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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대화 - 그리스도교 관상의 길
토머스 키팅 지음, 이청준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2월
평점 :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십시오." "기도해 주세요."
성당에 발길을 끊은 쉬는 교우들조차 '기도'만큼은 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우리 신앙에서 기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하느님과의 대화는 우리의 영혼의 갈증을 어떻게 풀어주는가.
하느님께 다가가는 여정: 정서적 리셋
하느님께 다가가는 신앙의 성숙 단계를 설명하며, 저자는 관상과 기도가 그 여정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보여준다.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우리 내면의 '정서적 행복 프로그램'에 대한 통찰이다. 유아기 시절 머리와 마음에 잘못 프로그래밍된 이 낡은 체계를 폐기해야만, 비로소 성숙한 어른으로서 하느님과 일치하는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도는 바로 이 리셋을 돕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신앙, 무거운 짐이 아닌 생명의 열쇠
기독교 신앙에서 회개, 순교, 십자가 위의 죽음 등 무거운 이미지에만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로 인해 많은 신자가 신앙을 '자기 부정'이나 '마음의 짐'으로만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신앙의 여정을 삶과 생명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문을 여는 열쇠로 재정립한다.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고통과 영혼의 갈증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 근원을 추적하고, 신앙이 어떻게 그 슬픔을 메워주는지 설명한다.
"너를 용서한다. 너도 너 자신을 용서해라." (5장 신화적 회원의식, p.60)
명상과의 차이: 교만을 경계하는 지향점
향심기도의 방법론만 언뜻 들었을 때 불교의 선(禪)이나 일반적인 명상법과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그 지향점이 분명히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자칫 관상의 경험이 자신을 '선택받은 특별한 존재'로 여기게 만드는 영적 교만으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는데 내 눈에는 이것이 어설픈 명상으로 어설픈 깨달음을 얻었을 때의 패착지로 보였다.
"총애를 받는 사람 혹은 특별한 소명을 받은 사람이라는 은밀한 만족감."
(16장 영의 밤, p.148)
책은 이러한 위험을 경계하며, 거짓 자아를 부수고 '감각의 밤'과 '영의 밤'을 거쳐 도달해야 할 참된 행복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지금, 여기에서 누리는 참행복
단순히 '착한 사람으로 살다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 이상의 답을 찾던 내게 이 책은 새로운 지향점을 보여주었다. 지금 당장 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느님이 주시는 참행복의 원리는 무엇인지를 말로 더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소유와 안전에 대한 집착 대신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
애정과 인정, 쾌락을 향한 요구를 놓아버림으로써 그것들을 우상 숭배하지 않는 것.
힘에 대한 충동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집단의 인정에 목매지 않고, 조직에 머물면서도 끊임없이 쇄신할 수 있는 내적 자유를 얻는 것.
향심기도와 관상의 방법론적인 구체성은 다소 부족하지만 (저자는 이를 다른 저서에서 다룬다고 밝힌다), 이 책은 향심기도의 본질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길잡이다. 가톨릭 신앙 안에 이미 이렇게 다정한 치유의 길이 있음을 찾게되어서 기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