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식기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당연히 ‘저출산’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이 단어마저 문제 삼을 것이다. ‘저출산(低出産)’은 인간을, 특히 출산의 주체인 여성을 도구화하고 인구 감소의 책임을 지우는 단어이므로 ‘저출생(低出生)’으로 칭하자는 담론이다. 하지만 용어를 바꾸는 것만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결국 ‘국가 발전’이라는 거대한 목적 아래 인간을 사회 지속을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변하지 않는다.


‘생식(生殖)의 기록(記)’이라는 의미를 담은 제목의 이 소설은, 이러한 본질적인 사회 시스템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자극적인 소재와 파격적인 설정으로 주목받은 작가의 전작 《정욕(正欲)》이 ‘사회적 연대’를 논한 것과 달리, 이 소설은 처음부터 사회의 성장 논리에서 이탈한 개인을 다룬다.


《정욕》은 ‘물 페티시’라는 특이 취향을 가진 인물들이 사회로부터 소외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숨기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다쓰야 쇼세이’는 사회의 발전에 조금도 기여하지 않는 것을 택함으로써 자신과 사회의 간극을 좁히려 하지 않는다. 그는 ‘의태(擬態)’라는 일종의 ‘역할 놀이’를 통해 갈등을 피하면서도 나름대로 자신의 세계를 지켜낸다.


특이한 점은, 이 모든 관찰이 ‘정체불명의 화자’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여러 생물을 거쳐 일본인 수컷 개체에 깃든 화자는, 쇼세이의 몸을 통해 바라본 ‘생산성’을 강요하는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화자의 분석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다음’을 끊임없이 생각하며 자신을 새롭게 상품화하여, 새로운 생산성을 얻어가는 존재이다. ‘암컷 개체에 성적 흥분을 느끼지 않는 인간 수컷 개체’ 쇼세이는 생산성의 논리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생식’이라는 종족 보존의 본능에서 벗어난 쇼세이가 의도적으로 생산성의 논리에서 벗어나길 선택한 것은, 이러한 생산성 중심 사회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반항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화자는 새로운 의문을 제기한다. 인간은 오히려 공동체 감각을 감시하는 카메라를 늘려, 사회 공헌에서 배제되는 개체를 도태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아닌가? 자신의 ‘다음’을 생각하며 자신을 새로 상품화하고, 사회의 성장에 기여하며 자신을 ‘사회적 인간’임을 감시할 무언가를 원하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도발적인 의문은 여러 인물들의 시점에서 전개되던 《정욕》과 달리, 정체불명의 화자에 의해 관찰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이 소설은 성적 지향이라는 개별적 특성을 넘어, 존재 방식 자체의 차이를 탐구한다. 쇼세이가 ‘생식’이라는 본능적 목표에서 멀어져 있음은 화자에게 단지 하나의 관찰 지점일 뿐이며, 중요한 것은 그가 애초에 사회로부터 인정받기를 포기했다는 사실이다. ‘다양성 존중’의 담론을 넘어, 사회가 규정한 ‘정상’의 테두리 안에 들어오려 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통해, 우리는 인간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모색하게 된다.


쇼세이는 공동체의 발전에 전혀 기여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는 사회와 유리되기보다는 적절히 ‘의태’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그를 독자는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행복해 보인다. 이는 또 다른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리가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란 무엇인가? 통념에서 벗어난 삶에서도 나름대로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느끼는 행복이 잘못되었거나,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잘못되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쇼세이의 ‘의태’ 기술 역시 특기할 만하다. 그는 진정한 소통이나 감정적 교류를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고 최소한의 관계를 이어나간다. 이는 최근 여러 곳에서 회자되는 ‘MZ 직장인’들의 모습과도 일견 비슷해 보인다. 공적 관계에서까지 진정성을 요구하는 기성세대는 이를 비판하지만, 적당한 거리와 최소한의 감정 소모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또 하나의 논리, ‘효율성’에 더욱 부합하지 않은가?


결국, 이 소설이 궁극적으로 말하는 바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오래된 명제에 대한 반론이다. 사회적이지 않은 인간도 존재 가치가 있는가? 이는 다양성의 문제를 넘어, 새로운 인간의 이해에 대한 가능성의 문제이다. 정체불명의 화자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이 사회의 오랜 통념과 개인의 존재 방식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