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지음, 이상원.조금선 옮김 / 황소자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은 일반 문학책보다 약간 세로로 길쭉합니다. 두께가 적당한데다 양장처리 되어서 들고 다니며 보면 좋을 것 같아요. 표지는 수수한 디자인이 부담없고요. 속커버의 디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벗기고 보아도 좋을듯...
다만 지은이의 사진(그림임)의 압박이 조금 있는데 그냥 무시하면 될듯해요. ^^;;


이 책은 류비셰프라는 러시아 학자에 대해 쓴 일종의 평전입니다.
사실 저는 자기계발서를 산다는 기분으로 평소 잘 안읽던 평전을 사게 되었는데요. 대답은 No~~입니다. ^^;; 이 책은 사실 자기계발서처럼 읽을 수가 없어요. 구체적인 방법은 설명이 안되어 있는 탓이죠. 그러나 대략적인 방법은 엿볼 수가 있습니다.

읽다보면 정말 저절로 입이 벌어지시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사실이라고 믿기엔 너무 픽션같은 시간관리법의 일종인 이 '시간통계'는 아무리 그분이 분류학자이며 통계학에 일가견이 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예가 이것인데...
류비셰프가 자신의 인생이 평온해보여 부럽다고 말했던 사람에게 보여준 '인생통계(?)' 입니다.

5세 : 나무를 타다 떨어져 팔이 부러짐.
8세 : 널빤지에 다리가 깔렸음.
14세 : 곤충 표본을 만들다가 손을 베어 파상풍에 감염되었음.
20세 : 급성 맹장염을 앓음.
1918년 : 폐결핵에 걸림.
1920년 : 폐렴을 앓음.
1925년 : 극심한 신경 쇠약에 시달림.
1930년 : 이념 논쟁에 휘말려 체포 위기를 겪음.
1937년 : 레닌그라드에서 박사 학위를 박탈당할 뻔함.
1939년 :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잘못하여 증이염에 걸림.
1946년 : 비행기 사고를 당함.
1964년: 얼음판에 넘어져 뒤통수를 심하게 부딪침....


세상에... 대체 누가 이런 식으로 간략하고도 설득력있게 대답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무엇보다 저걸 대체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정말 감탄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저런 식의 통계가 가능한 것이 결코 무슨 통계전문기법을 익혀서라기 보다는 평소의 성실한 생활 습관 때문이며 그 방법이 무척 단순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더불어 위를 자세히 보시면 알겠지만 20세 뒤로는 년도까지 자세히 나와있는데요. 그 이유는 류비셰프가 이러한 시간통계를 시작한게 만 26세부터 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 그보다 조금 더 어리니 아직 울상을 지어선 안되겠습니다. ㅋㅋ
(죄송합니다 ㅡㅡㅋ : 하지만 나이가 늦다고 문제될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건 의지겠지요.)


정말 놀라운 것은 이러한 시간관리겠지만 이 책은 역시 평전이기 때문에 류비셰프의 다른 모습들도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 면면이라는 것들이 제가 생각하는 과학자의 모습들과 정말 잘 맞아떨어져 혹시 지은이가 꾸며낸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일 정도입니다.

자신의 전공만 파는 여느 학자들과는 달리 방대한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결코 무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독특한 관점으로 그 분야에 접근해 각종 화제가 되었습니다. 또한 비평을 좋아하고 비평받는 것 역시 즐겼고, 아무리 권위있는 학자의 법칙이라 하더라도 의심하길 멈추지 않았죠. 항상 작은 것에서도 법칙을 찾아내려 노력하였고, 거기에다 제일 어렵다할 수 있는 물욕, 명예욕까지 적었던 그야말로 학자 중의 학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아무튼 이 책은 그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시간통계'나 '학자로서의 류비셰프' 모두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실제로 그런 인물이었는지 제 눈으로 확인하기가 어렵고 저자가 좀더 미화한 듯 보이는 듯은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주저없이 그를 좋아할 겁니다.

책의 구성은 상당히 난잡하다면 난잡해 보이기도 하겠지만 아무튼 연결은 매우 자연스럽고 내용도 재미있어 잘 읽힙니다. 다만 뒤로 가면 갈수록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것 같고 류비셰프가 쓴 글을 직접 볼 수 있는 인용문이 비교적 적은 편이어서 이것이 실제로 그런지 아니면 저자가 덧입힌 일종의 후광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류비셰프라는 학자에 대한 별다른 평전 또한 나와있지 않으니 진위를 판단하기가 힘든 것이지요. 지은이와 대상 모두 러시아 출신이라 그런쪽 사상이 군데군데 나타나 조금 거부감이 일수도 있습니다.

또 시간통계 방법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분석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 평전이라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성격과 생활 방식을 이용한 전개방식이어서 당시 상황적 배경이나 어릴적 일들, 가족사 등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거의 들어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평전이라고도 자기계발서라고 하기에도 에매한 좀 아리송한 책입니다. 좋아하게된 학자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별 4개가 된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런 방식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하려니와 무엇보다도 이 한권의 책으로 아!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 하는 감동을 받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정말 이 사람처럼 저도 인생의 최대치를 살 수 있으면 행복한 삶일 것 같아요. 다만 결과가 좀더 좋았으면 하는 욕심이 있지만요 ^^



이제부터는 제 감상입니다. 평전은 처음 리뷰하는 것이라 어떤 식으로 해야될지 잘 모르겠군요. 여기서 부터는 책을 읽고 나신 뒤에 보시는 것이 나을 것 같네요. ㅡㅡㅋ


아까의 논의를 계속 해보죠. 류비셰프는 자신의 전공이 아닌 분야에서도 활발히 연구했다고 했었죠? 제가 류비셰프를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탐구하고 사색하길 좋아하는 진정한 학자였던 것입니다. 저자가 흔히 예로드는 '유리에 낀 성에모양에서 패턴을 발견해 수학의 두 분야에 공헌한 일화'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방대한 업적은 그가 진정 항상 사고하는 것을 즐겼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TV에서 들은 강연 내용을 가지고 저를 놀리시곤 하셨는데 "요즘 아이들은 생각을 안하고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제가 멍~ 하니 다니는 것이 못마땅하셨던 모양입니다. 당시 저는 그것에 대해 별다른 생각없이 살다가(이런. 정말 이군요.^^) 최근 들어서야 제가 무척 생각하고 사는데 게으르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생각하는게 게으르다는 건 별게 아닙니다. 우리를 그져 스쳐가는 일상.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 바로 그런걸 말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에서도 이유를 찾고 무언가 발견하려고 하는 적극적인 자세는 물론 쉽게 가지기는 힘든 것이지만 한번 두번씩 그러다보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죠. 하지만 이런 것에서 부터 인류의 학문은 발전해 왔습니다. 굳이 유명한 철학자들이나 사과 이야기의 뉴턴을 들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그것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느냐는 것은 이것과는 조금 별개의 문제입니다. 앞에 말한 것이 지식탐구의 '넓이' 문제였다면 지금 말하는 것은 '깊이'의 문제입니다. 성현이 아닌 이상에야 그 모든 것을 아! 그래서 그렇다.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유명한 학자들도 마찬가지죠. 아무리 머리속에서 팍!팍!하고 대답을 할 것 같은 천재도 실은 밑바탕에 그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작업이 축적되어 있는 법이에요.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어느 정도로 깊이 생각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막막함을 느낍니다. 다른 할일도 많은데 그런걸 언제까지 생각하고 있느냐구요.~~
하지만 류비셰프는 말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학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말입니다. 정말 심히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배우는 사람이 해야할 일은 다름아닌 바로 그것!이었는데 말이죠!! "그런걸 할 시간이 어딨어!"라는 말은 제가 하고 있는 다른 일들에게 붙여야 했던 것입니다.


조금 돌아가서 다시 학문의 '넓이'에 대해서 말해봅시다. 제가 아까도 류비셰프의 이런 학문의 넓이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건 다름아닌 저도 통합적인 세계관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건 다름아닌 아인슈타인의 말의 영향이 큰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우주가 이해 가능하다는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 세상이 '법칙'으로 설명할 수가 있는 것일까요? 심지어 사람들은 법칙을 스스로 만들기도 합니다. 인류의 문명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져 왔죠. 인간이 자연을 점점 통제하기 시작한 뒤로부터 문명이 발전할 수록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점점 자연에서 이런 '인간의 법칙'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때문에 저는 이런 인간의 능력을 가장 경이롭게 여기고 그것들이 전부 인간의 생각이기 때문에, 즉 저와 다름없는 방식으로 세계를 인지하는(신체구조적으로) 인간들에게서 나온 생각이기 때문에 인간들의 법칙은 모두 연결되며 통일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류귀종'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표현입니다. 물론 근거는 별로 없지만요. ^^ 하지만 요즘 나오는 대통일 이론이라든가 전혀 다르게 보이는 여러 학문들이 서로 연결되는 요즘 현상을 보면 그리 근거없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ㅎㅎ 그런 점에서 이렇게 세계를 탐구하는데 구분을 두지 않은 학자를 발견하게 되면 왠지 모르게 뿌듯하고 자랑스러움을 느낍니다. 말이야 쉽지만 진짜 실천하기가 어려운 탓입니다.


그는 제가 좋아할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었습니다. 파인만 아저씨가 말한 '항상 비판하는 또 비판받는' 이라는 관점도 류비셰프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종류의 논의에 대해 비판하려 하였으며 그 잣대는 '이성'이었고 아무리 권위있는 학설이라도 예외가 될수 없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이 전적으로 옳다고 믿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다른사람의 비판을 즐겼습니다. 저 역시 학자란 모름지기 그래야 평생 살면서 심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그런 점에서는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등 당대의 천재들이 후세를 볼땐 별로 탐탁진 않았을 겁니다. 아무도 뭐라하는 사람이 없었을 테니깐요.


마지막으로 아쉬운 것은 과학자로서의 그의 대중성인데... 그는 충분히 훨씬 많은 책을 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이 제일 아쉬운 부분이었는데 편지에 대해 답장은 누구에게나 하였다는 것을 비추어 보면 약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동시에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누구나 자기가 내놓은 책에 만전을 기하고 싶을 테니까요.
하지만 역시 책을 많이 내었다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각을 알고 또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지 않을까요? 완벽한 이론이 없는 것처럼 책도 완벽할 순 없는겁니다. 자신의 논의가 어느정도 정리되었다 생각되면 바로 책을 내도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책만큼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기 좋은 매체도 드물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의 이런 활동이 마음에 걸립니다. 또 일반 대중들을 위한 책도 쓰지 않았다는 것도 그렇군요. 그랬다면 그를 더욱덕 좋아하게 되었을 텐데 말이죠. ^^


아무튼 그는 운이 무척 좋았던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어찌 되었건 일단 그의 원칙을 보면 그러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게 신기할 정도였기도 하고, 생전에 학문적 깊이를 인정받기도 하고, 인기도 꽤 있었고, 무엇보다 시간통계라는 방법을 일찌감치 찾아서 실천함으로써 평생 자신의 시간을 지배할 수도 있었고, 다양한 방법으로 학문을 알려 노력하였으며 비록 결론을 보지 못한 것도 꽤 되지만 끝까지 하고 싶은 연구를 계속하는 등 말이죠...


끝까지 그런 사람 좀 되어봤으면....하고 침을 흘리는 저 입니다. 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