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우선은 재미있게 읽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최근에 읽은 몇몇 작품들을 다소 어렵게 읽었었는데 이 작품은 술술 잘 넘어갔다. 게다가 작가의 특이한 에피소드 덕에 더 관심이 생겼었고, 팟케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도 소개가 되면서 꼭 한 번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알제리 출신의 소년 모모(모하메드)와 그녀를 맡아 키워주는 예순이 넘은 나이의 유태인 로자 아줌마의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피를 나눈 진짜 혈육은 아니지만 한 가족이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언덕이 되어주는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로자 아줌마는 창녀로 살다가 창녀들이 미처 키우지 못하는 아이들을 돈을 받고 키워주는 일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모모를 맡게 되었다. 모모는 그녀가 맡아 키우던 아이들 중에서 그녀가 특히 아끼고 사랑했던 아이다. 모모 또한 다 늙어빠진 로자 아줌마를 무척 아끼고 사랑한다.

 

 

  아직 한 번밖에 읽지 못했지만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모'라는 주인공 소년이다. 남의 자식을 맡아주는 늙은 유태인 아줌마와 자신을 낳아준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 채 로자 아줌마네서 살고 있는 어린 아랍인 소년의 사랑이라는 설정도 독특했다. 유태인과 아랍인이라는 정치적, 종교적으로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두 인물이 삭막한 세상 속에서 누구보다 의지할 수밖에 없는 가족이라는 점 또한 눈에 띈다.

 

 

 열 살이기 때문에 자신은 너무 어리다고 생각하는 모모는 누구보다 너무 착하다. 약자를 사랑할 줄 안다. 자기의 편안함을 포기하고서라도 로자 아줌마 곁에 있을 정도로. 그러나 한편으로 모모는 영악하다. 이미 세상을 다 알아버렸다. 그리고 모모가 알아버린 세상은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고 모모는 그게 왜 잘못되었는지도 판단하고 비판할 줄 안다. 모모는 어른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생, 로자 아줌마에게 주어진 생을 대하는 태도가 여느 아이들과 같지 않다. 이미 생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다 알고 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애늙은이 같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모모는 어리다. 그 마음이 순수함으로 가득차해 더러운 세상이 자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한다. 이런 모모를 따라 가슴 아프기도 했다가, 웃기도 했다가, 금방 슬퍼졌다가 외로워졌다가 기운을 차리기도 한다.

 

 

  정말 이런 일이 가능할까? 기껏해야 열살에서 열다섯살 정도일 소년이 예순 넘은, 병에 걸려 다 죽어가는 한 여자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주고 그녀의 죽음까지도 지켜봐주는 그런 지고지순한 사랑이 정말 가능할까 싶다. 그래서 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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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5-11-25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실에서 가능할 것 같지 않다고 여겨지는 이야기가 소설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고 봐요. 재미있고 수월하게 읽히는 소설이라면 스토리를 풀어내는 저자의 필력에 감탄하고요.

책읽는잉걸불 2015-11-25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동감이에요. 하지만 때로는 그런 점 때문에 소설을 읽은 후에 허무함 같은 걸 느끼게 되기도 하는 것 같구요.

리뷰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_^

오거서 2015-11-25 1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줌마 님의 리뷰를 우연히 보게 되었지만 재미있게 읽었어요.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읽으시고 리뷰를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