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여고 탐정단 : 방과 후의 미스터리 블랙 로맨스 클럽
박하익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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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딱히 기억할 만한 탐정 캐릭터가 있을까? 기껏해야 내가 아는 우리나라의 추리작가가 김내선이나 김성종 같은 작가임을 고려해본다면 캐릭터는 아마도 더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나마 최근 들어 실존인물을 탐정으로 등장시키거나 유명한 문학작품 속 주인공을 탐정으로 등장시키는 작품들이 많이 나와서 그걸 기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추리소설은 대체적으로 저변이 약하고,그나마 장편보다는 단편집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박하익의 <선암여고 탐정단 방과 후의 미스터리>는 우선 캐릭터자체가 상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와 비슷한 캐릭터는 모 드라마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아마도 여탐정이라는 부분에서 큰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여탐정이라는 보기 드문 캐릭터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부터 큰 점수를 주고 싶을 정도다.

 

이런 전대미문의 여고생 탐정단 캐릭터를 등장시켜 신종 변태인 '무는 남자'부터 스타의 총격사건,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학급 내에서 일어난 사건,토끼 인형만 훔쳐가는 괴상한 사건,연극 <악마의 대본>에 얽힌 사건 등 연결고리가 없을 것 같은 사건들을 마치 하나로 보이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이 대단한 작품이다. 그리고 여기에 탐정단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던 표지 그림과 마치 문제를 푸는 것 같은 특이한 각 사건의 챕터가 얼핏 보면 가벼워보이는 작품처럼 느껴지겠지만,작품을 읽어보면 점점 무거워지고 심각해지는 작품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품에 나온 사건들 모두 기발한 트릭이나 추리가 나오지는 않는다. 대부분 사건의 동기나 원인에 집중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 구성이 억지 설정이 아니라 다른 사건과 절묘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한 사건에 이전 사건의 등장인물이 다시 나와 그 사건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설정하기도 하고,또 한 사건 안에 또 다른 사건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때문에 마치 연작소설을 읽는 것처럼 큰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 사건의 소재도 왕따,낙태,인터넷의 루머,성적 문제 등 우리가 언론을 통해 듣거나 한 번 쯤 들었던 문제들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읽고 나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쯤 다시 한 번 고민해보고 생각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추리소설의 사회적 역할까지도 찾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수록된 사건 중에서는 문제 2와 3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데,바로 위에서 말한 부분들 때문이었다. 처음에 봤을 때는 나쁘게만 보였던 사건들이,탐정단의 조사 결과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의 비뚤어진 생각과 주변의 지나친 관심 혹은 무관심이 얼마나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지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작가의 말 부분에 나온 여러 도움을 준 분들 대부분이 여성인 것임을 생각해본다면 작가의 노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었다. 유쾌한 미스터리라고 하지만 읽고 나서는 그렇게 유쾌할 정도는 아니었다.

 

정작 이 작품의 원전이 된 박하익 작가의 단편 <무는 남자>를 읽어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이 단편에서 장편으로 바꿀 수 있었던 작가의 노력에 감탄할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또 다른 속편이 나오길 바란다.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한국 추리소설에서 적게나마 수확을 거둘 수 있을 것 같다. 추리소설은 기발한 트릭이나 추리 없어도 쓸 수 있다는 것을 박하익 작가가 보여준 셈이다.

 

20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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