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 달처 지음, 고유경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줄 평 : 여자들은 하루 100단어만 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소설이다. 하지만 불가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그런 삶과 별반 차이 없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크리스티나 달처

조지타운 대학에서 이론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탈리아와 영국 방언의 소리 변화에 따른 음성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녀의 단편소설과 1,000단어 이내의 짧은 단편 소설인 플래시 픽션은 전 세계 100여 개 저널에 소개되고 있으며, 바스 플래시 픽션 어워드 1위, 푸시카트 상 후보에 오르는 등 작가로서의 역량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미국 버지니아주의 노퍽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요. 젠장. 우리 여성들은 선사시대로 가는 미끄럼틀을 타고 있어요. 생각해보세요. 법원이 시간을 되돌릴 때 여러분이 어디에 있을지, 여러분의 딸들이 어디에 있을지 말이에요. '배우자 허락'이나 '아버지 동의'라는 단어를 생각해봐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당신의 목소리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만약 이런 세상이 다시 온다면 어떨까?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라는 그런 책이다. 대통령이 바뀌면서 미국의 모든 여자들 심지어 아이들까지 팔에 카운터를 차야 했고 100단어 이상을 말하면 전기 충격을 받는다. 그렇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책의 소재부터 괴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책 속에 나와 있는 현실은 더 괴기하다. 주인공 '진'은 이런 현실 속에서 자신의 6살 난 아이가 혹시라도 전기 충격을 받을까 말을 하지 않는 교육을 시킨다. 그리고 아이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점점 언어를 잃어간다. 자신의 의사표시를 말하는 대신에 고개로 생각을 표현하는 아이가 되어간다. 책을 읽는 내내 소설 속의 모습에 끔찍함을 느꼈고 분노를 느끼게 된다. 물론 현실이 아니지만 이토록 여자들이 고통을 받으면서도 해결책 없이 살아가는 모습에 가슴이 아파진다.

그리고 주인공 근처의 남자들인 그녀의 남편, 그리고 아들이 하는 말과 행동들을 보고 있으면 답답함은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지구의 어느 나라들에서는 여자들은 온몸을 가려야 하고 눈도 마주치며 안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의 어느 가정에서도 이런 비슷한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남편이 집에 도착할 때는 반드시 집에 있어야 하고, 외출을 하려면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어디 잠깐 나갈 수도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집이 아닌 어떤 사회에서는 모든 자유가 박탈당하고 인생을 담보로 잡힌 삶을 살고 있는 여자들이 있다. 이 책은 소설 속의 이야기이지만 우리의 삶 속에 이렇게 살아가는 여자들은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는 어떠한가?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단 50년, 100년 전만 해도 모든 것을 참고 살아야 했던 우리 아낙 내들의 모습이 있었다. 우리의 부모, 할머니들이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현실 풍자하는 내용이 전부는 아니다.

크리스티나 달처의 섬세한 문체는 소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세밀함을 가지고 있고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공간과 사선, 그리고 주인공의 생각까지 보여주는 세밀함을 읽고 있으면 공간 안에서 함께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탁월한 이야기 꾼이고, 동시에 사회적 메시지도 던지고 있다. 아이를 가지고 있는 부모로서 작 중 주인공이 느꼈을 슬픔이 너무 잘 느껴졌고 중간중간 뭉클함이 있었다.

점점 말을 잃어가는 딸아이와 그런 사회 속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남자아이를 동시에 키우는 엄마의 모습은 그 사회를 받아들일 수도 없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는 주인공의 갈등을 잘 표현하고 있다.

단지 말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글도 빼앗겼다. 책에서는 그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지금 상황은 이렇다. 우리는 하루에 100단어만 말할 수 있다. 책도 모두 빼앗겼다. 그들은 글자가 있는 모든 것을 책으로 간주했다. 심지어 줄리아 차일드의 책을 복사한 오래된 원고부터 친구가 장난삼아 결혼 선물로 준 빨간 체크무늬 표지의 낡은 요리책까지, 소니아가 손댈 수 없는 수납장에 갇혀 있었다. 분명 내 책을이지만, 나 역시 그 책에 손댈 수 없었다. 패트릭은 마치 운동 기구처럼 수납장 열쇠 외에도 각종 열쇠를 한 덩어리로 묶어 끌고 다녔다. 가끔 그 열쇠 꾸러미가 주는 부담감 때문에 패트릭이 더 늙어 보이는 것 같았다." 31p

우리나라도 얼마 전까지 여자들은 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파다했었다. "여자가 살림만 잘하면 되지 뭣하러 학교 가서 글공부를 하냐?"라고 자신의 딸들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했던 때가 그리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 와서 여자들에게 글과 말을 빼앗는다면 그 누구도 용납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지만 근 몇 십 년 전만 해도 그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엄마, 엄마가 뭐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결정은 아빠가 하는 거니까요."

어쩌면 독일에서는 나치와, 보스니아에서는 세르비아인과, 르완다에서는 후투족과 이런 일들이 일었어났겠지. 나는 종종 아이들이 어떻게 괴물로 변할 수 있는지, 어떤 식으로 살인이 옳고 억압이 정당하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는지, 세상이 어떻게 겨우 한 세대 만에 그 축을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166p

'진'은 자신의 아들이 점점 여성을 천대하는 인식이 자라나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소설은 종반에는 정부의 주요 인물을 암살하고 정권을 뒤엎는 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이 실현되고 되지 않는지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이 책은 그 과정 속의 내용이 더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얼마 전까지 있었던 현실 때문에 더욱더 의미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