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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일 기도
이규현 지음 / 두란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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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일 기도 |이규현 지음 | 2016. 05. 23 발행.

무시로 기도한다. 길을 가면서, 청소를 하면서, 설거지를 하면서도. 하지만 제단 앞에 나아가 무릎 꿇고 목청 높여 기도하지 못하여 주님이 내 기도를 듣지 못하시는 것 아닌가 의심할 때가 있다. 사소한 기도가 즉각 응답될 때면 그것은 우연처럼 여겨지고, 오래도록 응답 받지 못한 기도 제목 앞에 서면 주님의 은총을 입지 못한 것 같아 풀이 죽는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지만 내 안에 들어 차 있는 나의 생각과 다급함이 주께 나아가는 믿음을 방해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때도 있다…. 기도하면서도 끝없이 갖게 되는 이러한 기도에 대한 의문과 갈증은 내게만 있는 것일까? 어쨌든 이런 연유로 기도란 내게 평생 해야 할 공부로 분류되는 과목이다.

이번에 두란노에서 나온 <가장 위대한 일 기도>는 수영로교회 이규현 목사의 신간이다. 기도서들이 책장 한 칸을 다 채우고 있는데도 나는 굳이 또 새로운 기도서를 펴 들었다. 세상이 성경이 한 권이듯 기도의 원리들은 매번 같다. 그러나 새 저자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성령의 음성은 늘 새로워서 말씀의 행간마다 밑줄 긋기가 시작된다.

* 하늘 문을 여는 기도의 패스워드는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이다.

* 하늘 문을 여는 능력 있는 기도의 비밀은 ‘예수의 마음을 품은’ 기도이다.

* 나의 노력만으로 성공하려 하지 말고, 기도로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을 만들어 드리라.

* 기도가 삶이 되게, 일상이 기도가 되게 하라

내 <기도에 대한 갈증은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말씀에도 새삼 위로 받고 격려 받는다. 기도서는 이렇게 내 기도의 자세를 점검하며 상처 난 믿음을 회복시켜 준다.

신앙에서 기도는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 영혼의 호흡이기에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기도의 지경이 바로 그 사람의 신앙의 지경이기도 하다. 아무리 다잡아도 살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새 자세가 흐트러지게 마련이다. 바른 기도 자세 확립과 신앙의 자가 점검이 필요할 때 이렇게 새로운 기도서를 곁에 두고 훈련하면 좋겠다. * 20160619

 

하나님은 어떤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우리의 마음에 기도를 불러일으키십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기도하고 싶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기도하라고 촉구하신 것은 암담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새 일을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먼저 기도하게 한 뒤 하나님의 일을 이뤄 가십니다. 성경을 보아도 그렇고 근대 들어 일어난 모든 부흥의 역사를 보아 도 그랬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출발점입니다. 내 안에서 이상하게 기도가 일어나고 있다면 평범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무엇인가 일을 시작하시려는 징조입니다.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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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의 A.D. 영어학습법 - 영어를 제2 모국어로 만드는
정철 지음 / 두란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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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의 A.D. 영어학습법 서평 


 영어를 제2 모국어로 만드는 정철의 A.D. 영어학습법 서평 

정철  | 두란노 | 20230607

 

 

나의 세대는 중, 고교 통합 6년간 영어를 배웠다. 요즘 어린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우니 12년을 배우는데 비해 시작이 훨씬 늦었다. 그래도 대학 기간까지 합치거나 나홀로 학습을 합치면 누구나 10년 정도는 이런저런 이유로 영어 공부를 한다. 그러나 영어 구사 능력은 말하기부터 제대로 배우고 있는 요즘의 어린 학생들만도 못하다. 그래서 영어 말하기 학습은 늘 인생의 숙제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차에 만난 반가운 책!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영어 교육에 대한 수많은 미신과 편견에 대해 먼저 알려준다.
영어는 무조건 알파벳부터 배워야 한다”, “파닉스를 해야 읽기 쓰기가 된다”,“단어를 많이 외워야 영어가 된다는 미신들. 저자는 이것이 마치 자동차의 모든 부품을 다 알아야 운전을 할 수 있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짓임을 정확히 꼬집어 지적해 준다. 아울러 영어 학습의 핵심을 A. D. 영어학습법으로 쉽고도 간단히 정리해 준다.
1) 영어와 모든 언어 학습은 문법이 아닌 듣기와 말하기 중심이어야 한다. 2) 문장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단어가 아니라 단어의 묶음 덩어리인 청크(Chunk, 묶음)이다. 그러므로 단어를 외우지 말고 청크로 학습하라. 3) 언어를 익히는 데는 리듬이 중요하다. 리듬을 익히기 위해 원어민의 발음을 들으며 연습하라. 4) 영어 습득의 가장 좋은 교과서는 영어성경이다. 5) 청크에 맞춰 제작된 삽화를 보며 영어성경을 암송하면 훨씬 효율적이다.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언어로 민족을 흩어지게도, 합치게도 하신 하나님의 방법에 근거해 저자가 성령님께 구한 지혜와 기도로 개발한 것이 A. D. 영어학습법이다. 이것은 문장을 청크 단위로 이해하고 발음하며, 영어 스토리와 성경 삽화로 쉽게 영어를 암송하는 것이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구할 때 방언을 받아 복음 전파를 했던 예수의 제자들처럼, 이 책을 통해 영어와 기도의 말문이 트인 사람은 분명 세계적인 리더가 될 것이다.
이 책이 각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영어 따로, 성경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일거양득, 아니 영어 성경 공부를 통해 주님과 대화하고 기도하며 동행할 수 있으니 영어 학습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단 한 가지, 스스로 학습도 좋지만 언어는 혼자하기보다 순모임처럼 서로 기도하며 서로의 학습을 격려하고 체크해 줄 수 있는 학습동아리가 있다면 중도에 포기하거나 지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는 성공적인 영어 학습이 될 것이다. *

 

밑줄 긋기

A.D. 학습법의 원리를 이해하고 나면, B.C. 학습법으로 가르치는 학원에서 흔히 말하는 레벨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일반적으로 be동사나 간단한 단문 위주의 문장들이 나오면 레벨이 낮다라고 하고, 또 접속사, 관계사 등이 들어 있는 문장들이 들어 있으면 레벨이 높다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B.C. 학습법의 문법 선생들이나 하는 소리일 뿐, 그냥 청크 단위로 원어민과 똑같이 발음하는 것만 목표로 연습하면 어린이들은 재미있게 잘 따라 한다. 마치 이유식을 먹는 유아들이 내용물의 성분이 어떻든 상관없이, 맛있으면 그냥 냠냠 받아먹는 것과 같다.
굳이 레벨을 나누라고 하면, 그 내용이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우면 낮은 레벨, 어려우면 높은 레벨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우리말로 내용을 듣고 이해할 수 있으면, 아이들이 충분히 따라할 수 있는 레벨이 된다.
함께 그림을 보면서 먼저 내용을 충분히 이해한 뒤, 원어민의 소리를 들으면서 그 리듬과 소리에 익숙하게 하면, 아이들은 쉽게 따라온다.
이미 충분히 발달되어 있는 청취, 기억, 발성 기능과 자연적 습득장치, LAD의 도움으로 거의 원어민과 흡사할 정도로 발음을 익힐 수가 있다. -p.133

 


A.D. 학습법의 원리를 이해하고 나면, B.C. 학습법으로 가르치는 학원에서 흔히 말하는 레벨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일반적으로 be동사나 간단한 단문 위주의 문장들이 나오면 ‘레벨이 낮다’라고 하고, 또 접속사, 관계사 등이 들어 있는 문장들이 들어 있으면 ‘레벨이 높다’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B.C. 학습법의 문법 선생들이나 하는 소리일 뿐, 그냥 청크 단위로 원어민과 똑같이 발음하는 것만 목표로 연습하면 어린이들은 재미있게 잘 따라 한다. 마치 이유식을 먹는 유아들이 내용물의 성분이 어떻든 상관없이, 맛있으면 그냥 냠냠 받아먹는 것과 같다.
굳이 레벨을 나누라고 하면, 그 내용이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우면 낮은 레벨, 어려우면 높은 레벨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우리말로 내용을 듣고 이해할 수 있으면, 아이들이 충분히 따라할 수 있는 레벨이 된다.
함께 그림을 보면서 먼저 내용을 충분히 이해한 뒤, 원어민의 소리를 들으면서 그 리듬과 소리에 익숙하게 하면, 아이들은 쉽게 따라온다.
이미 충분히 발달되어 있는 청취, 기억, 발성 기능과 자연적 습득장치, LAD의 도움으로 거의 원어민과 흡사할 정도로 발음을 익힐 수가 있다.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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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어떻게 쓸까요? - 그리스도인의 돈을 다스리는 태도
임은미 지음 / 두란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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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어떻게 쓸까요? 서평

 

코로나 시대를 살다보니 바깥 활동은 줄었지만 골방에서 말씀을 들으며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은 더 많아졌다. 유튜브 예배를 통해 말씀을 들으며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 임은미 선교사도 그렇게 유튜브 예배를 드리며 먼저 알게 되었다. 임은미 선교사의 첫인상은,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거침없고 명랑한 성품을 통해 발현하는 멋진 여장부였다. 모델 출신 남편과의 첫 사랑과 결혼, 주님이 생각지도 않은 놀라운 방법으로 집을 사게 해 주신 스토리 등 그녀의 간증엔 청중을 쏙 빠져들게 하는 매력과 은혜가 넘쳤다. 지금은 또 어떤 은혜 속에 신나게 살고 계실까, 근황이 궁금하던 터에 두란노에서 나온 저자의 신간을 만났다.

책을 펼쳐하나님, 어떻게 쓸까요?을 읽으며, 임은미 선교사가 물질에 대한 욕심 없이 가진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남편 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 신분, 선교사 신분에 따르는 궁핍한 결혼생활에서도 하나님께 십일조를 초월하는 헌금을 드리자고 먼저 제안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실인을 주님은 임은미 선교사에게 주셨나 보다. 태초부터 하나님께 선택된 사람이란 바로 임은미 선교사의 남편처럼 외적으로나 영적으로도 구별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지? 모델 출신의 아름다운 남자가 영적으로도 그렇게 완벽하다니! 그래서 선교사님이 아무리 거룩해도 그건 거의 다 남편 잘 만난 덕이잖아요?’ 하고 부러움에 찬 속말을 건네며 책장을 넘겼다.

임은미 선교사는 십일조를 넘어서는 십의 2, 십의 5, 6은 물론 버는 것 모두를 주님께 드리는 생활을 한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실제임을 확신하도록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나눔 실습을 지도해 기적을 직접 체험하도록 훈련시킨다. 그러니 남편 잘 만난 덕이라는 내 생각이 틀린 건 아니지만, 임은미 선교사 역시 아름다운 남편에게 걸 맞는 완벽한 아내 같다.

자신이 낳은 아이는 하나지만 가슴으로 낳은 아프리카 자녀까지 모두 일곱 명의 자녀를 둔 엄마 임은미 선교사. 아이들이 달콤한 목소리로 사랑한다고 속삭일 때면, 내가 너를 향해 속으로 쏟아 부은 짜증을 네가 안다면 아마 기절할 거야, 하며 솔직하고 수다스럽게 자신의 속을 쏟아놓는 사랑스런 선교사님! 이미 이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그녀의 팬이니 집회에서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일상적인 이야기에 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목차는 레스토랑으로 치면 맛있는 음식의 메뉴판. 이 책의 스토리가 얼마나 맛깔스런 영혼의 양식인지 보여준다.

 

프롤로그 : 어떻게 내 통장에는 항상 돈이 있을까?

-1 맘몬의 가랑비를 피할 처마를 내주시다

가난의 기억 : 검댕과 복숭아
첫 번째 처마 : 배운 대로 실천한 십일조
두 번째 처마 : 의지로 선택한 십이조
2 맘몬과 맞설 무기를 주시다
첫 번째 무기 : 기도
두 번째 무기 : 신뢰
세 번째 무기 : 감사
3 맘몬을 다스리게 하시다
4 나는 자유롭다
개미 후원자들이 천국을 건설한다
5 하나님께 배운 대로 흘려보내는 삶

 

큰 제목, 소제목들이 맛깔스럽다. 이 책은 재정에 대한 이야기지만 일상적인 이야기이다. 논술처럼 딱딱하지 않고 술술 읽히는 수필이다. 읽다보면 은혜가 쌓인다. (돈이 쌓이는 방법도 알게 된다.)
요즘 청년들은 영혼까지 끌어 모아 집을 사거나 주식을 산다. 그 과정에서 영끌이란 신조어까지 생겼다. 그런데 집값은 정권과 정책이 바뀔 때마다 변화가 생기고 주식 역시 세계 경제시장을 따라 변화무쌍하다. 서로 다 같이 잘되면 좋겠지만, 기업의 경제가 날개도 없이 추락할 때, 영혼까지 끌어 모아 투자한 영끌족은 영혼의 나락으로 빠지는 경험을 한다.

그래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세상과 다른 모습의 영끌을 추구해야 한다. 영혼까지 끌어 모아 새벽을 깨우는 일이다. 임은미 선교사의 대표적인 일상, 바로 새벽기도이다. 그녀는 매일 새벽 4시의 말씀 묵상과 기도로 주님의 인도함을 받는다. 영적 거장들이 거장의 모습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비결은 바로 하루의 첫 시간을 주님께 드리며 자신을 주님 앞에 내어놓는 삶의 예배에 있음을 본다. 책장을 넘기며 은혜 받은 구절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돈을 쓰는 대상이나 영역을 살펴보아야 한다. 십일조 헌금 봉투 외에 다른 사람들을 돕는 십이조의 봉투가 있는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기쁘게 하는 데 쓰는 또 다른 봉투가 있는가? 봉투를 두둑하게 채우는 액수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이다. - p.38

 

내가 가진 입출금 통장 중에는 기부금으로 명시된 통장이 하나 있다. 수시로 조금씩 들어오는 돈을 언제든 흘려보내야 할 일이 있을 때 보내려고 준비한 통장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 통장의 쓰임과 하나님이 주실 은혜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작은 것을 드려도 하나님은 결코 작게 받지 않으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 주시고 더욱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시는 은혜를 확신하게 되어서다.

 

친히 재정 훈련을 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려면, 대화의 통로인 기도는 필수다. 기도라고 하면 대개 하나님께 이것저것 청하는 간구부터 떠올리는데. 맘몬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대적 기도라는 무기를 반드시 손에 쥐어야 한다. 돈에 대한 걱정이나 돈으로 생길 만한 여러 부정적인 감정을 대적 기도로 모조리 물리쳐야 하기 때문이다. -p.49


목소리 높여 대적기도하기!~ 돈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걱정이나 부정적인 감정에도 대적기도는 필수이다. 마귀를 물리치는 대적기도의 유익은 마귀를 물리칠 뿐만 아니라 심약한 내가 듣고 주님의 영적 힘을 공급받아 담대함을 얻게 되는 데 있을 터.

세 번째 강력한 무기는 주님을 향한 신뢰다. 우리는 앞날을 모르지만 주님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리라는 것은 믿음으로 알 수 있다. 이 단순한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큰 힘을 준다. 맘몬으로 상징되는 돈의 위력에 눌리거나 휘둘리지 않고, 돈을 다스릴 수 있는 비결은 일련의 훈련 과정을 통해 주님이 주시는 무기를 장착해 나가는 것이다. - p.64

 

사람들이 불안할 때는 주님을 향한 신뢰를 잃었을 때이다. 믿음이 흔들린다는 말은 곧 주님을 향한 신뢰가 흔들린다는 뜻이다. 말씀과 기도로 무기를 장착하는 훈련 과정을 매일 반복하자. 그래서 내가 믿음과 신뢰를 잃었을 때에도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운행하시게 하자.

그날 나는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의 참담한 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가난한 이웃을 위해 더욱더 힘쓰게 되었고, 도저히 줄 것이 없을 때는 손을 맞잡고 기도해 주기라도 했다. 기도의 온기라도 손에 쥐여 보내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백성의 헛헛한 마음을 맘몬이 비집고 들어가 점령하지 않도록 말이다. - p.75~76


주안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 줄 것이 없는 사람은 없다.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요의 주인이신 주님 안에서 우리는 풍요롭고 기도는 이루어진다. 기도의 온기와 사랑이 사람을 살리고, 마침내 함께 주님을 바라보게 한다.

 

1010조 이상을 드리고 나서 내가 얻은 유익은 30, 60, 100배의 이자가 아니라 그만큼의 여유였다. 즉 날이 갈수록 원하는 것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딱히 원하는 것이 없다 보니 삶이 단순해졌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세상에서 모든 것을 가진 자와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수입이 생기는 족족 기쁜 마음으로 베풀었더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이처럼 자유롭고 부요한 느낌이 또 있을까? 하나님께 백지 수표라도 받은 기분이다. - p.93~94


지난 주 울교회 방송 주제가 나에게 택배가 온다면이었다. 나에게 택배가 온다면 나도 백지수표를 받고 싶다. 쓰고 싶은 액수를 마음껏 써서, 마음껏 나누고 싶다. 내가 다닌 학교의 모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다. 성적을 잘 받은 학생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나 받는 장학금으로 차별 없이 골고루, 학생들에게 학창시절 최고의 즐거운 기억을 선사하고 싶다. 그 백지 수표가 주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밝히고, 세상에서 모든 부요함을 가진 거부와 다를 바가 없는 삶이 바로 예수를 만난 영혼의 삶임을 증거하고 싶다.


제게 허락하신 재정들을 어디에 어떻게 누구에게 언제 사용하면 주님이 가장 기뻐하실까요? 재정이 들어오는 것도 중요하고 감사한 일이지만, 들어온 재정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는 더더욱 중요한 것 같습니다. 주님이 주신 재정들을 주님의 시간에 주님의 방법으로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사역에 잘 사용하도록 지혜를 간구합니다! - p.107

 

부지런히 간구해야할 기도 제목. 주님이 주신 재정과 재능을 주님의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 그래서 주님께 쓰임 받는 자녀 되는 것.

자기 돈을 남에게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아깝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경지에 이르기까지 훈련을 거듭하지 않았겠는가? 과연 자신이 돈에 매인 것이 아닌 돈을 다스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를 알려면, 다른 이들을 위해 돈을 사용하는 자세를 보면 된다. 그 척도는 감사하는 마음이다. - p.111.

 

상대에게 무언가를 나누어주면서 감사를 받기보다 오히려 감사한다면 그런 이야말로 주님의 사람이다. 감사 없이 억지로 하는 선행, 대가를 바라고 하는 선행은 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겠다. 받는 이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 되니까.

 

하나님의 선대하심을 경험하려면 두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선한 자가 되고, “마음이 정직한 자가 되어야 한다. 크건 작건 내게 돈이 들어오면, 나라는 통로를 통해 내보내는 것이다. 돈은 참된 가치로 잘 사용할 줄 아느냐가 중요하다. 돈을 잘 쓰기 위해 버는 것처럼, 재정에 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갖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 p.150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돈을 모은다. 자신과 핏줄로 연결된 자기 가족 외엔 돈을 쓰지 않는 사람도 많다.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그러한 자세도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재정의 더 큰 목적은 돈을 잘 쓰기 위해 버는 것임을 명심하자. 하나님이 허락하신 물질을 잘 씀으로써 나는 물론 내 주변사람들도 더불어 행복하고 풍요로워진다.
이 책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재정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때 부자와 빈자가 다 함께 누릴 수 있는 영적, 일상의 부요에 대한 설명서이다. 중요한 것은, 영적 풍요만을 강요하며 육신의 고픈 배를 위로하는 식의 설교가 아니라는 점이다. 임은미 선교사가 일러주는 나눔의 실제는 함께 육신의 배를 풍요롭게 채우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이 시대에도 드러나는 실제임을 선명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이 책은 하나님이 주신 재정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싶은 이들에게 선물 같은 필독서이다. 저자는, 우리가 돈을 어떻게 쓸까요?’ 하고 주님께 하는 질문은 곧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음을 고백하는 것이며, 그러기에 주님이 주신 재정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까요? 하는 물음과 같은 말이라고 일러준다. 주님의 기뻐하심을 따라 살기를 소망하는 모든 이들의 품으로 이 책도 함께 흘러들어가기를, 그래서더욱 큰 기쁨과 은혜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기도한다. *20220825

하나님의 선대하심을 경험하려면 두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즉 "선한 자"가 되고, "마음이 정직한 자"가 되어야 한다. 크건 작건 내게 돈이 들어오면, 나라는 통로를 통해 내보내는 것이다. 돈은 참된 가치로 잘 사용할 줄 아느냐가 중요하다. 돈을 잘 쓰기 위해 버는 것처럼, 재정에 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갖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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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라는 병 - 우리 시대의 영원한 스승, 김형석 교수의 명고전
김형석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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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우리 시대의 영원한 스승 - 김형석 교수의 명고전 고독이라는 병 ] 서평

김형석 저 | 비전과리더십 | 20220706

 

언제부턴가 우리는 아버지가 부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가부장제에서 절대자처럼 군림해온 아버지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뜻이다. 지나치게 여성의 희생을 강요해 온 체제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사라졌다는 것은 가족관계가 민주적이고 평등해졌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이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관계망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부정적인 신호탄으로도 해석되었다. 스승의 권위 역시 추락한 지 오래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없는 시대, 스승이, 나라에 참다운 지도자가 없는 시대에 대한 인식은 오래 전부터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화두가 되었다.

이런 때 반가운 책 한 권이 우리에게로 왔다. 호수의 잔잔한 파문처럼 나직나직한 음성으로 아버지가 없는 시대의 고아들을 향하여 다정한 아버지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스승, 그는 100세의 명강사로, 작가로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형석 교수이다.

앞서 김형석 교수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감동 깊게 읽었기에 60년 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베스트셀러를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작가는 독실한 크리스천 철학가로서 고독이라는 병을 어떻게 진단하고 치유하며 살아왔을까,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형석 교수는 스스로 고독을 치유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편으로 글을 썼다. 일상 체험을 담은 스토리에 학자의 철학을 담아 고아 의식으로 세상과 맞선 이들에게 지혜와 위로를 건네 준다. 스토리를 전하는 그의 문장은 현학적이지 않고 쉽고 간결하며 다정하고 다감한 아버지의 음성이다.

 

지금은 내 나이 100세가 넘었다. 내 인생을 접어야 할 때가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이 아니고, 내가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날 준비를 한다. 나 혼자의 길을 떠나야 한다. 시간은 끝나지만 영원이 있고, 힘든 여정이었으나 사랑이 있었기에 고아가 아니라는 다짐을 한다. -서문

 

이 세상 하직을 앞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서 금방 눈물이 날 것 같다. ‘힘든 여정이었으나 사랑이 있었기에 고아가 아니라는 다짐을 한다’ -저자의 말이 고스란히 독자의 가슴으로 들어온다. 그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듯 이렇게 말하지만 그것은 곧 너희도 사랑하며 살아라, 그리하면 외롭지 않을 거야, 하는 간곡한 조언임을 나는 안다. ‘고독이라는 병에서 치유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사랑하는 것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그리하셨듯이 외로운 나그네 인생들이 서로 용기 있게 사랑하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책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발췌한 문장의 감상을 피력해 보면 다음과 같다.

 


땅 위의 길을 가는 모든 사람에게는 떠나온 목적과 이유가 있다. 그러나 누구도 인생의 길을 떠난 우리에게 그 출발의 목적과 삶의 이유를 말해 준 바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길을 걸어 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며 인생 그 자체가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의 길을 여러 사람에게 물었다. 그 해답을 위해 예술이, 철학이, 종교가 나타났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여전히 묻고 있다. ‘인생의 길은 무엇이며 장차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고. ‘죽음이 인생길의 끝인가라고. ‘민족과 인류는 어떠한 방향과 이념을 가져야 하는 가라고. 모든 인간은 이렇게 묻는 과정 중에, 또 찾아가는 도중에 자신의 인생길을 끝낸다. 나는 앞으로 어떠한 길을 택하여 인생의 참됨을 얻을 것인가. 그리스도는 일찍이 그 길을 묻는 제자들에게 내가 곧 길이라 고 말씀하셨다. 우리 인간이 그의 말씀을 참으로 이해할 수만 있다 면 얼마나 좋으랴. -p.17

 

 

 

내가 곧 길이요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에 온 인생의 의문을 풀 수 있다는 암시를 행간에 담고 있다. 기독교 문학이 불신자 가득한 이 세상 속으로 들어갈 때는 십자가를 높이 든 거리의 떠들썩한 광경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보일락말락 성경을 품고 걷는 이의 옷자락과 그가 걷는 좁은 길, 오솔길의 잔잔한 들꽃을 비추어주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우회도로를 향하지 않으면서도 십자가를 품고 걷는 이의 품위 있는 모습을 보든 듯하다



우리는 때때로 이름 모를 고독에 붙잡히곤 한다. 이러한 고독은 그 어떤 사람을 만나서 풀고 싶은 고독이다. 그러나 더욱 불행한 사실은 그때 찾아가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쓸쓸함이다. 찾아가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가 직업화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에게서 또 들어야 하는 정치·사회·교육·문학·학문들이 우리의 피곤한 심정을 풀어 줄 수도 없을 뿐더러 더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직업화 되지 않은 인간, 본래의 인간, 모든 직업의식을 깊이 숨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원만해지고 풍부해진 인간이 참으로 그립다. --- p. 24

 

직업화 되지 않은 인간, 본래의 인간을 찾아 헨리 나우웬은 하버드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정신 지체아들의 공동체에 스며들 수 있었던 걸까? 젊었을 땐 누구나 자신이 선망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 이름난 사람을 동경한다. 어린 날의 나도 그랬다. 지금은 이름난 작가나 스승보다 격식 차리지 않고 민낯으로 만나 가벼이 수다 떨 수 있는 소박한 이웃들이 좋다. 작은 공동체 속에 모나지 않게 스며들어 살아온 연륜만큼의 인정을 나누며 더불어 살고 싶다



산책을 위한 산책은 목적지가 없고 사학자 같은 관찰도 필요 없다. 산이면 어떤 산이든 좋고, 이름을 모르는 산이면 더욱 좋다. 구태여 꽃 이름을 묻지 않고 어떤 새의 노래인지 구별하지 않는다. 그렇게 종점에 도달하면 나는 나무가 없는 잔디밭에 눕곤 한다. 지금까지는 길이 내 발을 이끌어 주었으나 이제는 하늘과 구름이 내 마음을 평화로 이끌어 간다. 그 빈 마음에 빈 하늘을 담는다. 시선은 하늘 끝까지를 바라본다. 구름은 빈 하늘에 손님인 양 움직이고 용모를 바꾸며 흘러간다. -p.29

 



내가 아이였을 땐 개울가에 발을 늘어뜨리고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멀리 이방의 소녀가 되는 상상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막상 이방의 소녀가 되니 고향 친구들이 그리워 눈물이 났다. 자연의 숲은 어디나 고향 같다. 지금 나는 자연이 수려한 고장, 산 숲에 깃들어 살며 종종 숲을 산책한다. 숲 걷기를 하며 예수님과 대화한다. 무시로 기도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산책 기도할 때이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여행은 동네 산책인데 모든 여행이 그렇듯 짧은 동네 산책의 최종 목적지는 집으로 돌아오는 것. 산책 나선 길 위에서 영원의 집을 향한 기도를 올리고 이 세상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인생의 석양을 맞이하며 삶의 황혼기를 대하게 될 때 우리는 자신 있게 인생의 고아가 되지 않을 수 있는가. 사라지는 삶의 걷잡을 수 없는 그림자를 더듬지 않고 확신 있게 새로운 저편 세계에의 소망을 소유할 수 있을까. 모든 인간이 그리워할 고향을 떠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삶이라는 나그네의 길을 떠나온 이 있다면, 우리의 참다운 생의 고향은 반드시 약속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p.43

 


강단의 설교자가 아니어도 우리는 누구나 이렇게 나직한 목소리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글쓰기를 통해서이다.



올바른 인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되기 전에 먼저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생각한다. 오히려 가치 있고 보람 있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복이나 불행을 돌보지 않는 것이 참다운 인간이며, 진정한 행복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본다면 행복을 위해 산 사람 중에는 위대한 사람이 없으나 가치 있고 보람 있게 살려고 애쓴 사람 중에는 수없이 많은 위인이 있다. 돼지의 행복보다 사람의 불행이 더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나는 인생의 가치와 빛을 위하여 자기의 불행과 고통을 스스로 감당한 숨어 있는 많은 사람을 알고 있고 또 보아 왔다. -p.55


 

나는 불행하지 않지만 감정에 기대어 보면 행복한 것도 아니라고 늘 생각해왔다. 행복과 불행의 중간쯤에 서 있을 다행이 내 자리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나는 가치 있는사상과 가치 있는 일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 그러기에 행복하지 않아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있다. 그렇다면 다행을 넘어서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도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밤이다. 개구리 소리가 천지에 가득 찼다. 그 소리를 들으며 등불 아래 펜을 들고 있는 내 가슴은 새로운 꿈으로 채워지고 있다. 내 귀에 누군가가 속삭이는 것 같다. “나가자, 저 소리를 들으러. 대지의 한가운데 서서 생명으로 채워진 우주의 멜로디를 들으러 가자.”-p.88

 


노 교수의 삶에 대한 혜안과 통찰이 어디서 왔을까? 그것은 자연으로부터 왔다고 읽을 수 있는 구절이다. 철학의 문은 광범위한 독서와 배움과 지식으로 열지만 어느 한 곳으로 치우지지 않는 바른 사상가가 되기 위해 자연 사랑은 필수인 것이다. 자연 속에 있으면 우리는 우주의 고아로 이 땅에 홀로 추방된 존재가 아님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의 창작품인 자연은 보이지 않는 주님의 숨결로 속삭이며 우리를 위로하는 거대한 책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상념가 파스칼은 그는 강 건`너편에 살고 있었다라는 말을 했다. 갑이 을을 몽둥이로 때려죽이고 있다. 을이 너는 왜 나를 아무 이유도 없이 때려죽이는가?”라고 물었다. 그에 대해 갑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네가 만일 강 이편에 살고 있었더라면 나는 너를 죽이는 것이 악이며 살인죄가 된다. 그러나 너는 강 저편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내가 너를 죽이면 나는 용사가 되고 애국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를 죽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강이란 무엇인가? 정치가 말하는 정의의 선()이다. 옛날부터 그 강은 국경선이었고 오늘날 삼팔선이 하나 더 추가된 것이다. 정의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 모스크바에 사는가, 워싱턴에 사는가에 있다. 평양에 사는가, 서울에 사는가에 있다. 자연은 아직까지 한 번도 지구에 줄을 그은 일이 없다. 오히려 인간이 만든 줄들을 여러 차례 지워 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평생토록 줄을 긋고 있다. 마치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기나 한 듯이! “이처럼 인간이 그어 놓은 선들이 없는 곳이 존재하기 위해서라도 내세는 있어야 해!”라고 중얼거리는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떨어졌다. 지금은 생사를 알지 못하는 부친의 얼굴이 나타났고, 그렇게 남쪽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죽음의 길을 택해야 했던 동생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꿈이 아니다.- p.225~226

 



여기에서 김형석 교수가 말하고 싶은 것은, 프랑스 파스칼의 일화가 아니라 우리나라, 김형석의 올곧은 한 마디인데 그것을 에둘러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김형석 교수가 이 책을 쓰고 출간한 시대는 유난히 검열이 심했던 시대이다. 많은 학자와 작가들이 말 한 마디, 글 한 줄의 검열에 걸려 억울한 옥살이를 당하고 반동으로 몰려 목숨을 잃기까지 했던 시대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과 부조리들을 직접화법으로 전하지 못하고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6.25와 일제강점기를 겪은 세대에게 있어서 굴곡진 우리나라 역사는 세월 따라 멀어져간 시간의 뒤안길이 아니라 지금 바로 눈앞에 생생한 현재진행형의 사건이다. 이북에 가족을 두고 온 실향민들에겐 특히 그렇다. 김 교수 역시 아버지와 동생들을 이북에 두고 온 실향민인데 이 책의 첫 출간본이 나오고 6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조국 통일의 꿈은 아득하기만 하니문장의 행간마다 아프게 스며있는 노 교수의 눈물이 내 가슴으로 떨어진다. 지금도 인간의 욕망이 만든 선 하나, 한낱 이념 때문에 전쟁 난민이 생겨나고 고귀한 생명들이 하루아침의 이슬로 사라지는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가 먼 나라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나 혼자만의 길을 떠나야 한다. 시간은 끝나지만 영원이 있고, 힘든 여정이었으나 사랑이 있었기에 고아가 아니라는 다짐을 한다. -서문

 

60년 전에 나와 60만 판매부수를 기록했다는 이 책의 가치는 저마다 홀로 가는 고독한 인생의 치유법으로 사랑의 실천을 제시한 점에 있다. , 누구나 기억해 두어야할 결론은 이것이다.-사랑이 있는 삶은 외롭지 않다는 것! 노교수가 이 책을 통해 가리켜 보이는 사랑은 인간에 대한 사랑은 물론, 자연 사랑과 인문학 독서와 신에 대한 사랑이 일치됨으로써 더욱 증폭될 수 있는 실천적 사랑이다. 하나님이 주신 이 세상 무대에서 자신과 삶을, 자연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길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20220729

 

 

 

 


 

 

지금은 내 나이 100세가 넘었다. 내 인생을 접어야 할 때가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이 아니고, 내가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날 준비를 한다. 나 혼자의 길을 떠나야 한다. 시간은 끝나지만 영원이 있고, 힘든 여정이었으나 사랑이 있었기에 ‘고아’가 아니라는 다짐을 한다.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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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삶 - 타인의 눈으로 새로운 세계를 보는 독서의 즐거움
C. S. 루이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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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 읽는 삶]에 빠지다 

 

 책 읽는 삶 타인의 눈으로 새로운 세계를 보는 독서의 즐거움

C. S. 루이스 저/윤종석 역 |두란노 |20210714|원제 : The Reading Life

 

이 책은 세계적인 걸작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 S. 루이스의 저작으로 독서 활동에 대한 조언과 견해를 담은 책이다. 루이스는 열 살 때 밀턴의 <<실낙원>>을 읽고, 열한 살 때부터는 편지에 성경과 셰익스피어의 작품 구절을 인용해서 적기 시작했다니, 요즘 말로 하면 독서 영재, 문학 천재였다.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매일 하루의 3분의 1을 독서에 몰두하며 평생을 독서의 증인으로 살았다. 작가로, 학자로 왕성한 저작 활동을 펼치며나니아 연대기』『스크루테이프의 편지』『순전한 기독교등의 고전을 인류에게 선사했다. 이 책은 고전이 된 루이스의 저서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에세이, 편지 등에서 삶의 변화를 낳는 독서에 대한 글만 엄선하여 엮은 책이다.

먼저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반가운 소제목들이 눈에 띈다. 그것은 동화문학에 대한 견해이다. ‘동화, 아이들만의 책이 아니다 / 동화, 현실 세계에 새로운 차원의 깊이를 더하다 / 이야기에서 기현상이 담당하는 역할/ 동화가 안겨 준 뜻밖의 선물등에서 루이스는 성장의 의미와 동화문학에 대한 탁월한 견해를 피력한다.

 

 


 

미성숙이란 옛것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새것을 습득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지금의 나는 백포도주를 즐기지만, 어릴 적에는 당연히 그래서는 안 됐다. 그런데 레몬스쿼시는 여전히 좋아한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성장이나 발육이다. 전에는 즐기는 것이 하나뿐이었는데 이제 둘이 됨으로써 내가 더 풍요로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먼저 레몬스쿼시에 입맛을 잃어야만 백포도주 맛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그냥 변화다. 지금의 나는 동화 못지 않게 톨스토이와 제인 오스틴과 앤서니 트롤럽의 소설도 즐겨 읽는다. 이 또한 성장이다. 소설을 얻기 위해 동화를 잃어야만 했다면, 나는 성장했다고 할 수 없고 그저 달라졌을 뿐이다. 나무는 나이테가 늘면서 자라지만, 한 역을 떠나 다음 역으로 칙칙폭폭 달리는 기차는 자라지 않는다. 실제로 이 논거는 이보다 더 탄탄하고 복잡하다.

지금의 나는 동화를 읽을 때도 소설을 읽을 때만큼이나 확연히 성장해 있다. 어릴 적보다 지금 동화를 더 잘 즐기기 때문이다.설령 아동문학의 취향은 그대로인 채로 거기에 성인 문학의 취향이 더해지기만 했다 해도, 그 확장만으로도 성장이라 불릴 자격은 충분하다. 반면에 단순히 보따리 하나를 내려놓고 다른 하나를 잡는 과정은 성장에 해당하지 않는다. ---31.

 

 


바야흐로 평생교육 시대이다. 사람들은 평생학습으로 지속적인 자아발전을 꿈꾸지만 스스로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독서조차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할지 모르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 이들에게 루이스의 위 문장을 들려주고 싶다. 모든 중요한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단, 던 어느 책 제목처럼 인간의 성장에 필요한 대부분의 자양제가 동화에 들어있다. 그러므로 동화로 자아 성숙의 꿈을 이뤄보라고 말하고 싶다.

루이스는 좋아하는 책은 10년마다 다시 읽어야 한다.’며 책이 곧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임을 깨닫던 어린 날의 희열로 이 책을 읽는 이의 영혼을 두드린다. 그는 자신이 책을 접한 어린 날의 경험과 기쁨을 고스란히 전하며 독자들을 책상 앞으로 달려가 앉고 싶게 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이론과 문장을 외워두고 싶을 정도로 감동 받았다.

그는 문체에 대해문체는 주어진 생각을 가장 아름다운 단어와 운율로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정의했다. 수십 년 문학 동네 언저리에 살며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이론들을 루이스는 그만의 방식인 서정적이고 지적인 문체와 해박한 지식과 바른 견해로 다음 장을 기다리게 한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이 한 권의 책을 완독했다. 바쁜 와중에도 이 책을 대할 때면 연필을 들고 밑줄 그으며 독서의 기쁨에 젖었다. 읽어도 읽어도 맛나는 책! 책장을 넘길 때마다 20세기의 영적, 지적 거장과 마주앉아 담소하는 기쁨이 깊어졌다.

다 읽고 나니 이처럼 좋은 책, 이처럼 훌륭한 스승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싶다. 두란노 책들이 다 훌륭하고 은혜롭지만 특별히 더 자랑하고 싶은 이 책을 내 마음은 벌써 올해의 추천도서로 꼽아 두었다. 이제 루이스의 저서들을 한 권 한 권 찾아 읽으며 다시 기쁨의 축배를 들 과제들이 생겼다.

 

 

 

밑줄 긋기

 

독서에 열심인 사람들이 함께 모이면 거기서 공동체가 생겨난다.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세계가 넓어지고 깊어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독특한 단체다. --11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확장하려 애쓴다. 나 이상이 되기를 원한다. --16

 

사랑할 때 우리는 자아를 벗어나 타인 안에 들어간다. -17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아를 지키고 더 강화하려는 일차적 충동이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아를 벗어버리고 그 편협성을 바로잡아 외로움을 치유하려는 이차적 충동도 함께 갖고 있다. 바로 사랑, 덕행, 지식 추구, 예술 감상 등을 통해서 우리는 이 일을 한다. 이 과정은 자아의 확장이나 자아의 일시적 소멸로 표현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오래된 역설이다.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신념 속에 즐거이 들어간다. -또 우리는 타인의 상상 속에도 들어간다. 그 상상이 전혀 현실성이 없어 보이더라도 말이다. --18

 

문학적 경험은 개성이라는 특권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 개성이 입은 상처를 치유해 준다. 훌륭한 문학을 읽으면 나는 천의 인물이 되면서도 여전히 나로 남아있다. 그리스 시에 나오는 밤하늘처럼 나는 무수한 눈으로 보지만, 보는 주체는 여전히 나다. 예배할 때나 사랑할 때, 또 도덕적 행위를 할 때나 지식을 얻는 순간처럼, 독서를 통해서도 나는 나를 초월하되 이때처럼 나다운 때는 없다. -22

 

 

미성숙이란 옛것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새것을 습득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지금의 나는 백포도주를 즐기지만, 어릴 적에는 당연히 그래서는 안 됐다. 그런데 레몬스쿼시는 여전히 좋아한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성장이나 발육이다. 전에는 즐기는 것이 하나뿐이었는데 이제 둘이 됨으로써 내가 더 풍요로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먼저 레몬스쿼시에 입맛을 잃어야만 백포도주 맛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그냥 변화다. 지금의 나는 동화 못지 않게 톨스토이와 제인 오스틴과 앤서니 트롤럽의 소설도 즐겨 읽는다. 이 또한 성장이다. 소설을 얻기 위해 동화를 잃어야만 했다면, 나는 성장했다고 할 수 없고 그저 달라졌을 뿐이다. 나무는 나이테가 늘면서 자라지만, 한 역을 떠나 다음 역으로 칙칙폭폭 달리는 기차는 자라지 않는다. 실제로 이 논거는 이보다 더 탄탄하고 복잡하다.

지금의 나는 동화를 읽을 때도 소설을 읽을 때만큼이나 확연히 성장해 있다. 어릴 적보다 지금 동화를 더 잘 즐기기 때문이다.설령 아동문학의 취향은 그대로인 채로 거기에 성인 문학의 취향이 더해지기만 했다 해도, 그 확장만으로도 성장이라 불릴 자격은 충분하다. 반면에 단순히 보따리 하나를 내려놓고 다른 하나를 잡는 과정은 성장에 해당하지 않는다. ---31

 

거의 모든 시대와 지역에서 동화 장르는 특별히 어린이를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며 어린이만 즐기지도 않았다. 동화는 문학계에서 유행이 지나면서 아이들 방으로 옮겨갔다. 빅토리아 시대 주택에서 유행이 지난 가구가 아이들 방으로 옮겨 간 것처럼 말이다. -33

 

문학은 폭압적인 일반화와 슬로건에서 우리를 구원해 준다. 예컨대 문학도는 군국주의라는 단어 이면에 숨어 있는 다양한 실상을 안다. -39

동화 나라는 손닿지 않을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아련한 의식을 자극하면서 아이를 동요시키며(평생 풍요롭게 해 준다), 현실 세계에 무디어지거나 눈감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현실 세계에 새로운 차원의 깊이를 더해 준다. 아이가 마법의 숲 이야기를 읽었다 해서 진짜 숲을 멸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독서 덕분에 모든 진짜 숲에 약간의 마법이 걸린다. 이것은 특별한 동경이다.

앞서 말한 부류의 학교 소설을 읽는 아이는 성공을 갈망하지만 (책이 끝나면) 불행하다. 자기는 그 성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화를 읽는 아이는 갈망한다는 사실 자체로 행복하다. 대개 사실주의 소설에서와는 달리, 생각이 자신에게 집중되지 않기 때문이다. -44

좋은 이야기에 나오는 기현상은 비록 허구이긴 하지만, 내러티브에 감동을 더하려고 그저 아무렇게나 갖다 붙인 것은 아니다. ……동화의 논리도 사실주의 소설만큼이나 엄중하다. 다만 서로 다를 뿐이다. --59

 

드물게 특별한 순간을 제외하고는 우리네 세상은 그렇게까지 과거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향수는 등장인물들이 품고 사는 고뇌의 한 요소다. 하지만 고뇌가 있는 곳에 묘한 환희도 따라온다. 사라진 문명과 잃어버린 영광에 관한 기억은 그들을 아프게 함과 동시에 일으켜 세운다. 그들은 제2시대와 제3시대를 뒤로했고, 생명의 포도주는 바닥난 지 오래다. 읽다 보면 어느새 우리도 그들의 짐을 함께 지고 있다. 하지만 다 읽고 나서 현실의 삶으로 돌아올 때면, 우리는 물러진 것이 아니라 더 강인해져 있다. --107

 

아직 슬픔이 있었고 어둠도 밀려왔지만, 큰 용맹과 위업이 다 헛되지만은 않았다.”다 헛되지만은 않았다는 표현은 환상과 환멸 사이의 절묘한 중간점이다. -108

 

신화는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가져다가, 여태 익숙해서 보이지 않던풍부한 의미를 되살려 낸다. 그것이 신화의 가치다. 아이는 식어서 (밍밍한) 고기를 방금 자기가 활을 쏘아 잡은 들소라고 생각하며 즐긴다. 현명한 아이다. 현실의 고기 그대로인데 이야기에 담그니 더 맛있어진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고기인지도 모른다. 현실의 풍경이 식상하거든 거울에 비추어 보라. 빵이나 금이나 말이나 사과나 길을 신화에 담글 때, 우리는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재발견한다. 이 이야기가 우리 마음속에 머물러 있는 한 현실은 더 현실다워진다. 이 책은 빵이나 사과만 아니라 선과 악, 우리의 끝없는 위험과 고뇌와 기쁨까지도 그렇게 다시 보게 해 준다. 신화에 담그면 더 똑똑히 보인다. 이 방법이 아니라면 그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 p.113

 

두 가지 여행법, 두 가지 독서법 : 외국을 즐기는 데 두 가지 방법이 있듯이 과거를 즐기는 데도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어떤 사람은 다른 나라에 나갈 때도 영국을 품고 가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채 돌아온다. 어디를 가든 다른 영국인 관광객하고만 어울린다. 그가 말하는 좋은 호텔이란 영국 호텔과 같다는 뜻이다. ...

하지만 다른 여행법과 다른 독서법도 잇다. 현지 음식을 먹고 그 지방에서생산한 포도주를 마실 수 있다. 외국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그곳을 관광객 눈에 비치는 타국이 아니라 현지 주민의 나라로 볼 수 있다. 돌아올 때는 생각과 느낌이 이전과 달라져 있을 수 있다. --122-123

 

해외로 떠나는 휴가를 관광객으로서만 보내는 일은 내게는 유럽을 낭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얻을 것이 그보다 많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얻을 것이 그보다 많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지난 시대의 문학에 우리 자신의 얼굴만 비추어 보고 만다면 그것은 과거를 낭비하는 것 아닐까? --124

 

진실성과 글쓰기 재능 : 존 번연이 글을 잘 쓴 이유를 그가 진실하고 솔직한 사람으로서 문학적 허세를 부리지 않고 생각대로만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틀림없이 번연 자신은 그렇게 설명했겠지만, 그것은 말이 안 된다.

그 설명이 맞다면, 누구나 진실하고 솔직하고 허세만 없으면 똑같이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글재주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말이 진실하고 솔직해도 손에 펜을 들었다 하면 진부한 상투어가 쏟아져 나온다. -129

여기 충격적 사실이 있다. 진실하지 않고는 글을 잘 쓰기가 치명적으로 어려울 수 있지만, 진실성 자체는 누구에게도 좋은 작법을 가르친 적이 없다. 진실성은 문학적 재능이 아니라 도덕적 덕목이다. 진실성에 대한 보상을 바랄 곳은 내세이지 문단이 아니다. --130

 

속에있지 않고 책을통해오는 것 : 아름다움이 책이나 음악 속에 있는 줄 알고 거기에 의지하면 돌아오는 것은 배반이다. 아름다움은 그 속에 있지 않고 이를 통해 올 뿐이다. 결국 책이나 음악을 통해 오는 것은 그리움이다. --132

 

좋아하는 책은 10년마다 다시 읽어야 한다. -142

 


 

 

소설을 얻기 위해 동화를 잃어야만 했다면, 나는 성장했다고 할 수 없고 그저 달라졌을 뿐이다. 나무는 나이테가 늘면서 자라지만, 한 역을 떠나 다음 역으로 칙칙폭폭 달리는 기차는 자라지 않는다. 실제로 이 논거는 이보다 더 탄탄하고 복잡하다.

지금의 나는 동화를 읽을 때도 소설을 읽을 때만큼이나 확연히 성장해 있다. 어릴 적보다 지금 동화를 더 잘 즐기기 때문이다.… 설령 아동문학의 취향은 그대로인 채로 거기에 성인 문학의 취향이 더해지기만 했다 해도, 그 확장만으로도 "성장"이라 불릴 자격은 충분하다. 반면에 단순히 보따리 하나를 내려놓고 다른 하나를 잡는 과정은 성장에 해당하지 않는다.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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