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부족주의 - 집단 본능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가
에이미 추아 지음, 김승진 옮김 / 부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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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부족주의'는 우리가 지금까지 지금까지의 현상에 대한 인식의 오류를 정확히 집어주고 있다.

미국은 왜 베트남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

IS는 왜 사라지지 않고 있는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는 어떻게 독재를 유지하고 있는가?

에 대한 풀지 못할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우리 세계는 앞으로도 많은 독재자와 테러리스트를 만날 것이지만 지금의 이데올로기적인 색안경을 끼고서는 결코 그 이유를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정치적 부족주의'의 책에서 다루고 있는 부족주의의 관점에서 사건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원인에 대하여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을 보면서 느낀 점은 매스미디어를 시작으로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들, 세계를 움직이는 정치인들과 정책 담당자들은 현상을 해석하는 데 있어 너무나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현상에 대한 이해는 현상을 명확히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현상을 내가 바라보고 있는 관점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싶은 방법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책의 초반에는 이 얘기가 무슨 얘기인지 나도 의아했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의 생각에 동화되어 갔다. 그것은 부족 본능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부족의 이익을 원하고 내가 속한 부족의 승리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권력의 본능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싸움이 아니었다. 미국은 베트남의 민주화를 위해서 전쟁에 참여했지만, 베트남인들이 보는 미국은 자신의 부족을 죽이러 온 외래인들에 진하지 않았다. 미국인들이 가는 곳곳 강간을 하고 학살을 일삼고 보이는 모든 것들을 태우는 침략자에 진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의 역사상 최고의 불명예스러운 패배는 이미 예약돼 있었던 것이었다.

냉철하게 전략적인 관점에서 보면, 영국의 '분열시켜 정복하라'정책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4만 명가량의 영국 관료와 군인이 2억 명의 인도인을 200년 동안이나 통치했다. 대조적으로 미국은 베트남에서 10년도 버티지 못했고, 아프가니스탄을 안정시키는 것은 5년이 못 되어 포기했으며, 이라크의 통합은 1년도 유지하지 못했다. 27p

이 책은 이런 현상에 대한 문제에 대한 해답이다. 왜 미국은 베트남에서, 이라크에서 지속해서 실패를 경험하는 것일까?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앞에 내세우고서 현지의 국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영국의 200년간의 통치에 대해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대영제국 시절 영국인은 식민지 신민들 사이의 인종, 종교, 부족, 신분적 차이를 (때로는 집착적이다 싶을 만큼) 매우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그들은 조사하고, 목록을 만들고, 활용하고, 조작하고, (종종 의도적으로) 집단 간 싸움을 조장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계속해서 터지고 있는 시한폭탄을 남겨 놓기도 했다. 27p

'분열시켜 정복하라'전략은 식민지 지배를 위한 실질적인 필요성에서 나온 것이었다. 다수의 식민지 인구를 상대적으로 소수인 점령군이 통치해야 했던 것이다. 28p

영국은 '분열시켜 정복하라'전략은 정말 효과적이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인은 아직도 영국을 '아버지의 나라'라고 말하고 있다. 유학의 대부분은 영국으로 떠난다. 영국은 아직도 인도인들에게 선진국이고 추앙받는 나라이다.

반면 미국은 정책은 아래와 같았다.

미국은 자신의 '제국'을 매우 다른 방식으로 구성했다. 해외의 땅을 직접적으로 점령해 통치하는 게 아니라 쿠데타를 조장하고, 친미 정권을 세우고,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시장 개방을 강요하고,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곳들을 요소요소에 두는 것이 미국의 방식이었다. 28p

요약하면 영국은 분열시켰고, 미국은 강요했다.

영국과 미국의 차이에서 극명하게 보이는 것은 응집력이라는 것이다. 힘을 가하면 모이게 된다. 응집하고 집결해 힘을 모은다. 돌파구를 찾아내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힘에 대항하려는 움직임이 만들어진다. 이것의 근간이 되는 것이 부족주의이다.

우리나라처럼 작은 나라 안에서도 호남권, 충청권, 전라권 등의 말이 있고 선거에 항상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범국가적으로 커지고, 전쟁 속이라면 응집력이라는 것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간과하고 있었던 점은 이런 응집력의 힘이었다. 책 속에서 계속해서 얘기되는 부족주의는 억압에 대항하는 민족, 부족들의 응집력의 힘의 크기이다. 이런 부족주의가 커지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베트남이 그랬고, 이라크가 그랬고, 독일이 그랬으며, 베네수엘라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미국은 이런 국가들의 부족주의의 응집력을 너무도 간과하고 있었다. 오직 자신들의 대의명분에만 신경 쓰고 각 국가 내부의 모습에서는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책에서 탈레반이 가졌던 핵심 강점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탈레반이 가졌던 핵심적인 강점 하나는, 이전에 만연했던 강탈, 강간, 집단 강도, 납치 등을 막아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탈레반을 축출하자 부패와 무법천지가 되돌아왔다. 95p

단순히 봤을 때, 국민들은 무법천지의 사회에서 살고 싶을까? 아님 탈레반의 밑에서 살고 싶을까? 탈레반은 기본 생존권을 지켜주었던 것이다. 기본적인 인권,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국민들에게 이념을 얘기하고 민주주의를 얘기하면 그들이 이념을 위해 기본 욕구를 포기할 수 있을까? 이는 미국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최소한의 삶의 기본권 보장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다. 미국의 문제는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쌓여 국민들의 실상을 들여다보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다. 거시적인 이야기로 미시적인 이야기를 덮어버린 것이다. 자신의 잣대로 남을 평가하려고 한 것이다. 맞지 않는 잣대로 평가한 문제는 결국 아프간 인구 대다수가 미국에 대해 적대적이 되게 만드는 독이 되어 돌아왔다.

이 외에도 책에서는 부족주의가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근거로 보여주고 있다. 국제사회의 큰 흐름을 읽고자 하는 사람, 국제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참 좋은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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