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라면 정조처럼 - 정조대왕의 숨겨진 리더십 코드 5049
김준혁 지음 / 더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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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조선 최고의 왕 정조, 그의 삶은 영화와 같았고, 그가 남긴 만들고 남긴 것은 1천 년이 지나도 살아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멋진 이런 왕이 있었다.



위대한 임금 정조

이 책을 읽으며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안 든다. 정말 난 사람이다. 24년간의 재위 기간 동안 정조는 정말 많은 일들을 했다.

정조는 기본 통치이념을 4가지로 잡았는데 그것이 민산(民産)’, ‘인재(人才)’, ‘융정(戎政)’, ‘재용(財用)' 이다. 이 기본 통치 이념을 바탕으로 정조가 만들어 간 것은 수없이 많다. 그 바탕에는 정조의 명석함이 있었고, 그 명석함은 어릴적부터 계속된 정조만의 독서법으로부터 나왔다. 책은 두 번 읽고 많이 읽기보다는 깊이 읽어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다.

이 책은 정조의 업적을 49가지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 이는 신궁이라고 불리는 정조가 활을 쏘면 49발을 모두 맞추고 한 발은 허공으로 날려 보낸 것을 기본으로 해서 49가지의 정조의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책을 읽어 보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까?'정말 많은 업적을 이루어냈다. 정조의 정책에는 항상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수원의 화성을 축조하면서 털모자와 솜옷을 하사한 일은 역대 왕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일화를 통해서도 정조의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백성에 대한 사람을 단편적으로 볼 수 있다.

토지개혁에서 규장각 설치, 혁신도시의 건설, 신분을 따지지 않는 인재 등용, 민주주의 도입, 무술 정리, 삭목정책, 법전의 편찬, 거중기 개발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펼쳐진다.

정치를 떠나 정조는 한 여자를 평생 사랑하고 잊지 못하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문무를 겸비하고 신궁이라 불릴 정도로 활을 잘 쏘기도 했지만 위트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 정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진정한 리더였다. 정조의 진정한 리더로서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의 리더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저자 소개

김준혁

한신대학교 교수이자, 정조(正祖)와 화성(華城) 전문가이다. 수원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역사교사였던 아버지의 자전거 뒷자리에 타고 함께 등교하면서 하루에 한 꼭지씩 역사 이야기를 들은 것이 가슴에 남아 역사를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1986년에 중앙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에 입학하였다. 중앙대 대학원에 진학한 후 당시로는 드물게 ‘정조’를 전공하여 ‘조선 정조대 장용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에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수원시가 본격적인 화성 복원 사업을 추진할 때 수원시 학예연구사로 임용되어 화성의 복원과 콘텐츠 개발에 참여하였고, 이후 화성박물관 건립을 주도하여 학예팀장을 지냈다.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 국제기념물협회 위원과 민예총 문학위원회 위원이자 역사에세이스트로, 신문과 방송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화성, 정조와 다산의 꿈이 어우러진 대동의 도시』(더봄), 『정조가 만든 조선의 최강 군대?장용영』(더봄), 『역사는 미래다』(더봄), 『정조, 새로운 조선을 디자인하다』(웅진싱크하우스), 『이산 정조 꿈의 도시 화성을 세우다』(여유당출판사), 『정조는 왜 화성을 쌓았을까?』(자음과 모음), 『한반도의 운명을 바꾼 전투』(한신대학교 출판부), 『알기 쉬운 화성 이야기』(수원화성박물관) 등이 있으며, 공저로는 『지도자의 자격』(꿈결), 『행복한 인문학』(이매진), 『다산 조선의 새길을 열다』(실학박물관), 『동서양 역사 속의 공공건설과 국가경영』(학고방) 외 다수가 있다.

목차

1장 | 공부하는 군주

01 엄청난 독서를 통해 지식을 넓히다 15

02 끊임없이 공부하여 군사君師의 지위를 얻다 22

03 무예 수련으로 신체를 단련하다 28

04 검소함을 실천하다 35

2장 | 시대의 변화를 읽다

05 국가 개혁의 이념을 명확히 밝히다 45

06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탕평의 시대를 열다 52

07 <자휼전칙> 제정으로 사회복지를 강화하다 58

08 금난전권을 혁파하여 경제를 개혁하다 63

09 공公과 사私를 철저히 구분하다 71

10 민주주의 제도의 기반을 마련하다 78

11 먼 미래를 내다보고 식목정책을 추진하다 82

12 백성을 위해 새로운 법전을 만들다 89

3장 | 인재등용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다

13 신분을 초월하여 인재를 등용하다 97

14 정치적 조율을 위한 핵심 인물을 발탁하다 104

15 개혁을 책임질 핵심인재를 중용하다 111

16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인재를 양성하다 118

17 규장각 건립과 초계문신 임명으로 인재 육성의 기반을 마련하다 124

18 시골 유생의 의견도 깊이 새겨듣다 131

19 지역차별을 철폐하여 인재를 키우다 137

4장 | 강건한 군주

20 끊임없이 함양하고 성찰하여 분노를 통제하다 147

21 친인척을 멀리하고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다 153

22 9가지 좌우명으로 자신의 뜻을 명확히 밝히다 160

23 호방함과 유머를 보여주다 164

24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다 171

25 개혁저항세력을 과감히 척결하다 177

26 군사훈련을 진두지휘하다 182

27 국왕의 행차를 백성과 함께하다 190

28 천재지변에 적극 대응하다 198

29 강고한 기득권 세력에 강력하게 맞서다 203

5장 |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다

30 참된 효를 실천하다 213

31 자신을 따른 이들을 끝까지 보호하다 222

32 사랑하는 여인에게 최선을 다하다 230

33 측근의 실수를 단호하게 처리하다 237

34 역대 국왕의 계승자로서 위상을 만들다 245

35 진정한 소통을 위해 비밀편지를 주고받다 252

6장 | 포용의 정치를 추구하다

36 창덕궁 내원에서 군신동행을 열다 263

37 혁신도시 건설로 경제발전 기반을 마련하다 270

38 북벌론을 통해 자주의식을 고양시키다 275

39 백성들을 존중하고 세심하게 배려하다 282

40 공자를 내세워 학문의 정통성을 드러내다 290

41 전문 기술자들을 존중하다 296

42 중요한 일이 있으면 반 잔 술도 입에 대지 않다 300

7장 | 조선의 진경문화시대를 열다

43 활자 주조 활성화로 문예를 부흥시키다 309

44 창조적 사고를 지니고 첨단 기계를 사용하다 316

45 조선의 음악으로 혜경궁의 잔치를 열다 322

46 훈민정음을 활성화하다 329

47 무예를 발전시켜 국방력을 강화하다 334

48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다 341

49 진경문화로 새로운 문화시대를 열다 350

책 속에서

프롤로그

정조는 비극적인 개인의 삶을 뛰어넘어 역사에 이름을 남긴 훌륭한 군주로서의 삶을 살았다. 6p

이 책에서는 정조의 리더십 코드인 '5049'의 의미를 담아 그의 생애와 국가 지도자로서의 리더십을 49가지로 정리해 독자들에게 제시하고자 한다. 정조의 리더십은 비단 봉건왕조 시대에 통용됐던 군주로서의 리더십이 아니라 21세기 통일한국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분야에 응용될 수 있는 리더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정조만큼 역사에서 자주 거론되는 임금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인생이 파란만장했고, 그가 쌓아올린 업적이 많았으며, 인생에 많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보다 엄격하고 강인했던 할아버지와 반대로 연약했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정조는 어린 나이에 마음은 이미 성장했었을 것이리라. 정조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1장 | 공부하는 군주

정조는 천성적으로 책을 통해 지식 얻기를 좋아한 것도 있지만 스스로 노력도 엄청나게 했다. 정조는 어린 시절부터 공부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5p

정조의 독서법

정조는 어린 시절부터 반드시 책을 두 번씩 보았다.

정조는 일단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한 번 익히고, 두 번째로 다시 정독을 해서 그 책이 갖고 있는 내용을 깊이 파악하는 방법을 취했다. 이는 혜경궁인 어머니로부터 배운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조는 글을 읽을 때 미리 계획을 세워두고 읽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정을 보다가 시간이 부족해서 읽고자 했던 글을 읽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일득록》에 "나는 하루에 어떤 글을 몇 번 읽고, 어떤 글을 몇 줄 읽는다고 반드시 과정을 정해 놓고서 아무리 바쁘더라도 그만둔 적이 없다. 이는 문자 공부에 유익할 뿐 아니라 마음을 잡는 공부도 된다. 17p

정조는 독서를 함에 있어 글 뜻을 깊이 음미하려면 참을성 있게 독서를 해야 하는데 이를 잘 기억하려면 반드시 기록해 놓아야 한다고 했다. 자신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대목에 감동받았는지, 혹은 깊이 생각할 내용이 무엇인지 기록을 했다. 그 기록들의 상당수가 그의 문집인 《홍재전서》에 수록되어 있다.

》 지금의 서평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감동받은 부분, 깊이 생각할 내용은 모든 독서의 기본이다.

정조는 독서에 있어서는 많은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밀하게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을 보려고 힘쓸 것이 아니라 평상적인 것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19p

정조는 책을 읽을 때는 먼저 대요를 파악하라고 했다. 대요를 파악하면 만 가지 현상이 하나의 이치로 꿰어져서 반만 노력하고도 효과를 배로 거둘 수 있지만, 대요를 파악하지 못하면 모든 사물이 서로 연관되지 않아서 종신토록 힘써 외우고 읽어도 이루는 바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 정조는 소독, 기록, 재독, 대요를 중요시했다. 여기서 몇 가지 알아야 하는 점은 소독이 우리가 생각하는 소독은 아니다.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그 책에 쓰인 글자의 의미, 역사적 사실, 저자의 통찰, 시대적 사건, 인물 간의 관계 등 모든 분야를 통틀어 배우는 배경 전반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이다. 선천적으로 책을 좋아한다고 했던 정조의 독서는 깊이 있는 독서였다. 하나를 배우면 그 주변의 열 가지를 함께 배우는 폭넓은 독서였으며, 하나의 주제에 대해 깊이 알고 사색을 하는 깊은 독서였다.

정조의 무예

정조는 보통의 무예인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무예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30p

몽둥이인 곤이나 작은 부채 등도 과녁으로 사용하여 모두 명중시켰다는 것이다. 가히 신궁의 경지이다. 32p

정조의 검소함

정조가 내보낸 궁녀가 무려 300여 명이었으니, 이는 와실 궁녀의 절반 가까이 해당되는 인원이었다. 36p

하루 두 끼, 그리고 한 끼 당 반찬을 다섯 가지만 먹겠다고 선언했다. (중략) 국왕으로 있는 24년간 변함없이 지켜졌다. 37p

옷이 해지거나 버선에 구멍이 나면 이를 버리지 않고 꿰매어 입었다. 38p

2장 | 시대의 변화를 읽다

정조는 이를 위하여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할 4대 과제를 제시했다. 민산(民産)’, ‘인재(人才)’, ‘융정(戎政)’, ‘재용(財用)용 네 가지 개혁이다. 47p

3장 | 인재등용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다

정조는 인재 육성이 조선의 개혁에 가장 소중한 것이라 생각했고, 이를 위한 기반을 조성했다. 그것이 바로 규장각이었다.

규장각이란 역대 국왕의 어필과 초상화 등을 보관하는 동시에 왕실 소유의 다양한 서적들을 소장하기 위한 도서관도 겸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는 겉모습에서만 드러난 형태이고 실제 규장각 설치의 본래 목적은 바로 정조의 개혁정치의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다양한 정책을 개발하고 유학 및 실학의 발전을 연구하는 곳이었다. 125p

4장 | 강건한 군주

정조는 11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죽는 것을 보았다. 그 한이 가슴 깊숙이 배어 있기 때문에 그는 평생을 고생했다. 147p

정조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에 집중했다. 바로 함양 공부다.

정조는 함양공부만이 아니라 사신의 삶고 ㅏ자세를 성찰하는 훈련도 했다. 148p

정조는 어쩌다가 화가 나는 일이 생기면 반드시 화를 가라앉히고 사리를 살필 방도를 생각하여 하룻밤을 지낸 뒤에야 비로소 일을 처리했다. 149p

정조는 일에 대한 시작을 하면 반드시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다. 심지어 글씨를 쓰거나 오락하는 것까지도 시작만 있고 끝마무리가 없었던 적이 없었다. 군주가 이렇게 해야만 신하들이 따라 하기 때문이다. 151p

리더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함께 사업을 하는 이들 중에서 친인척을 멀리하는 것이다. 153p

정조의 9가지 좌우명

입지 / 이치 / 거경 / 하늘을 본받는 것 / 간언을 받아들이는 것 / 학교 / 인재를 기용하는 것 / 백성을 사랑하는 것 / 검소를 숭상하는 것

능행차

재위 기간 24년 동안 도성을 벗어나 경기도에 흩어져 있던 왕릉을 방문한 횟수는 총 66회이다.

5장 |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다

정조가 계승하고 했던 4인

요임금, 세종, 효종, 영조

정조는 요임금을 따라서 자신의 임지만 만든 것이 아니라 도시 건설까지 이어졌다. 그 도시가 바로 수원 화성이다.

정조는 화봉삼축의 고사를 따서 모든 백성들이 풍요롭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혁신도시이자 자신의 친위도시를 만들기로 했고, 그 이름을 화성이라고 한 것이다. 247p

6장 | 포용의 정치를 추구하다

화성 혁신도시

정조의 화성 건설은 요즘의 개념으로 치자면 철저한 혁신도시 건설이다. 화성 신도시라는 대도시를 만들어 백성들이 자유롭게 상업행위를 할 수 있는 혁신적 실험을 하고, 토지 없는 백성들을 위해서 대규모 국영농장인 둔전을 만들어 안정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업 기반을 조성하여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한 것이다. 270p

과거 200여 년 전으로 돌아가면 겨울은 고통의 계절이었다. 솜옷을 입고 따스하게 살아가게 된 것은 채 몇 십 년이 되지 않았다. 고려 말에 문익점에 의해 목화가 보급되었지만 실제로는 귀족들의 전유물이었지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솜옷은 백성들의 의복이 아니었다. 그러니 겨울에 야외에서 일을 하면서 얼마나 추웠겠는가! 297p

정조는 겨울을 이기면서 축성을 진행할 수 있는 특별한 조처를 내려주었다. 그것이 바로 기술자와 일꾼들에게 털모자를 선물하는 것이었다.

조선시대에는 한겨울에 정3품 당상관 이상만이 귀마개를 할 수 있었다. 298p

털모자만이 아니라 기술자와 막일꾼들에게 솜옷도 하사해 주었다. 298p

화성을 축성하는 모든 인부들에게 정당한 급료도 지급했다. 이로 인해 10년 걸릴 성곽 공사를 3년도 채 되지 않아 완성하게 되었다. 286p

정조의 술

중요한 일이 있어 절대로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할 상황이면 주변 유혹을 극ㄱ복하고 술을 마시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고, 중요한 일이 마무리되어 기쁜 자리를 축하해야 할 일이 있을 때 함께 즐거워하며 기쁘게 마시되, 난잡하게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303p

공자의 술

논어 향당편에서는 "주량이 무량이되 난잡하지 않았다." 302p

공자는 주역을 완성하면서 64괘 중 마지막 괘인 '화수미제' 마지막을 음주문화와 관련해서 정리했다.

"술을 마시는 데 믿음을 두면 허물이 없거니와, 그 머리를 적시면 믿음을 두는 데 바름을 잃으리라!" 302p

7장 | 조선의 진경문화시대를 열다

거중기로 인하여 화성 축성하는데 무려 4만 냥이라는 거금이 절약되었다. 화성 축성의 전체 비용이 87만 냥이었다. 당시 일반 백성들이 가장 많이 살았던 5칸짜리 초가집의 비용이 보통 25냥 정도 했으니 4만 냥이라는 금액은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이러한 시간과 비용 절감뿐만이 아니라 거중기로 인하여 축성 공사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3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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