜라미의 연애담을
밤새 듣는 것이기도 하지.
 
24시간을 쪼개고 나누어서 초단위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는,
고래와 새우의 사랑과 별과 귀뚜라미의 사랑의 후일담을 이야기해준다.
시란, 그런 것이다.

 

청춘은, 텃새가 철새로 날아오르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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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 십 대를 위한 미디어 수업 사계절 1318 교양문고
정재민 지음 / 사계절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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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손바닥만한 스마트폰 액정 속에 내가 설치한 150개의 앱이 손가락 터치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그 중에는 매일 수십번씩 손가락 터치를 하게 되는 몇 가지 인기 앱은 홈화면에 버젓이 당당하게 떡하니 앉았다.

그 중의 대표 포털앱은 내가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문을 제공한다. 한번의 터치로 웹소설 속으로, 햄버거 속으로, 날씨 알림으로 접속할 수 있다. 코로나 확진현황, 웹툰 베스트, 샴퓨 광고, 부동산, 뉴스, 카페, 블로그, 증권, 쇼핑... 손가락 터치 한번으로 우리는 무한대의 세상과 만나고, 무한대의 사람들 속에 순식간에 섞일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편리해진 세상, 스마트폰으로 가까워진 세상을 체감하며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많은 것들을 접할 수 있다. 각종 콘텐츠를 소비하고, 이를 넘어서 콘텐츠를 생산하면서 말이다.

공영방송이나 신문사와 같은 거대 기업에서 생산하는 콘텐츠뿐만 아니라, 1인이 생산하는 우주의 별만큼이나 많은 콘텐츠 속에서 식당에서 메뉴를 선택하듯이 자신의 취향과 기호에 맞는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실은 과소비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미디어 범람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각종 미디어의 속성을 알려주면서, 미디어 속의 콘텐츠가 어떤 방식으로 소비자들에게 보여지는 지에 대한 원리를 알려준다.

우리가 미디어의 주인이 되어 콘텐츠를 주체적으로 소비하고 있는 것 같지만, 즉 주체적 콘텐츠 소비 같지만 정작 포털 속 인공지능이 배치한 정보와 뉴스를 수동적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럼으로써 벌어질 수 있는 정보의 편식, 확증편향과 같은 문제점을 제시한다. 이렇게 미디어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미디어 속 그림자에 대해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가짜뉴스에 의한 부작용, 확증편향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의한 콘텐츠 배치 등에 대해 알게 하면서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사고력을 일깨운다.

나아가 미디어의 그림자만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깨어있는 미디어 주인으로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과 미디어 편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안도 제시하고 있다. 챕터마다 생각해보고 토론해볼 수 있는 주제를 제시하여 교사나 학생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도 마련하고 있다.

최근에 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 함께 미디어에 대한 수업을 한 적이 있다. 각 미디어의 특색을 알아보고과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 미디어에 올리는 활동을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미디어 수업 전에 읽었으면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 책이 미디어의 원리 뿐만 아니라, 미디어의 긍정과 부정적 측면에 대해 좀더 심도있게 알려주고, 올바른 미디어 사용에 대한 태도를 기를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수업도 구상할 수 있도록 돕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그중에 내가 자주 사용하는 네이버나 유튜브의 콘텐츠가 나의 사고에 얼마나 큰 영향과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까? 달콤한 젤리만 먹는 사람처럼 편식으로 혹시 내 사고를 편향되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미디어 세상 속에 중독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터넷 '잠시멈춤', 'Pause'를 시도하게 하는 책이다. 올바른 미디어 사용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시의적절한 책이다. 챕터별로 정리하면 다시 한번 읽으면서 새로운 미디어 수업을 구상해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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