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 말할 수 없는 미친 녀석이지요. 존재하기는 하지만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일 뿐입니다."
"오, 재미있는 일이야! 여기 있는 이 백성은 존재하지만 자기가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고 저기 있는 나의 용장은 자기가 존재한다는것을 분명히 알지만 존재하지 않는군. 좋은 짝이 되겠어, 틀림없이!" - P37
‘오, 죽은 자여, 너는 내가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되지 않을 시체로구나. 다시 말하면 넌 시체로 존재하는 거지. 그러니까 바로 이 때문에 가끔씩 우울한 순간이면 놀랍게도 난 존재하는인간들을 질투한다. 굉장해! 난 특권을 지녔다고 나 자신에게 말할수 있어. 육체가 없이도 살 수 있고 모든 일을 할 수 있으니까. 물론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일들이지. 난 존재하는 사람들보다 수많은 일들을 훨씬 더 잘할 수 있어. 그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조잡함이나 부주의함이나 지리멸렬함 같은 결함 없이, 악취를 풍기는 일 없이 말이야. 존재하는 사람들은 어떤 특별한 흔적을 남길 수 있지만 나는 결코 그럴 수 없는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존재하는 사람들의 비밀이 바로 여기, 이 자루 같은 배속에 있다면, 고맙지만 난 그 배 없이 살겠어. 여기저기 찢긴 알몸의 육체들로 뒤덮인 이 계곡은 그래도 아수라장 같은 인간 세상보다는 덜 끔찍하군‘ - P70
살아 있는 우리들에게나 죽은 당신들에게나 무덤에 가기 전의 이 하루하루가 존재할 뿐입니다. 그날들을 낭비하지 말라고, 내가 존재한다는 것,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조금도 헛되이 생각하지 말라고 그런 날들이 내게 주어졌을 겁니다. 망자여, 난 당신의 평화보다 나의 불안을 사랑합니다. - P71
어떤 사람이 아주 열심히 글을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펜이 먼지에 뒤덮인 잉크만 찍어 대는 시간이 찾아오고 그가쓴 글에서는 삶이 조금도 흐르지 않는다. 삶은 모두 밖에, 창문 너머에, 글을 쓰는 사람 외부에 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이 써놓은 글 속으로 몸을 숨길 수도 없고 다른 세계를 열 수도 없고 삶과글의 간극을 메울 수도 없을 것 같다. 어쩌면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사람이 즐겁게 글을 쓴다면 그것은 기적이나 은총 때문이 아니라 죄악과 우상화와 오만함의 결과다. 그러면 나는 그런 것들에서 벗어났을까? 아니다, 난 글을 쓰면서 선한 사람으로 변하지못했다. 나는 그저 불안하고 별 의식 없는 젊음을 약간 소모했을 뿐이다.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글들이 내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책과 서원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의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 글을 쓰면서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할수 없다. 그는 글을 쓰고 또 쓴다. 그러는 사이 이미 그의 영혼은 사라져 버리고 없다. - P87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표면적으로는 아무 변화도 없는, 이렇게텅 빈 페이지에서 모든 것은 움직인다. 결국 모든 게 울퉁불퉁한 이세상의 표면에서 움직이지만 세상을 전혀 변화시키지 않듯이. - P128
오, 미래여, 과거 이야기에서, 격정적으로 내 손을 잡은 현재에서떠나기 위해 난 지금 네 말안장 위에 올라탔다. 아직 세워지지 않은도시 탑 위의 깃대에 어떤 새로운 깃발들이 나를 향해 꽂힐까? 내가사랑했던 성과 정원에서는 어떤 폐허의 연기가 피어오를까? 네가 준비한 예상할 수 없는 황금시대는 어떤 것일까…………. 길들지 않은 너, 비싼 값을 치른 보석 같은 예감, 정복해야 할 나의 왕국, 미래여…….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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