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책이 진도가 잘 안 나갔는데 '산문집'이라는 일종의 어떤 선입견이 있어서였던 것 같기도 했다. 딱히 가리는건 아니였는데 이상하게 초반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지만 책장이 넘어갈수록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하기 전 국민학교 1학년 초까지 살았던 좁은 골목 안에 있던, 군데군데 녹이 쓸었지만 색이 예뻤던 파란 대문의 집이 생각났다. 사소한 일에도 마냥 즐겁게 웃었던 그 시절로 돌아간 느낌. 나이를 먹고 사회에 나와 까맣게 잊고 살았었는데 이 책은 가장 순수했던 나를 마주하게 해 주는 거울 같은 느낌이었다. .
시간도 흐르는 것 같고, 막힌 벽도 무너지는 것 같고, 일찍 늙은 청춘도 아직 살 만한 것 같았다. 인생에는 원래 그런 순간이 있는 법이다. 아주 사소한 진지함으로 태산 같은 막막함을 훌쩍 뛰어넘는 순간. 그날 함박함박 떨어지던 눈이 내 귓가에서 그렇게 말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정말 모든 게 다 괜찮아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세상 모든 게 다 안온하고 안전하게 여겨졌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아주 오랜만에 그 어느 날 혼자 두고 온 사람도 생각했다. (p.51 참 괜찮은 눈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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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소원하던 어른이 되고 보니 살다보면 사는게 녹록치 않다는걸 해가 바뀔 때마다 먹는 나이처럼 거듭 알게 되는 것 같은 때가 있다. 아!!하고 알고 나선 금새 또 잊어 먹고는 처음 깨달은마냥 다시 아...하는 거다. 한번 알았으면 다음에는 가볍게 이겨낼 수 있어얄텐데 실수는 여전히 아프고 생채기는 어째 더 오래 남고 우는건 화장실에서 몰래 한다. 그런 내가 서러워서 울컥 목이 메인다.
마냥 모든게 즐거워 웃었던 나로 돌아갈 수 없어서 더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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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방향을 바꾸는 것만 터닝 포인트일까. 한 단계 깊어지는 것은 변화가 아닌가. 삶이 제자리뛰기라고 투덜거리지 말자. 잘만 뛰면 제자리에서 뛰어도 한 계단 위니까.
(p.85 안 돌려도,터닝)
제자리 뛰기 같아도 생각하기 나름이란 저 말이 너무 따뜻했다. 마치 지친 내 어깰 토닥토닥 하며 살포시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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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울 수 있는 사회, 우는 사람이 모두 위로받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나는 앞으로 우리 모두가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눈물을 통제당하는 것이 아니라 눈물로 인하여 피해 보는 것이 아니라, 눈물 흘린 만큼 위로받고 아픈 만큼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p.207 울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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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외려 아픈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꿈은 꾸는 자의 몫이 아니라 컨트롤하는 자의 몫이라는 생각을 한다. 성장에도 통이 있고, 씨앗도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엄청난 발아열을 견뎌야 한다. 마라토너들은 달리다보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사점死點과 만나게 된다고 한다. 그 사점을 통과하고 나면 다음은 비교적 쉽게 달리게 된단다. 아프고 괴롭고 불안하고 막막한가.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의 삶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도망치지 마라. 원래 희망은 아프다. 그래서 꽃이 피는 것이다. (p.234 희망은 아프다)
두 문단이 유독 가슴에 남았다. 울지 못하고, 또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품고 실컷 울고 나도 시원해지지 않는 가슴을 안고 있는 것 같다. 구름 낀 세상을 더듬더듬 눈을 뜨고서도 위태롭게 걸어가는 듯한 거리의 사람들. 그리고 나...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말해줬음 좋겠다. 괜찮다. 삶은 너무 평탄해도 이상한거다. 희노애락이 섞여 있어서 둥글게 굴러가는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