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 양장본
법정스님 지음 / 범우사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그랬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냥 넘겨지지 않는 깊은 울림이 있는 책이다. 감히 내가 흉내낼 수 없는 지혜를 담은 글들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짧은 이야기 하나 하나가 내 가슴과 머리를 두드린다. 법정 스님의 말씀을 빌자면 이 책은 양서라 할 만하다. 곰곰히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책, 는 것보다 생각하는 즐거움이 있는 책, '시간 밖에서' 온전히 쉬는 진짜 즐거움으로 나를 이끌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숨에 읽기보다는 '읽다가 자꾸만 덮어지'기도 했다.

 

19쪽> 그렇더라도 나는 이 가을에 몇 권의 책을 읽을 것이다. 술술 읽히는 책 말고, 읽다가 자꾸만 덮어지는 그런 책을 골라 읽을 것이다. 좋은 책이란 물론 거침없이 읽히는 책이다. 그러나 진짜 양서는 읽다가 자꾸 덮이는 책이어야 한다. 한두 구절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 그 구절들을 통해서 나 자신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양서란 거울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그 한권의 책이 때로는 번쩍 내 눈을 뜨게 하고, 안이해지려는 내 일상을 깨우쳐 준다. 그와 같은 책은 지식이나 문자로 쓰여진 게 아니라 우주의 입김 같은 것에 의해 쓰여졌을 것 같다. 그런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좋은 친구를 만나 즐거울 때처럼 시간 밖에서 온전히 쉴 수 있다.


어떤 때는 뭐 하나 똑부러지게 하는 게 없는 것 같은데도 정신없이 바쁘기도 하고 쉴틈없이 뛰어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돌아보면 허탈해지고 한숨이 나올 때가 있다.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진리를 실천하고자 했던 스님의 모습처럼 덜 중요한 것을 덜어내고 더 중요한 것들로 내 안에 채워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런 면에서 '여유'를 누리지 못하는 나는 마음마저 단단해져서 사람을 대할 때 날카로운 가시를 들이밀기도 하는지 모른다. 심지어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는 다섯살배기를 가르친다고 훈계하고 잔소리한다. 물론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부드럽게 안아주지 못했다. 쓰다듬어주지 못했다. 돌맹이를 둥글둥글하게 만드는 바다의 파도는 쉬는 법이 없다. 한결같이 밀려와서는 수많은 돌들을 쓰다듬어주고 간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쓰다듬어준다. 조급하고 쉽게 분노하는 나는 부드러운 물결에게서 좀 배워야 한다.

 

35쪽>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좋았지만 특히나 나의 어리석음에 강력한 펀치를 날려준 부분은 다음 부분이다.


47쪽>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 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용서, 나는 용서를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 여겼다. 그러니 내 억울함이나 손해가 자꾸 떠올라 그 사람이 더 미워지고, 용서의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용서하려다가 상대가 더 괴씸해져서 오히려 분노가 끓어오르기도 한다. 그러니 용서가 될 턱이 없다. 그 사람 상대방을 떠옹리는 용서란 애시당초 그른 것이다. 그러니 용서하지 못해서 아등바등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용서가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자꾸 미워져서 더 분노하는 나 자신을 거두어들여야 하는 것이다. 아직도 나는 나보다 얄미운 그 사람이 떠올라 나 자신을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나의 부족한 부분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짧은 소견과 엉뚱한 욕심, '나'만 바라보는 좁은 시야와 얄팍한 꼼수 등등. 이 책이 절판인 것이 아쉽다. 진작에 알아보지 못했던 내 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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