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왕관 - 유럽 왕실을 뒤흔든 병의 연대기
여지현 지음 / 히스토리퀸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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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가가 근친혼으로 인한 언어장애, 불임 등 각종 유전질환으로 인해 결국 소멸하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로 인해 유럽의 세력 판도를 뒤흔든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했고, 이후 스페인의 왕위는 결국 프랑스의 부르봉 가문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즉, 가문의 유전병이 한 나라의 국운을 넘어, 유럽 전체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셈이지요.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유럽의 다른 왕족들이 앓았던 질병은 무엇이었을까? 만약 그들이 건강했더라면, 혹은 당시의 의학이 조금 더 발전했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런 호기심을 안고 [고통의 왕관] 책을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질병 종합세트였던 태양왕 루이 14세의 이야기였습니다. 루이 14세는 태양왕이라는 화려한 이름을 가졌지만 평생을 끔찍한 질병과 싸워야 했던 비극적인 이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치아를 뽑다가 얼굴과 코 사이에 구멍이 생겼고 그 사이로 음식물이 껴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는 이야기는 기존에 알고 있었는데요. 그 외에도 홍역, 장티푸스, 말라리아 등 각종 질병에 걸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통풍, 항문 누공, 류머티즘 등 다양한 질병을 앓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당시의 치료 방법이었습니다. 왕을 고치겠다고 나선 의사들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최악의 고문과도 같은 처방을 내렸습니다. 1,000회가 넘는 관장, 설사 유도, 피를 억지로 뽑아내는 등의 치료 방법은 그의 면역력을 극도로 끌어내렸습니다. 그러나 루이 14세는 이 잔인한 과정을 모두 견뎌내고 무려 77세까지 생존했습니다. 당시의 평균 수명과 그가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그의 체력과 정신력은 정말 초인적이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루이 14세는 자신이 겪은 끔찍한 치료 경험과 당시의 비참한 위생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의 의료 시스템을 정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랑자와 병자를 수용하는 병원을 설립하고, 왕실 어의들에게 가난한 자들을 정기적으로 진료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의대생들의 현장 실습이 강조되었고, 이는 현대적인 의미의 임상 교육 기틀이 마련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프랑스 국왕 샤를 6세의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유리병이라 믿으며 몸이 깨질까 봐 두려워했던 망상을 앓았습니다. 이로 인해 자국의 기사를 공격하거나 옷 입기를 거부하고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일삼으며 국정을 마비시켰습니다. 결국,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아들의 왕위 계승권을 부정하고 프랑스를 잉글랜드에 넘기려 했던 트루아 조약에 서명하며 나라를 멸망의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프랑스에 잔 다르크라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만약 그녀가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끌지 않았더라면, 프랑스는 백년전쟁의 패배와 함께 영국의 속국으로 전락했을지도 모릅니다. 국왕의 정신질환이라는 비극이 한 국가의 운명을 통째로 뒤흔들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세계를 호령하던 절대 권력자들도 결국 질병 앞에서는 한 명의 연약한 인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 앉아 고통의 왕관을 써야만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유럽의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렌즈를 얻은 기분입니다. 다만 책에 비문이 다소 눈에 띄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음 쇄에서 이 부분이 보완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유럽 왕족의 생로병사가 국가와 시대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알아보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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