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이론서부터 우리가 어떻게 이 별까지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책이 하나 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이다. 우주와 인간 그리고 그 역사들이라는 내용에서 자연스럽게 겹치고 있었다. 하지만 '코스모스'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책이다. 전에 '코스모스'를 읽다가 결국 끝까지 못 읽고 덮어버리고 말았다. 왠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야 되나? 가독성이 좀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읽기 힘든 책이었다. 몇 차례 잠과의 사투를 벌이다 그냥 덮게 되었다. 읽어도 내용이 기억에 안 남으니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 읽는 의미를 상실했지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윤성철 작가의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를 읽기 시작했을 때는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이 책은 괜찮을까 하는 마음이 앞섰던 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코스모스'보다 낫다. 좋은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일단 편하다. 참 어려운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윤성철 작가는 정말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너무 철학적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도 좋았다. 이런 긴 역사에 대하여 논의하는 책들의 대부분이 과학과 철학 때론 종교까지 함께 아우르곤 하는데 이 책도 물론 그런 부분이 있지만 심하게 다루고 있지는 않는다. 일정한 선 위에서만 철학적 이야기가 나오고 대부분은 과학의 발견을 시대에 흐름 순으로 나열하고 작가의 생각과 논리는 최대한 배제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과학에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어서 좋았다.
책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과연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던가? 현실에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평범한 진리가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왜 인류는 그토록 영원한 것을 탐닉하게 된 것일까? 21p
글쎄?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 어떤 것도 심지어는 우주마저도 영원하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왜 그토록 옳고 그른 것을 나누고 나의 것을 고집하고 나의 것만이 옳은 것처럼 행동하게 되었을까? 그 기준은 무엇이고 그 근거는 무엇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기원전 270년경에 이미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 지구의 부피, 그리고 태양과 달의 크기를 구한 바 있는 아리스타르쿠스aristarchus는 지동설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였다. 31p
그랬다고 한다. 지동설이 처음으로 주장된 것은 기원전 270년경이라고 한다. 만약 아리스타르쿠스가 계속해서 살았다면 얼마나 답답했을까? 자신이 이미 다 알아낸 것을 천년 넘게 믿고 있지를 않았으니...
가끔은 그럴 때가 있다. 자신이 보기에는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아무도 자신의 얘기를 믿어주는 그런 그런 때가 있다.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무시해 버리는 것은 어떨까? 어떤 사람은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천년 넘게 인정 못 받은 사람도 있으니...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진리는 이렇게 아름다워야 했다. 아니, 아름다운 것이 곧 진리였다. 실제 우주가 이처럼 숨 막힐 듯 아름다운 모습이었다면, 오늘날에도 누구나 우주의 실체가 완벽한 수학적 기하에서 찾을 수 있다는 주장에 쉽게 동의할 것이다. 38p
진리는 항상 아름답지는 않다. 진리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반드시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다. 행성의 괘도가 조금 찌그러져 있다고 그것이 진리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진리이다. 우리 모습이 조금 아름답지 않아도 항상 균형이 맞지 않아도 어쩐가? 그것 자체가 진리이고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렇게 여겨보자.
고대 이집트의 경우 얼굴은 옆모습, 가슴은 앞모습, 발은 다시 옆모습으로 그리는 등의 방식이 인간의 원형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다고 믿었다. 43p
이 책을 보고 이제야 알았다. 이집트 벽화의 모습이 왜 그렇게 생겼는지.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 이상한 그림이 탄생한 것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지구의 자전축의 기울기가 천왕성처럼 97.8도였다면 생명의 진화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것이고 인류도 출현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주에는 수많은 우연적 사건이 발생한다. 이런 사건의 연속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지구의 자전축이 결정된 것도 인간의 출현도 모두 복잡다단한 우주 역사의 일부로 발생한 일이다. 이런 역사를 모른다면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과 우주를 이해할 수 없다. 55p
우리의 삶도 우연적 사건에 의해 삶의 방향이 바뀌곤 한다. 그것이 의도되었든 의도되어 있자 않았든 자신의 삶의 역사가 된다. 보통 우리는 좋은 일은 쉽게 받아들이고, 힘든 일이 생기면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모든 일이 현재 나의 모습을 만들어 온 것이다. 하루하루의 우연들이 쌓이면서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마치 우주가 수많은 우연들에 의해 지금이 모습이 된 것처럼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도 그와 동일한 우연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해가 있다면 삶을 대하는 자세도 바뀌지 않을까 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에 충실하고 자신이 열심히 살아온 삶에 대한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 일에는 어떤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 다시 그 상황에 맞춰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길을 계속 걸어가면 된다.
우리 은하의 직경은 약 14만 광년이고 우리 은하 안에 있는 별들의 숫자는 적게는 2000억 개에서 많게는 1조 개에 달한다. 우리 은하를 주변으로 약 800만 광년의 반경 이내에는 또 다른 은하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며 서로 중력의 영향을 받고 있다. 67p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인 방경 약 465억 광년에 존재하는 은하들은 약 2조 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은하 하나에 평균적으로 수천억 개의 별이 있으니,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별의 개수는 적어도 10개 이상인 셈이다. 69p
이런 압도적인 숫자를 마주할 때 이 우주가 마치 별들과 은하로 꽉 채워져있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별들 사이의 평균 거리는 상당히 멀다. 우리가 밤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별빛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착시 효과에 불과하다. 실제 우주 공간은 텅 빈 공간과도 같다. 69p
나에게 있어 우주라는 것, 은하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놀라움을 준다. 사람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놀라움을 준다.
엔트로피
엔트로피의 값은 비평형 상태에서 낮고 평형 상태에서 최대가 된다. 엔트로피 법칙에 따르면 닫혀 있는 계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 자연은 외부의 간섭이 없는 경우 항상 비평형에서 평형 상태로 이동하는 성질을 갖는다는 뜻이다. 실내 온도와 평형을 이룬 커피가 저절로 100도로 끓는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 비평형에 상응하는 낮은 엔트로피는 자발적으로 변화가 일어날 상황을 암시하며 이런 의미에서 불안정한 상황이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비평형 상태에서 일어난다. 84p
평형 상태의 높은 엔트로피는 자발적 변화의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며 안정한 상태라고도 말할 수 있다. 변화가 없다는 것은 생기를 잃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명체가 살아 있는 이유는 끊임없이 광합성이나 음식 섭취를 통해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획득하여 스스로를 주변 환경과 비평형 상태로 유지하기 때문이다. 85p
엔트로피가 최대에 이른 상태를 흔히 '열적 죽음 thermal death'이라 부른다. 우주가 정적이고 영원했다면 우주는 이미 열적 평형 상태, 즉 열적 죽음에 도달했어야 한다. 85p
엔트로피와 열적 죽음은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처음 접했다. 처음 접했을 때는 너무도 생소하고 난해해 보여서 몇 번을 다시 읽으며 그 개념을 파악했었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개념이 잡히니 이 개념이 정말 재미있는 개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전에 피상적으로만 가지고 있던 개념이 이 두 책과 '엔트로피'를 통해 어느 정도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하는 행동은 결국 엔트로피를 낮추는 행동이다. 다름을 추구하는 것이고, 비평형 상태를 되려고 하는 것이다.
중력은 사물이 가속할 때 받는 힘, 즉 관성력과 동일한 원리로 작동한다. 이를 등가원리라고도 하는데, 일반상대성이론의 핵심이다.
사물이 가속할 때 힘이 작용한다는 사실 자체는 뉴턴의 열역학 제1법칙에 해당한다. 버스가 갑자기 출발하거나 멈출 경우 승객들이 힘을 느끼는 것이 한 예다.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던 뉴턴은 자신이 발견한 이 힘의 원리가 중력이라는 신비까지도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87p
외부 은하의 후퇴속도와 거리 사이의 상관관계는 허블의 관측 이후 오랜 기간 허블의 법칙이라 불려 왔었다. 하지만 이를 이론적으로 예측한 사람은 르메트르였고 많은 천문학자들이 르메트르에게도 합당한 크레딧을 주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왔다. 결국 2018년 국제천문연맹은 이 법칙을 공식적으로 '허블-르메르트의 법칙'으로 부르기로 결정했다. 아인슈타인, 에딩턴, 허블 등 당대 학계 스타들의 그늘에 가려 과소평가받아왔던 르메트르가 오늘날 살아 있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지 궁금해진다. 100p
그럴 수도 있고 그런 일이 수두룩하다. 역사적으로 무척이나 대단한 일을 하거나 발견을 하고서도 당대에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그의 성과를 인정받는 경우가 있다. 미술에는 특히나 많고 과학계도 상당히 많다.
내가 지금 무언가 대단한 것을 만들어 냈는데 다른 사람이 알아봐 주지 않는다고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정말 대단한 것이라면 언젠가는 누군가는 그 진가를 알아봐 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문제는 내가 그것이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명확히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그렇다면 충분한 시간을 줘라. 그때까지는 자신의 길을 걸어가라.
2019년 기준 천문학자들이 추정한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이다. 102p
딱 138살까지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