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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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여행, 예술과 인간에 대한 헤르만 헤세의 사색을 엮은 에세이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기보다 마음이 끌리는 글부터 골라 읽었고, 와닿는 문장은 노트에 한 줄씩 필사하며 색연필로 칠해 두었다. 손으로 천천히 따라 쓰다 보니 눈으로만 읽을 때는 지나쳤을 문장의 결이 하나하나 느껴졌다. 이렇게 곁에 두고 조금씩 꺼내 읽기에 참 잘 어울리는 책이다.





가장 인상 깊은 건 헤세의 문장이 살아 움직인다는 점이다. '베른의 고지대 알프스 산중의 오두막 앞에서'라는 글에서 녹는 얼음은 겨울이라는 두터운 갑옷에 구멍을 뚫는 조그마한 파괴자가 되고,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은 서로 손을 잡고 재잘거리며 단단한 겨울을 부숴 버린다. 처음에는 정체 모를 희미한 소리로 들려주다가 그것이 물방울이라는 걸 깨닫게 하는 구성도 마치 음악을 듣는 것 같았다. 아주 작은 것들이 모여 기어이 봄을 불러오는 장면을 읽으며, 지친 하루를 버티게 하는 것도 결국 이런 작은 것들의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헤세가 직접 그린 수채화가 함께 실려 있어 글과 그림을 나란히 보는 즐거움도 크다.





"아침과 저녁 사이에 낮이 있듯이, 나의 삶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 열망과 고향을 그리는 향수 사이에서 흘러가고 있다." 이 문장이 책 전체를 꿰뚫는다고 느꼈다. 헤세는 여행 중 병을 얻어 수술까지 받고 이제는 한곳에 정착하겠다고 마음먹지만, 호수 위를 떠가는 흰 돛단배 하나에 그 결심을 모두 내려놓는다. 그리고 그 욕망은 결코 치유될 수 없다고 고백한다. "나는 농부가 아니라 유목민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처럼, 그는 평생 떠남과 머묾 사이에서 흔들렸다. 그런데 그 흔들림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보여 주기에, 같은 마음을 품고 사는 독자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가 된다.


"결국 우리들은 신이 아니며, 스스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땅과 우주의 아들이자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헤세는 살아 있는 모든 것과 형제가 되고, 고뇌와 죽음조차 다정하게 받아들이기를 바랐다. 평생 아픔을 겪어 온 사람이기에 건넬 수 있는 따뜻함이 문장마다 배어 있었다.










이 책을 덮으며 그리움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그동안 그리움은 채워지지 않아 아픈 감정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헤세에게 그리움은 사람을 주저앉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바라보고 걷게 만드는 힘이었다. 멀리 떠나지 못하는 날에도 바라보는 눈만 있다면 일상은 충분히 경이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준 책이다.










바쁜 일상에 지쳐 잠시 숨을 고르고 싶은 사람, 늘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 그리고 필사할 아름다운 문장을 찾는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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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서는 르온서평단(단단한맘수련서평모집)을 통해서 도서협찬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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