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 전통 한문서당 9 전통 한문서당 9
홍문관 편집부 엮음 / 홍문관(크레피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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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포퓰리즘"
 

[ 최근 높아져가는 복지확대 요구를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한 뒤,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복지 확대를 요구한 국민이나 국회는 모두 ‘적군’이 되는 셈이다. 박 장관은 대신 “‘일하는 복지’를 기조로 지속가능하면서도, 꼭 필요한 사람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복지 패러다임을 정립하겠다”고 말했다. ]------2011년 오늘의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

 

저 말을 안하면 요즘 시사문제에 문외한 취급을 받는 것 인지?

 

포퓰리즘-(populism)

1.  19세기의 포퓰리스트 운동(populist movement)에서 유래한 말로, 정부에 대한 국민의 통제를 요구하는 정치 정향을 말한다. 즉 정치 권력을 정치인들로부터 국민에게로 이양할 것을 요구하고, 엘리트에 의한 정치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정치를 요구하는 정치적 신조를 말한다.

 

2. 그러나 현대의 포퓰리즘의 의미는 단순히 '대중화(popular)'에 초점이 맞춰진 것을 말한다. 특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일반 대중, 저소득계층, 중소기업 등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취하는 일련의 경제 정책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국내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적자예산 운용, 소득 재분배를 위한 명목 임금 상승과 가격 및 환율 통제 등이 예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포퓰리즘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계기는 아르헨티나의 페론정권이 대중을 위한 선심정책으로 국가경제를 파탄시킨 사건 때문이었다.

 

3. 포퓰리즘의 근본 요소는 정치 지도자들의 정치적 편의주의(便宜主義)나 기회주의(機會主義)이다. 특히 선거를 치를 때 유권자들에게 비합리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선심 정책을 남발하는 일이 전형적이다.


[출처] 포퓰리즘 [populism ] | 네이버 백과사전


그런데 대중이 원한다는 것은 도덕적 윤리적인 지향적인 이유에서기 아니라 생존적인 측면에서의 요구가 많은 것이 아닐까?  대중이란 어찌보면 도덕과 윤리가 정착되기 어려운 성질의 집단 아닐까? 집단 윤리, 집단 도덕은 드믈고 마녀사냥은 많은 것 처럼.

뭐.. 도덕주의 ,이런거를 통제하는 것은 집단의 행위가 아니라 종교와 같은 의미에서만 그 통제목적이 도덕주의랑 연결 되는 것 .. 뭐 그런거 아닌가  이말이지..

그러므로 대중이 원한다는 것의 의미는 "지금보다 나은 .." 이라는 의미가 더 강한 것 아닌가 ..이말이지.

그래서 그것은 지금보다 진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이즘(Ism)이다.. 뭐 ...그런..

그렇다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무지를 앞세운 대중에게 그 포률리즘의 종말이 어떤 것이든 권력자는 또는 집단을 이끄는 지도자는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 가족은 밖에서 외식하는 것을 좋아하므로 매일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는다해서 집안 경제가 파산이 된다 라는 것은 집안 식구가 그 내용과 사정을 잘 알지 못함에서 비롯된 욕심이니까 그 우리가족이 집단으로서의 윤리와 도덕인 도덕주의를 가지지 못한 것은 그에 맞는 목적을 제시하지 못한 가장의 책임이지 식구의 탓은 아니지 않느냐.

가장은 식구들이 원하는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인 바 매일 외식을 할 수 있도록 가족 모두가 노력한다면 이루러지거나 욕구를 축소시키거나 하는 자연스런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그러한 각자의 노력은 결국 경제적 정신적 가치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거지.

 

"    말은 어렵지만 포퓰리즘(Populism)은 민중 우선이냐 국가 일방통행이냐로 귀결되는데 여기서 포퓰리즘(populism)의 반대말이 국가 통제주의(statism)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최근 국내 보수 진영은 진보 진영의 복지안을 포퓰리즘(populism)이라고 연일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의 이런 반응은 저급한 이해에서 나온 것이다. 즉 대중과 엘리트, 다수와 소수의 대결 구도를 피하기 위해서 사회ㆍ정치적 제도가 변해야 한다는 취지가 본래의 포퓰리즘(populism)이다. 옥스퍼드(Oxford) 캠브리지(Cambridge), 웹스터(Webster's) 사전도 포퓰리즘(populism)은 '민중의 필요나 소망을 대변하는 정치 사상이나 활동'이라고 설명한다.    " ([임귀열 영어] Misunderstanding of Populism (포퓰리즘에 대한 오해) -- 한국일보/2011.1.19



 

그런데 요즘의 정치인들은 제 주머니 사정은 공개하지않는 허풍쟁이 가장처럼 식구들이 철이 없다고 탓하는 것 같아.

4만불의 국민소득을 눈앞에 둔 OECD국가이며 G20의 새로운 세계경제의 리더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다른나라에 원조를 해주는 나라에 사는 국민..

국민의 대다수가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물론 요즘엔 중하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졌다곤 하지만 .. 그래도 자신이 아주 부자는 아니지만 부자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에 기준을 둔 , 그런 정책만 하지 않았었나?

 

집도 중대형만 팔리고, 차도 대형차만 타야 하고, 유명 브랜드가 아니면 그냥 리어카에서 파는 싸구려 취급을 하는 , 비싸야만 좋은 것이라는 생각, 빚을 얻더라도 규모는 크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의식을 심어준 것은 누구일까?  집단 스스로일까? 

그런데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니.....

 

이런 의식은 분명 특권의식에 사로 잡혀있기 때문일게야.

자신만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으며,

자신의 지식만이 정확하고, 그 것이 미래의 대중을 위한다는 권위의식.

이건 마치 편협적이고 이기적인 종교집단을 보는 것 같아.

 

그 루터가 기득권 세력인 구카톨릭을 공격한 것도 그 시대에는 진보였듯이"세상을 변화시키고 진화토록 한 것은 진보였다" 라는 어느 학자의 말처럼 진보를 이끄는 것은 대중아닐까?  루터도 카토릭의 부패에 반항하는 소외된 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이라자너? 그런 것 처럼 진보한다는 것은 발전한다는것이지 한쪽으로 기운다는 게 아니지 않을까? 그런데 거기에 색깔을 입히고 한쪽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자신이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 그 기득권이 영원할 것이라 믿는, ... ( 이런 의식 속에는 분명 종교적기원이 있을 것 같아.. 너는 믿음을 믿으므로 영생을 얻을 것이라는 ..) 그런 부류가 아닐까? 반대편에서 본다면 어느 한쪽도 결국은 다른 한쪽인 것을..

 

철학이 없어 보이는 그런 말들을 유행어처럼 떠드는 사람들에 관한 유머

1-안 들어도 뻔한 소리..?? 뿌~우~~~
2-일방적으로 떠든다...
3-하지말래도 도통 들어먹질 않는다...
4-듣고 있으면 머리가 아프다...
5-듣기 싫어 귀를 막아도 들린다...


말하는 내용이 유치하고 지혜롭지 못해보이는

망국적이라던가 , 무조건 퍼주는 식의 라던가, 이런 말은 일방적으로 과장된 표현아니야? 주는 것도 없는 게 그런말 할 수 있어?

그런 말을 하는 자체가 특권적이지 않나?

그러면서 " '일하는 복지’를 기조로 지속가능하면서도, 꼭 필요한 사람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복지 패러다임을 정립하겠다."  라고 말하는 것은 말장난이지..개그맨들이 코메디에서 하는 것처럼.. (이것도 분명 심리적 요인으로 종교적인 윤리의식이 들어 있다고 보이는..) 현실을 오도하는 것이지..  자신의 개그에 정당성을 부여하도록 왜곡하여 보는 것이지 뭐......  남의 것은 안보고 안보이는...

" 일하는 복지 "라는 것은 마치 일을 할 수 있음에도 일부러 일 안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그런 의미가 깔려 있는 것 같고, " 꼭 필요한 사람 "이라는 것은 한쪽의 시선으로 다른 쪽을 판단하고 구분한다는 것 아닌가..

말은 그럴 듯해 보이는데 그럼 그 동안의 수많은 사회복지의 한면은 물리적으로 또는 기능적으로 오류였다는 것일까?

주고자해도 줄게 없어서 모두에게 못 주었을 뿐 아닐까?

 

그것을 다 같이 나눠주고자 많이 가진 사람들이 분배하는 것은 선택받은 인간이 가진 특권을 포기하는 것 이라는 .. 그런 것인가?

그것은 식구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했으나 그 노력 한 만큼 가진게 없어 파산 당한 가장의 입장은 이미 가진 것이 많아서 없는 자들의 현실을 모르는 상태이거나 자신이 가진 것이 결국은 남들의 도움이라는 것을 모르는 , 자신은 특별하다고 믿는 , 가지지 못한 것은 능력이 없어서, 노력을 안해서라고 믿는 ......  인간을 스스로 신인양 구분하는 인간들은 절대로 이해 못하는..... 그런 자들의 입장에서는 망국적 ..이다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

 

가진자들만의 성장은 잠시 쉬고 갖지 못한 자들에게도 인생의 여유를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주는 것이 결국은 참된 의미에서의 성장아닐까?

그렇게 해주는 뜻으로 퍼준다면 그건 "퍼" 주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 주는 것 아닌가.. 이거지.. 그것은 다시 환원될 것이고...

 

좀 .. 구석구석 살펴보지...

휘~~~익 보는 것 말고 그 구석에 있는 시선의 입장이 되서 말이지...

 

易地思之 .!

 

좋은 말임.

이것만 모두가 숨쉬는 것처럼 실행하여도 종교는 필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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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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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은 넓은데 그 중에서 우리는 왜 이런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가라고.
선진국은 어떻게 마련되어 있고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노라고..
그들의 나라는 장밋빛 꿈으로 가득 차서 현실 생활은 이상과 다르지 않다고..
행복을 즐기며 꿈을 꾸는 듯 살아가는 그런 나라 같이..묘사하지는 않아도 항시 그런 투의 비교를 한다.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사회현상에 대하여도 선진국은 어쩌고를 말하며 도표나 학자들의 비평을 섞어가며 우리의 현실과 비교를 한다.
그런데 그들의 비평을 듣다 보면
그래서?” “그 다음에는?” 그런데?’ 라는 미적지근한 해답에 대한 의문이 일고는 한다.
그들의 비평에는 비판만 있고 근원적인 자기 성찰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비교의 대상은 배경이 충분한데 우리는 그 배경이 빈약하다는 생각이다.
비교의 대상으로 언급되는 나라들.
미국 영국 일본 등 여러모로 가진 것이 많은 나라들인데
그들이 가진 것 중에서 경제력과 군사력을 빼면 그들만이 가진 것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있을까?
사회적인 측면에서의 의식구조.
민주주의 구조에 의한 정치적 배려(?)
좌우간 그런 것들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무형의 구조 아닌가?
그럼 그런 것들은 우리에게도 있지 않나?...라고 생각해보면 위 비평가들에 대한 의문처럼 뭔가 찝찝한 것이 있다.
근대 세계적 격동의 역사에서 결코 소외되었다고 생각되지 않는 우리의 역사적 시간 흐름을 본다면 그들과 비교해서 짧은 시간을 가진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현실 구현 .. 뭐 그런 것 아닐까?
시작이 어디서부터 틀어 졌는지는 앞으로 얼마나 더 후대에서 가르쳐줄지 모르지만, 뭐 그런 개념을 도입한 시점이 그리 먼 시간이 아니므로 그 잘못은 우리 시대의 인물에게 있지 않을까?

그런 민주주의를 도입하면서 서양의 그들이 그 이념의 기초로 삼은 정신이 우리에게 뒷받침되어 있지 아니어서 였을가??
자유를 향한 인류의 욕망은 본능적인 것이다 라고 말 할 수는 있더라도 개인적인 것과 국가적인 욕구는 그 실천적인 면에서 다를 것이므로 시점에서의 지식인들이나 지도자들이 그 민주이념도입에서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적 의식을 잘 끼워 맞추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이념 실천은
순전히 내 생각에서는 과거의 수용이 아니라 과거의 배척에서 시작되었고
그래서 마치 탄탄한 기반을 찾아 더 무른 흑들을 걷어내지 못한 채로 기둥을 세워 지반침하가 일어난 건물처럼 지금 흔들리는 것 같다.

과거가 비록 잘못했다 하더라도 본의가 아니었을 테고, 그나마 외세를 수용하는 방법에서 선택이 조금 어긋났다 손 치더라도, 또 세계적인 흐름이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그런 과거를 모조리 무시해서는 안되었지 않았을까?

국가의 독립을 위해서 였다고는 하지만 멀리 남의 나라에서 하소연만하고 처분만 바라던 그가, 단지 그들과 말이 통한다고 해서 그들의 힘과 모의에 의하여 세워진 그가,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전쟁으로 부서진 나라를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돈이면 다이루어진다는 의식을 심어 준 사람. 과정과 목적 의식은 알 것 없고 오직 정복하면 다인 것이라고 심어준 두 사람. 그리고 일생의 자기 성취욕구 만 채운 것 같은 사람들. 그 후 희망만 가지고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을 느끼게 해준 사람. 지금 그런 것 모두 다 이승에서의 일이니 자신과는 관계없고 오직 신에게 선택 받은 것이라 믿고 자신의 교만만을 내두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저마다 스스로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구멍에 단추를 집어 넣는 바람에 이제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그런데 그런 것은 , 그런 잘못이라면 잘못인 과거는 그렇다 쳐도 수 천년 동안 지속되어 온 우리의 정신은 어디로 가게 놓아둔 자들은 누구일까?
위정자일까?
나는 그들만의 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K형.

2,000년 동안 우리 민족의 정신을 지배하여 마침내 우리 민족의 성격을 형성시킨 불교의 정신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영혼임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마침내 벼락을 맞아 하느님으로부터 깨닫게 된 진리와 불(佛)의 사상은 결국 너와 나, 둘이 아닌 하나의 진리임을 저는 자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카톨릭적 불교주의자"이기를 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해동의 우리 나라에는 부처로부터 흘러 내려온 불의 등불이 활화산이 되어 2,000년동안 아직도 활활 타오르고 있음을 느꼈으며, 그것을  깨달았을 때 저는 진심으로 제가 이 나라에 태어난 사실에 대해서 깊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 본문 32쪽 중에서

 
   


 
우리 모두의 스승은 어디로 갔을까?
아니면 언제 변질이 된 것일까?
비단 나만이 갖고 있는 편협한 시각일지는 모르나.. 
꼭 그렇지 많은 아닐 것이라는 , 약간의 자만도 있다.
우리는 지금 인문이 사라진..
철학이 없는..
집집마다 한 구석에 자리하였던 삼신할미가 사라지고 근본 없는 선무당만이 판을 뛰는 형국 이랄까??
스노비즘이 판치는???    
누가 뭐라고 돌을 던질 것인가?
개발이 우선인 시대에 ..전쟁으로 허물어진 집과 헤어진 가족.
그런 아픔을 잊을 수 있는 땀을 필요로 하는 개발시대.
금전적인 풍요가 지식의 풍요보다 우선시 되어 왔던 시대.
누구나 그런 사회적 지위를 갖기 위해 온 재산을 털어 서울로 서울로 올라오던 시대.

국문만 깨치면 되던 시대에서 대학을 나와야 사람 구실한다고 변한..
그래서 전문학교를 모두 대학으로 간판을 바꿔 버린 

그렇게 만들어버린 지금 이전의 정책 입안자들.
그들 스스로가 지금의 이런 현상을 예견치 못한 책임이 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리빠똥 사장"이라는 70년대에 연재되던 신문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과 같은 인간상과
"똠방 각하"가 숭배하는 완장을 앞서가는 세대로 인정해주던 틀어진 시대.

  [[ 리빠똥 사장 ]]   김 용성 저
   1974년 작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리빠똥 장군'은 판금조치 당함.

   << 리빠똥이란, 오직 잇속과 시류를 따라 똥파리처럼 날아다니는 인간군상을 가리키는 작가 김용성이 만들어낸 조어다  >>

 

 

 

 

 

그렇게 70년대 군부시절부터 이어져 오는 문화는 아직까지 지속되어 오고 있는지,

아니 요즘은 그런 문화를 30여년에 걸쳐 변색되고, 그 변색된 칼라에 온통 분탕 질을 해댄 문화가 무수히 많은 신 개념 '리빠똥'들을 만들어 내었는데 , 최근에는 사라졌을걸 아마?? 도...

 

그렇게 전 시대의 사람들이 만들어 낸 희생자들이 요즈음의 아이들 아닐까?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머리모양을 하고 같은 가방을 메고 다니던 아이들이 낳은

아이들은 개성이라는 사회 속에서 살지만
그들의 부모가 그런 개성에 낯 설어 하는 바람에 모두 같은 모습을 하도록 무의식속에서 요구당하는 것 아닌가 말이지.. 최근 신문에 'K-POP' 이라는 문화가 유럽에서 환영받았다고( 이런 표현은 순전히 우물안 개구리식의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만,,,..) 뉴스에도 나오곤 하는데.. 그들의 신문은 아이들이 획일적으로 만들어진 상품이랐다지?

그렇게 어쩜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들이 그저 부모가 가길 원해서 갔고,
달리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은 다르다고
줄기차게 가르쳐온 자들의 욕심에 의해서 움직였을 뿐인데
이제 와서 " 누구나 다 가는 대학에 굳이 왜 가려 하느냐? "고??
저들이 만들어 놓은 수렁에 저들이 밀어서 빠졌을 뿐인데
이제 와서 너들이 알아서 나오라네..
그래 놓고는 대학의 교육의 질이 어떻느니.. 
돈이 비싸니 ...
대학 나와도 갈 곳 없다느니.. 

앵무새 말 배우는 것 같은 작태만 보이며,
좀 배웠다는 자들은 남의 나라와 비교만 하는......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책임과 의무는 누구에게 있나?
개성이 존중받고 창의력이 우대 받는 문화는 누구 만드나?
자본주의 생성 동기와 배경 .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자연스러운 변화과정의 생략.
부와 빈곤의 격차를 좁히고자 하는 노력의 이유.
분배. 사적 이익과 공동의 이익.
기타 등등.

이런 여러가지 이유와 목적.. 이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이
잠재적 정신의 동일화 아닐까?
획일적이라기보다는 무리에서 각자 존중받는 개인 ..
그런 것이 선행되면
학벌이나 직업의 가치등이 인간 개인에 우선하지 않는다는 평등함 ...
뭐 이런게 자연히 이루어지는 사회 문화.
수천년간 이어져 온 우리의 정신.. 그런게 없지 않나 이거지.
지금 보면 대립과 분열. 상대적인 개념만이 있는 듯하다 이거지.
1등아니면 모두 꼴등.
부자아니면 모두 거지.
"도"아니면 "모"  같이 말이지.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모두가 공히 가질 수 있는 그런 정신.
그것은 무엇일까?

최인호님의 글에 있는 그것?
문화적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적 분열 때문?
긍정적인 면도 있겠지만 부정적인 색깔이 더 돋보인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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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
레슬리 스티븐슨.데이비드 L. 헤이버먼 지음, 박중서 옮김 / 갈라파고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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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


| 책 속의 생각들


제 1장 유교 : 성인들의 도리
인간은 곧 '하늘의 뜻'과 불일치 하는 존재이다.
그로 인해 인간 사이에는 다툼이 생기고, 통치자는 사욕을 채우는 데만 전념하며, 백성들은 지나친 부담에 짓눌려 신음하고, 사회 전반에 이기주의와 탐욕이 만연하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인간이 처한 처참한 상황이다.
이처럼 절망적인 상황이 빚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論語'에서는 이에 대해 다섯 가지 의 이유를 들고 있다.
1)사람들이 점점 이익에 집착한다.
2)사회에서 孝가 사라졌다.
3)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
4)성인들의 가르침에 대한 무지가 만연해 있다.
5)세상에 너그러움(仁)이 결여되어 있다.
- 본문 중에서-p.39



제 2장 우파니샤드 : 궁극적인 지식을 향한 추구
이 자아는
원래 불멸의 것으로서 부숴지지 않는 것을 본성으로 하는 것이다.
사람이 만물을 인식하는
소이의 것은 무엇으로 이것을 인식할 수 있으리요?
이것은 이른바 "아니다,아니다"의 자아이다.(Neti, Nety Atma)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고 부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부서지지 않으며 사물에 집착하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얽매인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두려워 않으며 그 무엇에게도 해침을 받지 않는 것이다.
인식의 주체를 무엇으로 인식할 수 있겠는가?
- 우파니샤드 본문 에서-




제 3장 성서 : 하느님과 관계된 인간
이와 같은 파국이나 예언이나 기대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니 ,이런 것을 과연 "이해"하긴 해야 할까? 하지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감히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우리의 육체가 부활한다면 적어도 그게 "육체"인 한에서는 분명히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차지해야만 할 것이다.
오늘날의 해석에 따르면, 이렇게 부활한 육체는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물리적 우주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곳에 바울과 나폴레옹과 우리 친척 아주머니의 부활된 육체가 존재하기라도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이것은 과학적 가설이 되어,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해야만 한다.
- 본문 중에서-129




제 4장 플라톤 : 이성의 지배
만약에 교육도 잘받고 지식도 많은 인물들이 도덕적이거나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서로 의견을 달리하게 된다면 - 우리가 아는 한, 이런 일은 실제로도 벌어지곤 한다. - 어떻게 될까?
그 중 과연 누가 옳은지 증명할 방법이 있을까?
플라톤은 그런 상황에서 합리적 논증을 사용하기를 희망하며, 또한 그 자신이야말로 이 분야에서는 최고의 철학적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이 이른바 가치나 정책 같은 문제에 대해 유독 자신만이 어떤 궁극적인 진리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들은 자신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관용하지 않게 되고, 결국 자신들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행위 자체를 정당화 시키게 될 것이다.(지금까지의 역사에서 벌어진 종교적,정치적 논쟁이야 말로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p.159


제 5장 아리스토텔레스 : 인간의 완성이라는 이상

따라서 어떤 X라는 생물의 영혼은 본체도,실체도, 또한 부수적인(개별적인)것도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X가 살아가고,움직이고,기능하는 방법이다. 또한 그 "방법"자체는 대개는 함께 작용하는 능력들,혹은 방법들의 조합으로 분석될 수 있다.
이런 개념하에서는 육체가 없어도 존재하는 영혼이나 정신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다.
왜냐하면 육체가 없다면 기능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서 결국 육체가 기능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414a19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낸다.
즉 영혼은 육체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는데, 그 까닭은 영혼이 일종의 육체이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실은 그 어떤 종류의 사물도 아니기 때문이며 오히려 영혼은 살아있는 육체들의 복합적 특성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p.174





제 6장 칸트 : 이유와 원인, 역사와 종교
"순수이성비판"의 후반부 변증론에서 칸트는 인간의 이성이 어떻게,그리고 왜 그 적법한 사용의 한계 너머로 가려고 시도하는지를 분석한다.
우리는 사물에 대한 기만적인 형이상학적 지식을 마치 사물 그 자체인 것처럼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오랜 세월에 걸쳐 신학과 대부분의 철학에서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해 왔지만, 이는 칸트가 전반부 분석론에서 설정한 인간 지식의 한계를 뛰어 넘는 것이다.
칸트의 견해는 비록 우리가 그러한 형이상학적 주장을 공식화하고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증명하거나 반증할 수도 없고,
심지어 그것을 옹호하거나 반대하는 어떤 개연적인 증거를 얻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정당한 지식의 세가지 형태 - 경험적 탐구, 논리적 추론, 선천적이고 종합적인 진리 - 에 속하지 않는다.
- 본문 중에서-p.227





제 7장 마르크스 : 인간사회의 경제적 기반
포이에르바흐, 그는 1941년에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저서를 펴냈다.
포이에르바흐는 헤겔이 모든 것을 뒤집어 놓았다고 주장하면서, 이른바 하느님이 역사 속에서 자신을 점진적으로 실현하는 것과는 전혀 달리,종교적 믿음과 사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근본적인 실재인 이세상 속에서 삶의 희미한 반영으로서 창조해낸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즉 사람들이 자신의 가장 높은 잠재능력을 신학적인 환상에 투사하는 한편,실제 삶을 폄하했기 때문에 결국 "소외"된다는 것이다.
포이에르바흐는 형이상학을 "비의적 심리학",즉 우리 자신의 감정을 우주에 관한 모호한 주장으로 위장해 표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종교는 곧 소외의 증상이며, 따라서 우리는 이 세계에서 인간의 운명을 깨달음으로써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들어야 한다.
포이에르바흐는 이후 마르크스, 뒤르켐, 그리고 프로이트가 시도했던 종교에 대한 사회학적, 심리학적 설명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p.256


제 8장 프로이트 : 정신의 무의식적 기반
우리는 이른바 한 개인이 평생 배우지 않고서도 할 수 있는 여러가지 행동들을 가리켜 본능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것을 가리켜 '본능적 행동'이라고 지칭한다고 해서,그것이 정말 '본능' 가운데 하나로 추가될 수 있을까?
즉 프로이트가 인간에게는 '몇 가지' 원초적 본능 ,혹은 충동이 있다고 주장할 때 과연 어떤 본능이 원초적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이며, 또한 그 각각의 본능은 어떻게 해서 구분되고 세어질 수 있는 것일까?
- 본문 중에서-p.310


제 9장 사르트르 : 근본적인 자유
사르트르는 우림 모두가 "우리들 자신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우리는 근본적으로 하느님이 되길 열망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즉 우리는 흠 없이 완전해지려 하고 ,또한 자기정당화를 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 우리는 "즉자대자덕(卽自對自的)"인 존재가 되기를 열망한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이상이야말로 하느님의 개념과 동일하기 때문에,자기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니체와 마찬가지로 사르트르는 하느님의 부재야 말로 인간의 삶에서 무엇보다도 중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무신론자와 유신론자의 차이점은 단순히 형이상학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으므로 사르트르는 더 나아가 인간의 삶에서도 매우 색다른 견해를 펼친다. 즉 "존재와 무"의 세계관에 따르면 우리가 따라야 할 어떤 초월적이고 객관적인 가치관은 없다. 아울러 인간의 존재에 어떤 고유한 의미나 목적 같은 것 도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삶은 그야말로 "부조리한 "것이라고 묘사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p.326
"無는 존재의 중심에 마치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다"


제 10장 인간의 본성에 관한 다윈주의 이론
과학적 자연주의가 휘두르고 있는 최종 결론에 해당하는 칼날은 그 것의 주요 경쟁자인 전통 종교를 철저하게 물질적인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올 것이다. 신학은 독립적인 지적 분야로 생존해 갈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종교 그 자체는 사회의 생명력으로서 오랜 기간 버텨낼 것이다.어머니인 대지로부터 에너지를 끌어내는 신화 속의 거인 안타에우스처럼, 종교가 단순히 그것을 내던지는 자들에 의해 정복당할 리는 없다.
과학적 자연주의의 정신적 약점은 그것이 그러한 힘의 근원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p.415
데이비드 오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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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신화다 - 기독교의 신은 이교도의 신인가
티모시 프리크 & 피터 갠디 지음, 승영조 옮김 / 미지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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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주욱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평소 가졌던 종교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

또 역사적 배경에 관한 의문점,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질되고 왜곡되어야 했던 이유

그리고 과연 예수는 무엇을 의미하나에 관한 Identity

 

그리곤  읽을수록 생각나는 그 것은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 그리고 유아독존(唯我獨尊)

 

줄기차게 나오는 영지주의

영지주의에 대하여 알리고자 하는가하는 의문점이 자주 들 정도.

그런데 책 표지대로 신화던 아니던 문자로서 어긋난 것이 많은것은 사실이지.

 

위키백과에 소개된 영지주의의 Dogma

 

‘영지(gnosis)’의 의미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지식같이 산만하고, 분석적이고, 추상적인 지식이라기보다는, 지성적인 이해를 넘어선 실재에 대한 통찰력을 의미한다.

신비한 영역이나 알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지식인 것이다.

영지주의의 가르침에 의하면, 신비한 영역에서 오는 신적 존재의 ‘섬광(spark)’ 또는 ‘씨앗(seed)’은 전적으로 악한 물질 세계에 주어졌다고 한다.

그 섬광들 또는 씨앗들은 인간의 몸에 갇혀 있지만 ‘신비한 지식,’ 즉 ‘영지’로 다시 일깨워진 신적 요소는 사람들을 초월적 영적 영역에서 적절한 보금자리를 갖도록 한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라고 할 때는 영지를 소유한 자들, 즉 신비한 지식을 소유한 자들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영지를 소유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그 영지를 통해 극상의 존재인 가장 거룩하고 존귀한 하느님과 연합하여 완전한 상태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에서는 그것을 구원으로 본다. 즉,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얻은 지식을 통하여 물질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하느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영지주의에서는 인간은 신성을 소유하고 있는 영혼이, 불완전한 창조자에 의해 창조된, 불완전한 육체에 갇히게 되었다고 본다.

이 불완전한 창조자를 데미우르게라고 부르며, 대개는 기독교/유대교의 하나님(하느님)과 동일시한다. 데미우르게는 악의 근원, 또는 단지 불완전한 존재라고 여긴다. 이 데미우르게는 또 다른 완전하며 선한 존재와 대비된다.

이러한 불완전한 육체의 세계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깨달은 자만이 이를 수 있는 그노시스적 앎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예수가 이러한 완전한 존재의 화신이며 영지를 이 세상에 전하기 위해 왔다고 주장한다.

영지주의는 지중해의 토속종교와 기독교가 혼합된 사상답게 지중해와 중동의 종교에서 서기 1세기에 흥행했으나, 서기 4세기에 기독교가 국교화 되자 로마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이슬람교의 확산에 의해 남아있는 영지주의자의 수는 극히 줄었으나 현재까지 내려오는 단체들이 있다. 영지주의는 19세기와 20세기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신비주의적인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어떤 단체들은 영지주의의 전통을 이어받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이렇게 나와있는데 이것만 보자면 책과의 내용에서 많이 차이를 보이는.

예수를 실존으로보면 문자주의자  그를 상징으로 보면 입문자  그를 통해 영지를 얻으면 영지주의자... 

사족을 달면 달수록 우습게 되는..

 

그저

되뇌일수록 생각나는 그 것은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그리고

유아독존(唯我獨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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