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삶 - 타인의 눈으로 새로운 세계를 보는 독서의 즐거움
C. S. 루이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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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삶]에 빠지다 

 

 책 읽는 삶 타인의 눈으로 새로운 세계를 보는 독서의 즐거움

C. S. 루이스 저/윤종석 역 |두란노 |20210714|원제 : The Reading Life

 

이 책은 세계적인 걸작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 S. 루이스의 저작으로 독서 활동에 대한 조언과 견해를 담은 책이다. 루이스는 열 살 때 밀턴의 <<실낙원>>을 읽고, 열한 살 때부터는 편지에 성경과 셰익스피어의 작품 구절을 인용해서 적기 시작했다니, 요즘 말로 하면 독서 영재, 문학 천재였다.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매일 하루의 3분의 1을 독서에 몰두하며 평생을 독서의 증인으로 살았다. 작가로, 학자로 왕성한 저작 활동을 펼치며나니아 연대기』『스크루테이프의 편지』『순전한 기독교등의 고전을 인류에게 선사했다. 이 책은 고전이 된 루이스의 저서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에세이, 편지 등에서 삶의 변화를 낳는 독서에 대한 글만 엄선하여 엮은 책이다.

먼저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반가운 소제목들이 눈에 띈다. 그것은 동화문학에 대한 견해이다. ‘동화, 아이들만의 책이 아니다 / 동화, 현실 세계에 새로운 차원의 깊이를 더하다 / 이야기에서 기현상이 담당하는 역할/ 동화가 안겨 준 뜻밖의 선물등에서 루이스는 성장의 의미와 동화문학에 대한 탁월한 견해를 피력한다.

 

 


 

미성숙이란 옛것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새것을 습득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지금의 나는 백포도주를 즐기지만, 어릴 적에는 당연히 그래서는 안 됐다. 그런데 레몬스쿼시는 여전히 좋아한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성장이나 발육이다. 전에는 즐기는 것이 하나뿐이었는데 이제 둘이 됨으로써 내가 더 풍요로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먼저 레몬스쿼시에 입맛을 잃어야만 백포도주 맛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그냥 변화다. 지금의 나는 동화 못지 않게 톨스토이와 제인 오스틴과 앤서니 트롤럽의 소설도 즐겨 읽는다. 이 또한 성장이다. 소설을 얻기 위해 동화를 잃어야만 했다면, 나는 성장했다고 할 수 없고 그저 달라졌을 뿐이다. 나무는 나이테가 늘면서 자라지만, 한 역을 떠나 다음 역으로 칙칙폭폭 달리는 기차는 자라지 않는다. 실제로 이 논거는 이보다 더 탄탄하고 복잡하다.

지금의 나는 동화를 읽을 때도 소설을 읽을 때만큼이나 확연히 성장해 있다. 어릴 적보다 지금 동화를 더 잘 즐기기 때문이다.설령 아동문학의 취향은 그대로인 채로 거기에 성인 문학의 취향이 더해지기만 했다 해도, 그 확장만으로도 성장이라 불릴 자격은 충분하다. 반면에 단순히 보따리 하나를 내려놓고 다른 하나를 잡는 과정은 성장에 해당하지 않는다. ---31.

 

 


바야흐로 평생교육 시대이다. 사람들은 평생학습으로 지속적인 자아발전을 꿈꾸지만 스스로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독서조차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할지 모르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 이들에게 루이스의 위 문장을 들려주고 싶다. 모든 중요한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단, 던 어느 책 제목처럼 인간의 성장에 필요한 대부분의 자양제가 동화에 들어있다. 그러므로 동화로 자아 성숙의 꿈을 이뤄보라고 말하고 싶다.

루이스는 좋아하는 책은 10년마다 다시 읽어야 한다.’며 책이 곧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임을 깨닫던 어린 날의 희열로 이 책을 읽는 이의 영혼을 두드린다. 그는 자신이 책을 접한 어린 날의 경험과 기쁨을 고스란히 전하며 독자들을 책상 앞으로 달려가 앉고 싶게 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이론과 문장을 외워두고 싶을 정도로 감동 받았다.

그는 문체에 대해문체는 주어진 생각을 가장 아름다운 단어와 운율로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정의했다. 수십 년 문학 동네 언저리에 살며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이론들을 루이스는 그만의 방식인 서정적이고 지적인 문체와 해박한 지식과 바른 견해로 다음 장을 기다리게 한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이 한 권의 책을 완독했다. 바쁜 와중에도 이 책을 대할 때면 연필을 들고 밑줄 그으며 독서의 기쁨에 젖었다. 읽어도 읽어도 맛나는 책! 책장을 넘길 때마다 20세기의 영적, 지적 거장과 마주앉아 담소하는 기쁨이 깊어졌다.

다 읽고 나니 이처럼 좋은 책, 이처럼 훌륭한 스승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싶다. 두란노 책들이 다 훌륭하고 은혜롭지만 특별히 더 자랑하고 싶은 이 책을 내 마음은 벌써 올해의 추천도서로 꼽아 두었다. 이제 루이스의 저서들을 한 권 한 권 찾아 읽으며 다시 기쁨의 축배를 들 과제들이 생겼다.

 

 

 

밑줄 긋기

 

독서에 열심인 사람들이 함께 모이면 거기서 공동체가 생겨난다.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세계가 넓어지고 깊어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독특한 단체다. --11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확장하려 애쓴다. 나 이상이 되기를 원한다. --16

 

사랑할 때 우리는 자아를 벗어나 타인 안에 들어간다. -17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아를 지키고 더 강화하려는 일차적 충동이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아를 벗어버리고 그 편협성을 바로잡아 외로움을 치유하려는 이차적 충동도 함께 갖고 있다. 바로 사랑, 덕행, 지식 추구, 예술 감상 등을 통해서 우리는 이 일을 한다. 이 과정은 자아의 확장이나 자아의 일시적 소멸로 표현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오래된 역설이다.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신념 속에 즐거이 들어간다. -또 우리는 타인의 상상 속에도 들어간다. 그 상상이 전혀 현실성이 없어 보이더라도 말이다. --18

 

문학적 경험은 개성이라는 특권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 개성이 입은 상처를 치유해 준다. 훌륭한 문학을 읽으면 나는 천의 인물이 되면서도 여전히 나로 남아있다. 그리스 시에 나오는 밤하늘처럼 나는 무수한 눈으로 보지만, 보는 주체는 여전히 나다. 예배할 때나 사랑할 때, 또 도덕적 행위를 할 때나 지식을 얻는 순간처럼, 독서를 통해서도 나는 나를 초월하되 이때처럼 나다운 때는 없다. -22

 

 

미성숙이란 옛것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새것을 습득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지금의 나는 백포도주를 즐기지만, 어릴 적에는 당연히 그래서는 안 됐다. 그런데 레몬스쿼시는 여전히 좋아한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성장이나 발육이다. 전에는 즐기는 것이 하나뿐이었는데 이제 둘이 됨으로써 내가 더 풍요로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먼저 레몬스쿼시에 입맛을 잃어야만 백포도주 맛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그냥 변화다. 지금의 나는 동화 못지 않게 톨스토이와 제인 오스틴과 앤서니 트롤럽의 소설도 즐겨 읽는다. 이 또한 성장이다. 소설을 얻기 위해 동화를 잃어야만 했다면, 나는 성장했다고 할 수 없고 그저 달라졌을 뿐이다. 나무는 나이테가 늘면서 자라지만, 한 역을 떠나 다음 역으로 칙칙폭폭 달리는 기차는 자라지 않는다. 실제로 이 논거는 이보다 더 탄탄하고 복잡하다.

지금의 나는 동화를 읽을 때도 소설을 읽을 때만큼이나 확연히 성장해 있다. 어릴 적보다 지금 동화를 더 잘 즐기기 때문이다.설령 아동문학의 취향은 그대로인 채로 거기에 성인 문학의 취향이 더해지기만 했다 해도, 그 확장만으로도 성장이라 불릴 자격은 충분하다. 반면에 단순히 보따리 하나를 내려놓고 다른 하나를 잡는 과정은 성장에 해당하지 않는다. ---31

 

거의 모든 시대와 지역에서 동화 장르는 특별히 어린이를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며 어린이만 즐기지도 않았다. 동화는 문학계에서 유행이 지나면서 아이들 방으로 옮겨갔다. 빅토리아 시대 주택에서 유행이 지난 가구가 아이들 방으로 옮겨 간 것처럼 말이다. -33

 

문학은 폭압적인 일반화와 슬로건에서 우리를 구원해 준다. 예컨대 문학도는 군국주의라는 단어 이면에 숨어 있는 다양한 실상을 안다. -39

동화 나라는 손닿지 않을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아련한 의식을 자극하면서 아이를 동요시키며(평생 풍요롭게 해 준다), 현실 세계에 무디어지거나 눈감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현실 세계에 새로운 차원의 깊이를 더해 준다. 아이가 마법의 숲 이야기를 읽었다 해서 진짜 숲을 멸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독서 덕분에 모든 진짜 숲에 약간의 마법이 걸린다. 이것은 특별한 동경이다.

앞서 말한 부류의 학교 소설을 읽는 아이는 성공을 갈망하지만 (책이 끝나면) 불행하다. 자기는 그 성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화를 읽는 아이는 갈망한다는 사실 자체로 행복하다. 대개 사실주의 소설에서와는 달리, 생각이 자신에게 집중되지 않기 때문이다. -44

좋은 이야기에 나오는 기현상은 비록 허구이긴 하지만, 내러티브에 감동을 더하려고 그저 아무렇게나 갖다 붙인 것은 아니다. ……동화의 논리도 사실주의 소설만큼이나 엄중하다. 다만 서로 다를 뿐이다. --59

 

드물게 특별한 순간을 제외하고는 우리네 세상은 그렇게까지 과거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향수는 등장인물들이 품고 사는 고뇌의 한 요소다. 하지만 고뇌가 있는 곳에 묘한 환희도 따라온다. 사라진 문명과 잃어버린 영광에 관한 기억은 그들을 아프게 함과 동시에 일으켜 세운다. 그들은 제2시대와 제3시대를 뒤로했고, 생명의 포도주는 바닥난 지 오래다. 읽다 보면 어느새 우리도 그들의 짐을 함께 지고 있다. 하지만 다 읽고 나서 현실의 삶으로 돌아올 때면, 우리는 물러진 것이 아니라 더 강인해져 있다. --107

 

아직 슬픔이 있었고 어둠도 밀려왔지만, 큰 용맹과 위업이 다 헛되지만은 않았다.”다 헛되지만은 않았다는 표현은 환상과 환멸 사이의 절묘한 중간점이다. -108

 

신화는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가져다가, 여태 익숙해서 보이지 않던풍부한 의미를 되살려 낸다. 그것이 신화의 가치다. 아이는 식어서 (밍밍한) 고기를 방금 자기가 활을 쏘아 잡은 들소라고 생각하며 즐긴다. 현명한 아이다. 현실의 고기 그대로인데 이야기에 담그니 더 맛있어진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고기인지도 모른다. 현실의 풍경이 식상하거든 거울에 비추어 보라. 빵이나 금이나 말이나 사과나 길을 신화에 담글 때, 우리는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재발견한다. 이 이야기가 우리 마음속에 머물러 있는 한 현실은 더 현실다워진다. 이 책은 빵이나 사과만 아니라 선과 악, 우리의 끝없는 위험과 고뇌와 기쁨까지도 그렇게 다시 보게 해 준다. 신화에 담그면 더 똑똑히 보인다. 이 방법이 아니라면 그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 p.113

 

두 가지 여행법, 두 가지 독서법 : 외국을 즐기는 데 두 가지 방법이 있듯이 과거를 즐기는 데도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어떤 사람은 다른 나라에 나갈 때도 영국을 품고 가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채 돌아온다. 어디를 가든 다른 영국인 관광객하고만 어울린다. 그가 말하는 좋은 호텔이란 영국 호텔과 같다는 뜻이다. ...

하지만 다른 여행법과 다른 독서법도 잇다. 현지 음식을 먹고 그 지방에서생산한 포도주를 마실 수 있다. 외국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그곳을 관광객 눈에 비치는 타국이 아니라 현지 주민의 나라로 볼 수 있다. 돌아올 때는 생각과 느낌이 이전과 달라져 있을 수 있다. --122-123

 

해외로 떠나는 휴가를 관광객으로서만 보내는 일은 내게는 유럽을 낭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얻을 것이 그보다 많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얻을 것이 그보다 많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지난 시대의 문학에 우리 자신의 얼굴만 비추어 보고 만다면 그것은 과거를 낭비하는 것 아닐까? --124

 

진실성과 글쓰기 재능 : 존 번연이 글을 잘 쓴 이유를 그가 진실하고 솔직한 사람으로서 문학적 허세를 부리지 않고 생각대로만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틀림없이 번연 자신은 그렇게 설명했겠지만, 그것은 말이 안 된다.

그 설명이 맞다면, 누구나 진실하고 솔직하고 허세만 없으면 똑같이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글재주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말이 진실하고 솔직해도 손에 펜을 들었다 하면 진부한 상투어가 쏟아져 나온다. -129

여기 충격적 사실이 있다. 진실하지 않고는 글을 잘 쓰기가 치명적으로 어려울 수 있지만, 진실성 자체는 누구에게도 좋은 작법을 가르친 적이 없다. 진실성은 문학적 재능이 아니라 도덕적 덕목이다. 진실성에 대한 보상을 바랄 곳은 내세이지 문단이 아니다. --130

 

속에있지 않고 책을통해오는 것 : 아름다움이 책이나 음악 속에 있는 줄 알고 거기에 의지하면 돌아오는 것은 배반이다. 아름다움은 그 속에 있지 않고 이를 통해 올 뿐이다. 결국 책이나 음악을 통해 오는 것은 그리움이다. --132

 

좋아하는 책은 10년마다 다시 읽어야 한다. -142

 


 

 

소설을 얻기 위해 동화를 잃어야만 했다면, 나는 성장했다고 할 수 없고 그저 달라졌을 뿐이다. 나무는 나이테가 늘면서 자라지만, 한 역을 떠나 다음 역으로 칙칙폭폭 달리는 기차는 자라지 않는다. 실제로 이 논거는 이보다 더 탄탄하고 복잡하다.

지금의 나는 동화를 읽을 때도 소설을 읽을 때만큼이나 확연히 성장해 있다. 어릴 적보다 지금 동화를 더 잘 즐기기 때문이다.… 설령 아동문학의 취향은 그대로인 채로 거기에 성인 문학의 취향이 더해지기만 했다 해도, 그 확장만으로도 "성장"이라 불릴 자격은 충분하다. 반면에 단순히 보따리 하나를 내려놓고 다른 하나를 잡는 과정은 성장에 해당하지 않는다.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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