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나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 어떤 일을 상대방은 또렷이 기억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나는 너무나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어떤 일을 상대방은 전혀 기억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가족들로부터 또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로부터 나의 그때 그시절을 듣다 보면 그런 경우가 분명 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는 표현처럼 정말 티끌만큼도 생각나는 게 없는데도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은 그때 그 지점의 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에게 유리한 것만 기억하는 것이든지 아니면 억울한 나머지 우리 자신을 무척 안쓰럽게 여기며 내 마음대로 원하는 기억을 만들어가는지도 모른다.

노년이 되어 자신의 기억을 더듬는 토니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있었던 일, 그리고 베로니카와의 사랑, 베로니카 가족들과의 일주일 등 분명 그랬을 거라고 믿는 일들을 되짚어본다. 소설 제목처럼 주인공 토니가 소름이 돋을 만큼 맞아떨어지는 예감 때문에 두려움에 떠는 이야기일까 싶었지만 아무것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기억과 사실에 차이가 있음을 전혀 감잡지 못해서 반전을 맞는 이야기다.
힌트가 될 만한 몇몇 대목은 있었지만 토니만큼이나 독자인 나도 아무것도 감잡지 못했다. 그래서 두 번이나 연속으로 읽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서.

바로 우리 코 앞에서 벌어지는 역사가 가장 분명해야 함에도 그와 동시에 가장 가변적이라는 것.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그것은 우리를 제한하고 규정하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측량하게 돼 있다. 안 그런가? 그러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속도와 진전에 깃든 수수께끼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역사를 어찌 파악한단 말인가. 심지어 우리 자신의 소소하고 사적이고 기록되지 않은 것이 태반인 그 단편들을.
106-107

누구나 그렇게 간단히 짐작하면서 살아가지 않는가. 예를 들면, 기억이란 사건과 시간을 합친 것과 동등하다고. 그러나 그것은 그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하다. 기억은 우리가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또한 시간이 정착제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용해제에 가깝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백히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이렇게 믿는다 한들 뭔가가 편리해지지도 않고, 뭔가에 소용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인생을 순탄하게 살아가는 데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실을 무시해버린다.
111-112

역사든 개인의 기억이든 그것이 시간이라는 용해제 속 사건의 단편들이라면 정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토니를 보면 애써 기억해낸 것들은 사실과 달랐고 전혀 기억하지 못한 것은 엄청난 비극을 이끌어냈다. 토니가 기억하는 것은 토니가 기억하고 싶었던 것들이고 토니가 감잡지 못했던 것은 시간 속에 용해되버린 것들이었다. 이렇게 불분명한 기억으로 쪼개진 과거는 현재의 삶으로 이어진다. 의도하지 않은 비극적인 순간은 토니가 기억해내지 못한 과거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을 마지막에야 깨닫게 되지만 깨달은 순간 토니가 간직해온 기억들의 의미가 무너지고 새로운 의미가 나타난다. 그것은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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