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 삶을 통과하는 깨달음의 여정
헤르만 헤세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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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 인생 책인 싯다르타를 이번에 신동운 번역가의 판본으로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번역가에 따라 문장의 질감이 달라지곤 하는데, 이번 판본은 흐름이 매끄러워 싯다르타의 여정에 온전히 몰입하기 좋았습니다. 이번에 책을 다시 읽으면서는 싯다르타와 고빈다의 서로 다른 구도 방식 위주로 살펴보았습니다.

싯다르타가 고난의 강을 건너며 스스로 깨우친 자의 길을 개척한다면, 고빈다는 평생 교리를 경청하며 정답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구도자의 모습을 보입니다. 세존의 가르침에 귀의하기로 결심한 고빈다는 싯다르타에게 열의에 찬 목소리로 묻습니다.


싯다르타, 내가 자네를 꾸짖을 자격은 없지만,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네.

우리는 함께 세존을 뵈었고 그 교훈을 들었지.

그런데 나는 그 가르침에 귀의했는데,

자네는 어찌하여 잠자코 있는가?

해탈의 길을 걷기 싫단 말인가? 주저하는 건가?

아니면 더 두고 보려는 건가?

p.49


고빈다의 이 질문은 지식과 교리에 의존하는 자의 조바심을 대변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 싯다르타는 동요 없이 고빈다의 선택을 존중하며 그가 열반에 이르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세존과는 치열한 논리를 주고받던 그가, 정작 가장 가까운 친구인 고빈다에게는 자신의 통찰을 강요하지 않고 침묵을 택한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싯다르타가 세존의 설교를 듣고 내린 결론은 지식은 전달할 수 있지만, 지혜는 전달할 수 없다, 해탈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싯다르타가 고빈다에게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해도, 그것은 고빈다에게 또 다른 교리나 지식이 될 뿐입니다. 싯다르타는 스스로 경험하고 깨지지 않는 한, 타인의 말로는 결코 해탈에 이를 수 없음을 알았기에 굳이 입을 열어 논쟁을 하지 않은 것이겠지요.

어느새 노인이 된 고빈다는 여전히 불안함과 구도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는 배를 태워주던 싯다르타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에게 다시금 구도에 관해 묻습니다. 싯다르타는 자신의 사상을 일부 들려주지만, 고빈다는 여전히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싯다르타는 마지막으로 전혀 다른 방식을 택합니다. 자신의 이마에 입맞춤을 해보라고 권하는 순간, 고빈다는 말로는 닿지 않던 세계를 한순간에 경험하게 됩니다. 수많은 형상과 생의 흐름이 겹쳐지며, 그가 평생 붙잡고자 했던 진리가 비로소 감각으로 스며듭니다. 결국 고빈다가 도달한 깨달음은 긴 설명이나 논리를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말이 아닌 순간, 지식이 아닌 체험을 통해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평생 정답을 찾아 헤맨 고빈다의 조바심조차 따스하게 품어 안은 싯다르타의 미소를 보며, 타인을 바꾸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를 배우고 싶어졌습니다. 다시 읽으니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장면과 마음들이 또렷하게 다가왔습니다. 역시 고전은 여러 번 곁에 두고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 어렵다고 생각해오신 분들께 이 책은 한 번쯤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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