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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그대로의 자연 - 우리에게는 왜 야생이 필요한가
엔리크 살라 지음, 양병찬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얼마 전 바닷속 해달 개체 수 복원을 통해 해양 사막화를 해결하였다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과거 물고기를 잡아먹는 해달의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밀렵이 성행하였고, 포식자가 사라진 바다에는 성게가 들끓게 되어 해초류가 급격히 감소하여 결국 바다가 황량한 사막으로 변하게 되었다. 해달이 한 지역의 생태계를 유지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생물인 핵심종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난 후, 수십 년간 진행된 개체 수 복원 사업을 거쳐 해양 생태계가 회복되었다는 이야기에서 나는 희망적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단일 종의 회복이 생태계 전체에 미치는 놀라운 영향을 보며, 생태계의 복잡한 연결고리와 중요성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란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탐험가 겸 환경보호운동가인 엔리크 살라가 지은 것으로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 책은 생태계가 어떤 원리로 유지되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함과 동시에, 파괴된 생태계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지구의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고 파괴된 생태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어떤 방법을 시행해야 하는지 등을 제시한다. 책을 읽으며 결국 자연을 구하는 것이 우리 모두를 구하는 것이란 그의 주장에 깊이 공감을 하게 되었고 과연 나는 이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인간은 너무나 쉽고 빠르게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 들어갈 시간과 비용은 미래 세대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이에 저자는 우리는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도덕적 의무라고 말한다. 책 속에서 인용된 불교 경전의 한 구절 "벌이 꽃과 꽃의 색깔과 향기를 해치지 않고 꿀을 먹고 날아가듯이, 현자도 마을을 지나가야 한다."를 읽는 순간 큰 감동을 받았다. 내 주위 모든 환경은 내가 그저 잠시 지나가는 마을과 같기에, 내가 마음대로 망가뜨릴 수 없는 그리고 망가뜨려서도 안되는 미래 세대의 것임을 알아야 함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미래 세대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자연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기에, 우리에게는 이 마을의 깨진 곳을 보수하며 깨끗하게 사용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새로운 단어를 많이 알게 되었는데, 그 중 10장 '보호 구역'에 나온 기준선 이동 증후군이란 단어가 매우 인상깊었다. 기준선 이동 증후군은 현재의 상태를 정상으로 받아들이고 과거의 더 나은 상태를 잊거나 과소평가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겨울철 미세먼지 수치가 50~60 정도가 나오면 미세먼지 수준이 그리 심하지 않다고 여겨 마스크를 쓰지 않고 나가게 되는데, 과거보다 현재의 대기 오염 수준을 기준으로 삼아, 과거의 깨끗했던 공기를 기억하지 못하고 오염된 공기를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기준선 이동 증후군이란 단어를 읽자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어린 시절 미세먼지 없는 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놀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아이들은 어떠한가. 아침이면 미세먼지 수치를 체크하고 마스크를 준비해야 한다. 수치가 기준치 이내로 나오면 마스크를 안 써도 되는 공기가 좋은 날이라 인식한다. 하지만 그 공기의 수준이란 내가 어린 시절 향유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할 바 아니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기준선이란 과거보다 더 나빠진 것인데 우리의 아이들은 이것보다 더 나빠진 기준선을 갖게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미래 세대가 살게 될 환경이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면 그들은 마음껏 숨쉬기도 힘들고, 마음껏 바다에서 수영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각종 질병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세대가 가질 기준선을 바꾸는 것에 힘을 쏟아야 한다. 서두에 소개한 해달 개체 수 복원이 기준선 회복의 예라 할 수 있다. 물론 전문가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정부, 각종 단체에서 정책적으로 진행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지만, 개인들도 일상생활 속에서 환경 보호를 위한 작은 실천들을 꾸준히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저자는 13장 '자연의 경제학'에서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경제적 손실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가치를 증가시킨다는 놀라운 사실을 설명한다. 책을 읽기 전에는 당연히 보호 구역을 지정하고 어업이나 농업활동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의 비용 부담이 꽤 클 것이라 예상했는데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음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해양 보호 구역을 설정함으로써 보호 구역 주변의 어획량이 오히려 증가한다. 또한 보호 구역 지정 후 해양 생물이 회복됨에 따라 각종 생태관광이 활발해지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 보호 구역 지정으로 인한 이익이 각종 기회비용을 초과하게 된다. 저자는 멕시코, 호주 등 여러 국가의 사례를 통해, 자연을 더 많이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생존에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번영하는 경제를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책을 읽은 뒤, 나는 환경 보호 활동에 기존보다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작은 노력이 미래 세대를 위한 소중한 마중물이 되어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면, 내 삶이 더 의미 있어질 것이란 생각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최근 이렇게 깔끔하게 번역된 책을 접하지 못했기에, 번역자인 양병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비문이나 오타가 전혀 없어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매끄럽게 잘 읽을 수 있었다. 앞으로 양병찬님이 번역한 책이라면 믿고 읽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