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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 대중 혐오, 법치 -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피에르 다르도.크리스티앙 라발.피에르 소베트르 지음, 정기헌 옮김, 장석준 해제 / 원더박스 / 2024년 2월
평점 :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내전’이라 하면 왠지 이런 그림을 떠올릴 것 같지만, 여기서 말하는 내전은 좀 더 포괄적이다. ‘서로 다른 사회적 이해 당사자들 간의 경쟁, 특히 계급 투쟁’이라고, 저자들은 내전을 이렇게 정의한다. ‘시장’이라는 하나의 정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신자유주의는 ‘내전’이라는 전략을 사용한다. 그것은 경찰력을 동원하여 유혈 사태로 번지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내전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사회 내부의 두 세력 간의 충돌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자유’의 이름으로 ‘평등’과 맞서는, 신자유주의의 주요 전략에 따른 결과이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신자유주의는 끝났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지만, 저자들은 여러 장을 할애하며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의 지배 전략을 ‘내전’과 ‘대중 혐오’, ‘법치’라는 키워드로 이야기하며, 이를 타개할 새로운 방향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1973년, 칠레의 장군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쿠데타를 일으켜 살바도르 아옌데의 좌파 정부를 전복시키고 최초의 신자유주의 정부를 수립한다. 피노체트는 ‘법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권력’이라는 개념을 동원하여 권력 찬탈을 정당화했고, 노조의 권리를 엄격히 제한하고 전면적인 민영화를 추진하는 등 파격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했으며, 이윽고 1980년 개헌을 통해 국민주권마저 빼앗고 만다. 흔히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개념으로 알고 있는 신자유주의가 독재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을 밑바탕에 깔고 있기에 가능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여론의 지배, 혹은 우매한 대중을 위험 요소로 여겨 민주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떻게 대중의 권력을 제한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 해답으로 ‘강한 국가’의 필요성이 등장한다. 여기서 강한 국가는 대중의 요구를 차단할 수 있는 초월적 국가를 의미한다. 따라서 독재나 국가 폭력과 같은 수단도 때로는 정당화될 수 있으며, 시장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사법(私法, droit)을 헌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는 우리의 인식대로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부의 적(敵)을 규정하여 사회 내부의 계층 간 전쟁을 종용한다. 가령 2019년 프랑스에서는 ‘노란 조끼 운동’이라는 임금 인상과 간접세 인하 등 평등에 대한 요구를 무자비한 탄압으로 응했고, 언론과 정치권은은 이들에 대한 비방과 낙인 찍기를 통해 대중에게 공포심을 조장했다. 이는 비단 프랑스뿐만이 아닌 전 세계에서 관찰되고 있는 현상이다.
현대의 신자유주의는 일부 엘리트 계층이 적과 싸우는 데서 나아가 대중의 일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갈등의 장으로 뻗어나갔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쉽게 관찰되고 있다. 가령 세대 갈등이라던가 성별 간의 혐오, 좌우 진영의 대립, 능력주의의 맹신 등이 있다. 이러한 갈등의 주체들이 서로의 이해 관계를 수용하고 조정함으로써 내전은 평화롭게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러한 갈등을 조장하는 주체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에 익숙지 않다면 매우매우 어려운 책이다.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했다고는 생각지도 않고, 아마도 잘못 이해하고 서술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조금은 와 닿았다.
“낡은 것은 갔는데 왜 새것은 오지 않는가?”
의미심장한 말이다. 신자유주의는 종식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인류를 일정한 방향으로 조종해 왔고, 그 과정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과연 이 시대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들이 이 두꺼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그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장애물에 대한 대항, 좀 더 그럴싸하게 말하자면 ‘혁명’이다.
22대 총선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금, 우리는 뉴스를 통해 다양한 편 가르기를 목도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반발로 의료 서비스에 차질이 생긴 지금도,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표를 모으기 위해 서로를 헐뜯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작게는 우리가 가진 소중한 권리 행사로, 크게는 지배층의 엉큼한 속내를 깨닫고 휘둘리지 않는 것으로 대항할 수 있을 것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