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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볼란텐
채기성 지음 / 슬로우리드 / 2026년 4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남편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그가 몸담았던 회사에 아내가 직접 취업해 사건을 파헤친다는 설정에 이끌려 책을 펼쳤습니다. 책을 보기 전 표지 속, 고개를 돌린 채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가 끝내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무엇일지 자연스럽게 궁금해졌습니다. 어쩌면 이 일러스트는 타인에게 드러내지 못했던 그의 내면을 보여주는 장치가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레아 모로와 크리스티안 볼란텐. 두 사람은 모두 어린 시절 해외로 입양되었다는 공통된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조금씩 얄팍하게 표면에만 머무를 뿐, 자신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기에 한국에서 뿌리를 찾고 싶다"던 남편과의 마지막 대화. 이후 남편은 회사 건물에서 추락하여 사망합니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했던 이의 마지막이 모국에서의 추락사라니 너무나 비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레아는 남편의 죽음이 자살이라 믿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했던 사람, 끝까지 살아보려 했던 사람이 그런 선택을 했을 리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녀는 한국으로 들어와 남편의 흔적을 따라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이 알지 못했던 남편의 여러 얼굴과 마주하게 됩니다.
가장 강렬하게 남은 장면은, 남편의 동료였던 권아진의 잘린 손이 회사로 배달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평소 스릴러를 즐겨 읽지 않는 저에게는 꽤 충격적인 장면이었고, 일상적인 공간이 한순간에 공포로 바뀌는 그 대비가 소름 끼치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물러서지 않기로 결심하는 레아의 대담한 선택은, 무모하다기보다 오히려 절박하게 다가왔습니다.
사건의 실체는 결국 단순한 자살이 아닌 살인이었고 그 뒤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후반부 레아가 범인에게 쫓기는 장면이나 자동차 추격 장면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감을 주었고, 자연스럽게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었습니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책을 읽으며 한 가지 또 흥미로웠던 점은 바로 언어였습니다. 한국에서 먼 타국으로 입양된 레아에게 한국어는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싶은 상처의 언어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어 덕분에 그녀는 크리스티안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상처도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밀어내려 했던 언어가 오히려 그들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 되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세상과 사람에 대해 완전히 알아갈 수 없듯이,
나 역시도 그렇게 존재하면 그만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책의 마지막에서 레아가 남긴 이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한때 레아는 한국인들을 보며 자신만이 정상의 궤도에서 이탈한 것처럼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사건의 끝에서 깨달았습니다. 어떤 것도 완벽한 것은 없기에,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는 위로를 받으며 비로소 마음의 평온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스릴러의 긴장감 속에서도 정체성, 타인에 대한 이해 등에 대한 질문을 놓치지 않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도 인물의 고뇌와 내면을 세밀하게 따라가고 싶은 분들, 그리고 나로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 되짚어보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