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 - 장애인과 어우러져 살아야 하는 이유 아우름 32
류승연 지음 / 샘터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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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울컥했습니다. 『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는 장애아를 둔 부모가 쓴 책입니다.


저자 소개
류승연
세상에 두려운 것이라곤 없던 국회 출입 정치부 기자에서 세상의 모든 시건이 두려운 장애 아이 엄마가 된 지 어언 10년. 장애가 있는 이들을 세상에 '편입'시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하지만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는 세상이 장애인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깨닫고 이제 세상을 향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첫 책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에선 발달장애 아이가 있는 가정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사회적 문제들을 다각도로 짚어냈다. 두 번째 책 '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에선 한 벌 더 나아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왜 하나의 세상에서 공존해야 하는지, 함께 어우러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녀만의 놀리들을 다루었다.
작가 겸 칼럼니스트이자, 각종 강연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서문에서
책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내용 중 이런 내용이 있다.
'이제 저는 이 책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왜 함께 살아야 하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관해 이야기하게 될 겁니다. (중략) 10년 동안 대한민국이라는, 유독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가운 이 나라에서, 장애가 있는 자식을 키우며 보고 느끼고 깨닫게 된 제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저의 진정성을 여러분에게 보일 수 있을 테니까요. 7p
≫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그 아픔은 장애라를 가진 엄마의 마음이 진정성 있게 다가와서이기도 했지만 우리는 그리고 또 나는 왜 이렇게 편협하고 차가운 시선에서 장애인을 바라봤을까 하는 부끄러움에서 오는 가슴 아픔이었다.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장애인을 대하는 시선이 일반인과는 분명 다른 시선을 가지고 대해왔다는 것을...

생각해 볼 문제
≫ 우리는 사람을 눈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지하철을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중 어느 장애아를 만난 적이 있었다. 대략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가 되어 보였다. 그 아이는 열차 소리를 내며 왔다 갔다 하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장애가 있어 보였다. 아는 슬그머니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 움직임 속에는 혹시 이 아이가 나에게 무슨 일을 벌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온 자기방어의 행동이었다. 지하철이 도착하고 아이와 함께 지하철을 탔다. 아이는 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절부절하면서 더 큰 소리고 열차 소리를 내며 객차 끝에서 끝까지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아이에게 계속 눈이 갔다. 주위의 사람들을 바라봤을 때 사람들의 시선은 걱정보다는 짜증에 섞인 눈빛이 더 강했다. 그 아이는 2정거장 지나간 후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제서야 나를 비롯한 사람들의 시선은 예전처럼 보통의 시선으로 돌아오고, 사람들은 핸드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이 우리가 장애인을 대하는 가장 일반적인 시선이 아닐까? 나는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는가? 우리는 장애인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불편해한다. 그리고 내 옆에선 좀 없어져 줬으면 다른 곳으로 가 줬으면 하는 시선으로 장애인을 바라본다. 나는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을까? 지하철을 보며 많은 장애인을 만났지만 나는 이런 시선을 항상 느껴왔다. 나 또한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다. 우리 대부분은 이런 시선으로 장애인을 대하고 있다. 그 시선은 차가운 시선이었고 무시의 시선이었다. 텔레비전에서 장애인 관련 프로그램을 하면 응원을 보내고 성금 모금을 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막상 장애인이 우리 옆에 있으면 우리의 시선은 변해버린다. 간접 경험을 하고 세부적인 모습까지 보고 있을 때 우리는 너그럽고 인자한 모습을 보이지만 직접 경험을 하고 내 옆에서 외적인 현상만을 보고 있을 때는 다른 시선을 보낸다. 그 시선이 얼마나 차가운 시선인지는 자신도 모르는 체 내보이고 있다. 이는 단순 지하철만 에스의 얘기는 아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공간에 만연해 있다.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모습에는 응원의 모습을 보이면서 그것이 내 안으로 들어오면 거부감을 보이고 싫어하는 것 그것이 우리들 자신의 모습니다.
중학생 때 우리 반에 장애아가 한 명 있었다. 그 당시 우리 반 친구들은 차가운 시선을 보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자주 놀이거리가 되곤 했다. 장난치고 놀리며 반응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고 그랬었다. 중학생 때는 일반 아이들끼리도 짓궂은 장난을 많이 하기도 하지만 유독 그 아이에게는 심한 장난을 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우리가 장애를 대하는 시각은 보통 이렇다. 나와 다르다는 것 그것을 나보다 나은 것과 나보다 못한 것으로 나누고 나보다 못한 것이라고 판단이 되면 하층 시선과 행동을 보인다. 우리 대부분은 그렇다. 다른 얘로 동남아에서 일하로 온 사람들에게 온 사람들에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경어체로 얘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항상 반말이다. 그 사람이 나보다 나이가 많건 적건 배움이 얼마나 되었건 모두 반말을 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우리보다 낮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깔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해외 게스트하우스에서 있을 때 본 것도 동일했다. 한국도 아니고 외국이라는 다른 공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네팔, 인도 등 다른 나라의 일하는 사람들에게 게스트하우스 손님 중 경어체로 얘기하는 사람을 보는 것은 정말 드물었다. 대부분 '야'로 시작했고 반말을 했다. 네팔에서 교수를 하다가 인도로 오신 분이 있었다. 인도에서 할 일이 없어서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하시는 분이었는데 일도 잘 못하고 한국말도 서툴렀다. 게스트하우스의 일이 그분에게는 당연히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분은 한국 사람들의 무시섞인 말들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정말 열심히 일을 하고 계셨다.
왜? 우리는 도대체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못돼먹은 것일까? 자신과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나보다 조금 낮아 보이기만 하면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렇게 못되질 수가 없다. 미국인들, 유럽인들이 동양인들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도 분개하는 사람들이 막상 자신들은 그보다 몇 배 몇십 배 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동남아에서 한국인들을 만나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정도이다. 나는 아니라고 정말 아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목차
1장. '장애인'이라는 편견
2장. 대상화되는 장애인
3장. 더불어 사는 사회

책 속에서
보건복지부의 2017년 집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장애인 수는 254만 명이 넘습니다. 발달장애인은 그중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이 수치는 '등록된' 장애 인구만을 나타내고 있기에 실제는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략) 그리고 '느린 학습자'라 불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장애 등급을 받을 만큼 인지 기능에 뚜렷한 손상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일반 학생들과 같은 속도로 학업을 따라가기에는 힘이 듭니다. 일부 경계선 장애인 또는 느린 학습 나에 속하기도 합니다. 그런 느린 학습자가 대한민국에 80만 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21p

발달장애는 신체 및 정신이 해당 나이에 맞게 발달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발달이 늦는다는 얘기입니다. 22p

게임은 이미 시작됐고 이 게임은 평생 동안 끝나지 않아요. 매일을 살아내기 위해선 방금 전고 ㅏ같은 시선을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평생 동안 겪어야 해요. 무덤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이 시선은 여러분을 떠나지 않아요. 26p

장애인 복지에 쓰이는 예산은 전체의 0.2%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답니다. 발달장애 관련 예산이 아닙니다. 전체 장애인 복지에 쓰이는 예산을 말합니다. 0.2%라는 수치는 OECD 가입 국가들 중 최하위에 해당합니다. OECD 가입 국가들의 장애인 복지 평균 예상은 전체 예산액의 2% 정도랍니다. 30p

'장애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실재하진 않지만 실존하는 섬입니다. 그곳에선 세상과는 차단되어 오로지 장애로만 점철된 삶을 살아갑니다. 32p
그런데 아무리 용기와 의지를 갖고 있어도 혼자만의 힘으로 쉽게 '장애도'에서 탈출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탈출이 쉬었다면 저도 3년 넘게 그곳에 갇혀 있진 않았을 거예요. 33p

갑자기 여러 감각이 밀려들어 오면 그 감각들을 조정할 수가 없다고. 그 감각들을 막기 위해 자신은 머리를 때리거나 박수를 치거나 몸을 구르거나 등의 상동 행동을 하게 된다고. 머리를 때리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밀려드는 감각 때문에) 온몸이 잔뜩 흔든 콜라처럼 폭발할 것 같아서라고. 자신의 몸과 자신의 두뇌는 항상 싸우고 있다고 칼리는 말했습니다. 54p
발달장애인이 말을 할 줄 모른다고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할 거라 생각해 함부로 대한다면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56p

우리들이 할 일은 장애인을 불쌍히 여겨 돕는 게 아니라 장애가 있든 없든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적응해 살아갈 방법을 익히면 됩니다. 그것이 제대로 된 장애 이해 교육이고 그래야 진정한 사회 통합이 됩니다. 72p

이어지는 딸의 이야기에 놀랐습니다. 장애는 창피한 게 아니라고 했으면서 왜 장애인을 장애인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냐고 합니다. 밖에서는 장애인이라는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장애인은 자신과 행동이 다를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합니다. (중략) 이제는 제가 반성할 차례입니다. 딸의 말이 맞습니다. 장애인이 대상화되는 걸 그토록 경계했으면서 정작 제 자신이 그곳에 모인 모든 장애인에게 장애인의 굴레를 씌워버린 것입니다. 딸에게 장애인이란 그냥 장애가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제게 장애인이란 입 밖으로 말을 꺼내면 실례가 되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은 장애인이었습니다. 장애인을 특별한 존재로 규정해 장애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조차 민감하게 반응해버린 것이었지요. 83p
장애인을 장애인이라 부르는 걸 껄끄러운 사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86p

책을 읽고
어떤 이들은 배려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에게 다가서기도 합니다. 그것이 또 다른 차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장애를 다른 것으로 여기는 시각 자체가 또 다른 차별이 될 수 있습니다. 참 어려운 얘기이지만 배려도 아닌 동정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른 없이 바라봐야 합니다. 한쪽에 치우친다는 것은 결국 또 다른 차별을 만들어 내곤 합니다. 제 주위에도 장애인이 있습니다. 돌아보면 우리 주변에 정말 많은 장애인이 있습니다. 그들이 세상에 안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그런 사회로 만들어놨기 때문입니다. 다른 시각이 아닌 따뜻한 시각이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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