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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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으로 익숙한 작품이었다가,

영화 보곤 이런걸 뭐하러 영화 만들었나 싶다가..

책을 읽고서야 진가를 알게된 작품이다.

 

 

한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 불륜? 자칫 상투적이라 느낄수 있는 소재.

 

뭐하러 영화로 만들었나 싶었던 이유는 영화에서 보기엔,

어찌보면 많이 본 것 같은 상투적인 이야기라서이다.

고전이라는 것 자체가 결국 상투적일 수 밖에 없다곤 하지만..

(왜냐하면 오랫동안 회자되고 끊임없이 읽히기 때문에)

21세기에 영화로 만들기엔 뭔가 부족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영화 보면서 내 이해가 다소 부족한 것 같다곤 느꼈다.

왜냐하면, 여러번 클로즈업 되었던 T.J에클박사 광고판만 해도..

솔직히 무슨 의미인지 못느꼈으니까.

뭐 신의 눈을 대변하는 그런거야? 막연히 생각했을 뿐,

물론 책에서도 그런 의미처럼 보이긴 했다.

 

책의 중반부를 읽어나가면서도 역시나 똑같았다.

굳이 이런 걸 왜 다시 읽는지. 왜 다시.. 영화로 만드는지..

그런데 엔딩 부분 즈음에 다다라서야 알것 같았다.

이 작품의 가치를.

영화보면서 내가 그냥 넘겼던 장면들.. 그저 이미지적으로만 보여줬던 것들이

텍스트로 보았을때 빛을 발했고, 의미있게 다가왔다.

책으로 봐야할 건 책으로 봐야한다. 역시 그런건가 보다.

 

 

글자와 글자, 그 행간에 묻어있는 진한 영화의 향기.

 

아니 책으로 봐야 할 작품이기도 하지만,

책으로 먼저 봤어할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개츠비는 어딘지 모르게 디카프리오스러웠고,

데이지는 어딘지 모르게 캐리멀리건스러웠다.

개츠비의 파티는 영화 속에 사이키 조명과 현대적 디스코 리듬이 울려퍼지는

파티로 밖에 상상되지 않았다.

그래서...뭔가 억울했다. 영화보다 책으로 먼저 봤어야했는데..제길.

 

 

반짝반짝 빛나는 위대한 개츠비의 가치.

 

서술자 개러웨이를 제외한 모든 인물이 다 입체적이었다.

(1인칭 시점인 개러웨이는 입체적이기가 힘들다. 그건 감안할수 밖에..)

데이지와 게츠비도, 톰도, 조던도.. 모두다.

표리가 다른 입체적인 인물들이었다.

 

영화에서도 명백히 보여진 개츠비의 허무한 삶의 마감.

화려한 파티로 하룻 저녁에 수백명의 갑부와 귀족들을 만나던 그는

2년전에 마지막으로 찾아 뵈었던 아버지와

몇달 전에 처음 만난 개러웨이 그리고.. 이름 모를 안경 쓴 사내의 배웅을 받으면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의 개츠비는 밤새도록 데이지의 집앞을 지키며 침작하고 담담한 척 하려 했고,

자신의 꿈을 끝내 지키려 했지만 어쩔수 없이 초라했고 어딘지 어린애스러웠다.

자신이 달려온 꿈. 멀리서 자신을 향해 비추던 초록빛 불빛을 향한 열망을

어른스럽게 포기하지 못한 채,

그저 어린시절 데이지와 하얀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사랑을 나누던 그때처럼..어린애로 죽어갔다.

 

그리고 그 즈음.. 정말 사실적이라고 느꼈던 모든 심리 묘사들.

자꾸 파란볼펜을 들어서 줄 긋게 만드는 문장들

또한 위대한 개츠비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빗나간 화살들이 끝내 명중한 자리들.

 

책 뒤에 번역자인 소설가 김영하가 이 책에 대해서 그렇게 써 놓았다.

빗나간 화살들이라.. 내가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느꼈던 씁쓸함.

개츠비가 애쓰면 애쓸수록 느꼈던 그 안타까움의 실체가 저 문장에 있었다. [다시금 영하형님짱!ㅋ]

명중한 자리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이기심.

무책임함.

집착.

냉정함.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수히 겪고 무수한 할큄을 당하는 보편적 감정들.

그래서 이 소설이 영화로 되었을때 나는 상투적이라고 느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그 상투성이 이 소설의 빛나는 업적이며, 끝내 회자되는 가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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