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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평점 :
수-짱, 나는 너를 한눈에 알아봤어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렇게 너와 마음을 나눌 수 있어 든든해.
나는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어. 어려서부터 실험하는 것을 좋아해서 택한 이 길이 요즘은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한단다. 실험을 하고, 데이터를 뽑고, 자료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랩 미팅 때 모든 것을 발표하는 과정이 이제는 익숙해질만도 한데 버겁게 느껴지는 거야.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반복되는 과정으로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단 하루를 편히 쉬지 못하고, 툭하면 새벽이나 되어서야 집에 갔다가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실험실에 박혀있는 이 생활을 통해 나는 내가 원하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되기도 해.
나도 너처럼 지금 이대로 모습도 살지만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 지금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모를 때가 많아 답답하단다. 그래서 네가 쓴 일기에 내 마음을 덧붙이기로 했어.
카페에서 일하면서 잘 지내기 위해 굳이 마음을 열지 않고 위로는 주인의 신임을 얻고 동료와는 별 탈 없이 지내고 아르바이트생들을 어르고 달래며 지내는 모습을 보니 그래도 나보다는 감정을 잘 다스리는 것 같아 부러웠어.
지금까지 나는 누군가를 대할 때 진심으로 대해왔어. 그리고 나보다는 다른 이들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으로 생활해왔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으로 여겨왔거든, 그리고 그런 내가. 지금 이대로의 자신이 나라는 생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왔어. 하지만 요즘은 이런 내 생각이 옳은 자세인지 의문이 들곤 해. 나는 진심으로 대하는 반면 상대방은 진심은커녕 오히려 이용하거나 악용까지 한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야. 어쩌다 한 번 들르는 교수님은 실험과정은 보려하지도 않고 눈에 보이는 결과로만 은근히 압력을 주고, 연구, 실험을 지도해줘야 할 사수님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도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랩 미팅 때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고, 힘들어하는 동료를 위해 내 실험을 뒤로 한 채 도와주고 나면 이미 완벽한 데이터를 만들어 놓아 당황스럽게 하고, 아직 모든 게 서툰 신입에게 차근차근 알려주면 으레 나에게 의지하려 하고, 정말이지 인간관계로 얻게 되는 무지막지한 스트레스는 울음으로 끝나지 않고 급기야 병원을 찾은 후에야 한 숨 돌릴 수 있었어.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위경련이라는 진단을 받고.
덕분에 이제는 실험에만 전념하고 있어. 마음의 문을 굳이 열지 않고. 수-짱,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을 걸까?
머리도 좋고 미인이지만 싱글로 유부남을 만나는 마이코, 친구로 지내고 있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내는 모습도 나와 비슷해. 그래서 더 친근함을 갖게 되는 것 같아. 마이코, 34살로 회사에서 영업직을 맡아 일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유부남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좀 거북했어. 그래서 결혼을 무의미하게 여기다가 평생을 함께 하자는 결혼의 맹세가 주는 가치관이 굉장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유부남과의 결별을 결심할 때는 응원의 박수를 보냈어. 그래. 결혼생활이 환상일지라도, 그 맹세가 깨어질지라도 기본적인 틀은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너 또한 마음에 두고 있었던 나키다 매니저가 아와이와 결혼한다는 사실에 미인이 되고 싶다는 일기장 속 마음은 안타깝게 했어. 사실 누구나 사랑으로 인한 상처와 아픔을 갖고 있는데 그 원인은 서로 맞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 물론 미인이라는 조건이 어느 정도 작용은 하겠지만 지속적인 사랑에는 그렇게 큰 부분은 아닌 것 같아. 아직도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하고 여러 가지 모습을 상상하지만 어쩌면 다른 누가 나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네 일기 속의 마음이 맞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 내가 바라본 자신도 딱히 좋은 것도 없는데 다른 누군가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야. 물론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으로만,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습으로만 부러워하겠지만 그렇다고 굳이 아니라고, 속마음까지 열어 보이며 알려줄 필요는 없는 것 같아. 그럴수록 나는 또 내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 지금보다 조금 좋은 사람으로 변할 수 있기를......
수-짱, 너와 함께 마음을 나누면서 너를 통해 내 자신을 만나볼 수 있었어. 그동안 항상 부족하고 늘 서툴고, 감정의 기복이 심해 당황하는 자신이 답답했고 지금의 나보다는 언젠가의 나를 꿈꾸며 생활하면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어. 그런데 조금씩 내 자신의 모습이 예쁘게 보이는 거야. 싫은 부분도 있고 좋은 부분도 있는 나는 세상에 단 한 명밖에 없다는 것, 내 마음이 보이지 않을 때는 스스로 고민하며 생각하며 옳다고 생각하는 나를 통해 부활하는 것처럼 변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다양한 나를 늘려가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래 수-짱, 우리는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거야.
자꾸 웃음이 난다. 기억해. 나는 너에게 절친은 아니더라도 친구로 함께 한다는 것을 수-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