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3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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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페스트>는 1947년 초판본이 출간된지 한 달 만에 2만부가 팔릴만큼 엄청난 인기를 누린 베스트셀러이다. 카뮈는 43세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행운의 인물이기도 했지만. 47세에 교통사고로 단명한 비운의 주인공이도 하다. 그가 더 오래 살아있었다면 우리는 <이방인>과 <페스트>외에 또다른 고전을 만나고 있었겠지.

14세기에 유럽을 휩쓸며 유럽 전체 인구의 1/5의 목숨을 앗아갔던 전염병인 페스트는 1947년에 <페스트>라는 소설속에 다시 나타났다. 인류 역사 속의 무시무시한 사건의 한 축인 페스트를 다시 살아나게 하여 카뮈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실제 유럽은 페스트가 지난 후 사회상의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전염병이 인류에게 남긴 괘적처럼 카뮈도 세상에 어떤 변화를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1347년 유럽 전역을 휩쓴 페스트(흑사병)

1947년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2020년 전세계적 유행의 코로나19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해 세계는 혼돈 속이다. 마치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듯하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공격은 인간이 군집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승리의 미소를 보이곤 한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인간은 모더나,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라는 백신 무기를 개발했고, 바이러스에게 도전하기 시작했다.

<페스트> 읽으며 역설적이게도 1947년 카뮈의 <페스트> 속에서 2020년의 '코로나' 시대를 발견한다.

페스트가 대체 뭘 의미할까?

그것은 인생이야. 그뿐이지.(p.358)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오랑이라는 도시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나가는 쥐들로부터 페스트는 시작한다. 쥐들의 떼죽음 이후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하자 주인공인 베르나르 리외 의사는 페스트일 수 있음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죽음이 도시에 번지면서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된 시당국과 의사들은 결국 페스트임을 인정하고 도시 전체 봉쇄 명령을 내린다. 사람들은 평범했던 일상의 것들을 빼앗기고 이별에 놓이게 되고 유배지에 있는 듯한 생활을 하게 된다. 페스트에 전염되어 죽어가게 될 거라는 공포속에서 희망도 미래도 없이 말이다. '나'를 넘어서 '우리'라는 가치를 추구했던 의사 리외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보건대라는 조직을 만들어, 페스트와 맞서서 싸운다. 도시를 절망과 희망 없는 곳으로 지배했던 페스트는 그 힘을 잃어가고 점차 사그라든다. 바로 그 때 리외가 보건대에서 함께 동지애를 쌓았던 친구 타루는 페스트에 전염되어 죽게 된다. 도시는 봉쇄에서 풀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사람들은 기쁨의 환호를 지른다.

비록 페스트가 사그라들고 떠났던 쥐들이 다시 도시로 돌아오지만, 작가는 환희와 희망으로만 이야기를 끝맺지 않는다.

리외는 그러한 환희가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되지 않으며, 수십 년 동안 가구나 내복에 잠복해 있고, 방이나 지하실, 트렁크, 손수건, 낡은 서류 속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또한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페스트가 쥐들을 다시 깨우고, 그 쥐들을 어는 행복한 도시로 보내 죽게 할 날이 오리라는 사실도 그는 알고 있었다.

작가는 인간의 마음 속에 페스트균이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 세계 또한 페스트 보균자라는 것을 일깨운다. 언제고 우리가 방심한 틈을 타서 페스트는 우리의 행복을 앗아갈 수 있다는 경고를 한다. 하지만 페스트에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 또한 제시한다.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성실설은 내 직분을 완수하는 거예요.(p.194)

이 도시를 떠날 방법을 찾을 때까지 선생님과 함께 일해도 괜찮을까요?

좋아요. 랑베르, 고마워요.(p.195)

페스트와 같은 절망과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은 일상의 내 직분을 완수하는 성실성과, 공동의 문제를 함께 인식하고 연대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절망과 혼돈 속에 있는 우리 사회가 1년 동안 코로나에 완전히 잠식당하지 않고 그와 대결할 무기를 장착한 것도, 공동의 문제라 인식하고 함께 뜻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소설 속의 리외와 같은 선한 의지와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도 세계 각 처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페스트는 도시를 자신의 발아래에 굴복시키고 있었다.,(p.221)

습관이 되어버린 절망은 절망 자체보다 더 나쁜 것(p214)

무기력 상태로 다시 돌아가 페스트 속에 틀어박혔다.(p.215)

재앙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차츰 탈진 상태에 빠져들었는데, 탈진 상태가 초래하는 가장 큰 위험은 외부의 사건이나 타인의 정서에 대한 무심함이 아니라,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버려두는 어떤 태만함이었다.(p.226)

하지만 장기간의 코로나로 인해 경제적인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고, 정부는 거의 무한대의 양적완화 정책을 꾀하고 있다. 사람들은 예전의 일상이 주었던 자유로운 생활이 그립고, 악화되는 경제적 상황에 고통받고 있다. 소설 속의 도시민들 또한 현재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페스트에 의해 일상은 희망이 없는 절망으로 잠식당하고 있는 것이다. 1947년의 소설 속의 모습은 2020년의 우리 세계와 다를 바가 없다. 카뮈는 절망 속에서 절망이 습관이 되지 않게 하는 것, 될대로 되라지하며 무기력해 지지 않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지상에 재앙과 희생자들이 있으니 가능한 한 재앙 편에 서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는 거예요. .. 나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정확한 언어를 쓰지 않은 데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올바른 길을 걷기 위해 정확하게 말하고 행동하기로 결심했지요. ...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어떤 경우에라도 희생자들 편에 서야겠다고 결심한 거구요. 희생자들 속에 있으면 적어도 어떻게 하면 평화라고 하는 제삼의 범주에 도달할지 모색할 수 있겠죠.... 평화의 길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생각해 보았느냐고 물었다. "네, 공감의 길이지요."(p.296)

"혼자서만 행복한 것은 수치스러울 수 있어요. "

"만약 다른 사람의 불행을 함께 나눌 생각이라면 자신의 행복을 위한 시간은 더이상 얻지 못할 거예요. 선택해야 해야 하는 것이지요."

"나는 이 도시에서 이방인이니까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원하든 원치 않는 나도 이곳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 사건은 우리 모두와 관련되어 있으니까요."

(p.244)

소설 속에서 인물들은 개인적인 감정이나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페스트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나둘 연대하게 된다. 페스트를 물리치기 위해 종교적으로 침묵하는 신에게 구원의 손길을 기대하는 것보다 신을 믿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죽음과 싸우는 것이 맞다고 여긴다. 더 많은 사람들을 페스트로부터 살리기 위해서 말이다. 페스트로 인해 사람들이 오랫동안 불안에 떨다가 무감각해지고 사람들은 마치 신음 소리가 인간의 타고난 언어였던 것처럼 지나쳐버리거나 그 옆에서 살게 되었을 때, 페스트의 태양이 모든 색채를 앗아가고 모든 기쁨을 사라지게 만들어 버렸을 때. 모든 사람과 관련된 문제임을 인식하고 각자 자기 의무를 다하며 함께 공감하고 함께 연대하는 것. 그것이 페스트로 인한 무채색의 세계를 다시 원래대로 돌리고하 단다. 그리고 결국 병세가 수그러들고 사람들 마음속에는 커다란 희망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개인적인 욕망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공감과 연대의 결실이다.

그런데 카뮈는 페스트를 전염병으로만 국한하지 않고 그 의미를 확대한다. 나 자신의 것으로, 우리 모두의 것, 영원히 존재할 대상으로 말이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세상 그 누구도 페스트 앞에서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자칫 방심한 순간에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전염시키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외의 것들,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건강, 청렴결백함, 순결함 등은 의지의 소산이에요.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될 의지 말이에요. 정직한 사람, 거의 아무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을 하지 않는 사람을 뜻해요. 절대 방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한 법이죠! 그래요. 리외.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이에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피곤해 보이는 거예요. 오늘 날에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거든요.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몇몇 사람들이 페스트 환자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 죽음이 아니면 빠져나갈 수 없는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는 거고요.(p.295)

카뮈의 말대로 페스트는 전염병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전염병처럼 한 개인을 병들게 하는 그 어떤 것이거나, 이 사회를 파괴하는 그 무엇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전염병을 퍼뜨리는 존재가 될 수도 있으며, 내가 전염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가만히 내 안을 혹은 우리 사회를 들여다 보면 나를 좀먹어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 우리 사회를 조금씩 파괴해가는 유형무형의 것들이 존재한다. 카뮈는 그렇게 우리들의 삶에서 빛나는 태양을 무채색으로 만들어버리는 '페스트'는 늘 존재함을 이야기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조언하고 그것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절망과 고통의 씨앗을 품고 있는, 다시 말해 '페스트'를 품고 있는 인류에게 선한 정신과 선한 의지의 연대를 역설하는 소설 <페스트>.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문장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야금야금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sheinshe/222198359741)


이 연대기에서 다루고 있는 이상한 사건들은 194X년 오랑에서 일어났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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